아무것도하지 않으면 좋은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상처가 두려운 그대에게

by 책닮녀

시곗바늘이 열 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잘 시간이 되었는데도 큰 아이는 책상에 앉아 무언가 끄적이고 있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방으로 갔다. 색종이 뒷면을 펼쳐 한줄 한줄 써 내려가고 있었다.


"잘 시간인데~ 뭐해? 숙제야?"

아이는 얼굴을 들어 나를 향해 부끄러운 듯 배시시 웃었다.

무슨 연애편지라도 쓰는 것 마냥 발그레한 얼굴로 말했다.

"내일 임원선거 있거든. 여기에 써서 가려고. 지난번에는 너무 떨려서 더듬더듬 말도 못 했단 말이야"


아하! 그랬다. 새로운 한 학기가 시작되고, 다시 임원선거의 시간이 찾아왔다. 아이는 1학기 때 처음으로 선거라는 제도를 접했다. 3학년이 되어 학급 회장, 부회장을 알게 되고, 투표를 통해 선출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을 도와드리고 싶고, 반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은, 착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선거에 나갔다. 그러나 결과는 똑 떨어지고 말았다. 아이는 괜찮다고는 말했지만 살짝 눈물을 보이며 속상해했다. 마치 자신을 패배자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회장 안 해도 괜찮아. 그냥 선생님 도와드리고 친구들에게 모범이 되어도 돼."라는 진부한 말 밖에는 없었다. 자신의 노력과는 별개로 누군가의 마음을 얻어야만 하는 선거라는 제도에서 아이가 상처 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학기가 되었다. 새로운 임원을 뽑는 날이 온 것이다. 나는 사실 아이가 출마하지 않기를 바랐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서 단체, 모둠 활동이 제한되면서 임원의 역할은 사실 많이 축소되었다. 1학기 동안 학급생활을 지켜보며, 아이는 회장이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 다고 별로라고 이야기했다. 그때 나는 내심 안심했었다. 다음 회장 선거에는 나가지 않겠구나,,,상처받을 일이 없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이의 마음속에는 간절함이 숨어 있었다. 자신도 누군가의 앞에 서서 이끌어주고, 뒤에 서서 밀어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들과 선생님께 인정받고 싶어 했다. 열심히 출사표를 다듬는 딸에게 나는 슬쩍 이야기했다.


"회장이 꼭 하고 싶어? 그거 안 해도 괜찮아. 엄마 나이쯤 돼 보면 아무것도 아니야."

"아니야. 그래도 다시 해볼래. 지난번엔 너무 말을 못 했단 말이야. 이번에 여기 써가서 또박또박 잘할 수 있어."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 이왕 나갈 선거라면 당선이 되어 상처 받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아이의 멘트를 준비해주려고 맘먹고, 이렇게 저렇게 고치는 게 어떠냐며 제안했다. 1학기 때 개다리 춤을 춘 아이가 당선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위트 있는 멘트를 추천했다. 하지만 아이는 그건 부끄럽다며 자신의 방식대로 하겠다고 나에게 당당히 말했다. 잠자기 전까지 몇 번을 연습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이 밝았고, 나는 아이에게 혹시나 떨어져도 괜찮다며 다시한번 일러주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떨리는 맘을 안고 등교를 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향했다. 결과가 궁금하기도 했기에.

나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아이.

"엄마, 나 부회장 됐어!"

그 말을 듣자마자 맘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다'라고 나의 마음을 다독였다.

"우와, 진짜? 축하해~~ 회장은 누가 됐어?

"OO이. 근데 나 부회장 표 많이 받았어."

회장 선거에 떨어져 속상함보다 부회장에 당선되어 기뻐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를 보며 떠오른 한마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마 임원선거에 나가지 않았다면 떨어질 일도 없었을 테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상처를 받아들이고 견뎌내고 또다시 도전했다. 마침내 해내었다. 자신이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에 한 발짝 다가섰다. 마음이 아플까봐 두려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드러내는 것을 지극히 꺼리는 나에게, 아이는 몸소 보여주었다. 괜찮다고 한번 해보라고. 일단 한번 도전해보고 또 도전해보고 그렇게 해보라고 말이다. 뭐든 시도해보고 실패의 교훈도 겸허히 받아들이고,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몸도 따라가 보라고 그리고 성공의 짜릿함도 맛보라고 알려주었다.




저신다 아던, 에릭 위안, 조지 플로이드, 리원량, 조 바이든 등.

2020년 <파이낸셜 타임스>의 올해의 인물에 뽑힌 이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책 구절로 세상을 향해하고 싶은 말을 대신했다.
<한겨레 국제 2020.12.30>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학급 임원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상처를 받지는 않았겠지만,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상처를 받은 만큼 아이는 더 단단해졌고, 성취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애쓰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가고 있었다. 누군가의 거절이 무서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나에게 아이는 간결한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상처 받아도 괜찮다고, 도전하라고, 하고 또 하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말이다.



마음 가는 대로 진심을 다해 행동하는 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마음을, 행동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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