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그리고 워커

걷는 하루

by 책닮녀


2019년 6월 1일. 뚝섬 한강공원.

AIA 100주년 기념 런더풀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내 생애 첫 마라톤. 스포츠는 장비빨이지! 하며 레깅스에 아대까지 풀장착을 하고 나섰다.

두근거리는 맘을 안고 출발선에 섰다.

‘빨리 가려하지 말고, 끝까지 완주하자!’


누가 보면 42.195 풀코스라도 달리는 줄 알겠지만 내가 도전한 코스는 고작 5km 구간. 내 인생의 첫 마라톤이기도 했지만, 당시 8살 딸과 6살 아들도 처음으로 마주한 마라톤이었기에 5km 코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가족의 첫 마라톤이었으니까.



나는 운동이라면 젬병에 이렇다 할 취미도 없다. 특히 기구를 이용하는 운동은 정말이지 상상 그 이상으로 못한다. 줄넘기 2단 뛰기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고, 피구는 피하기만 할 뿐 한 번도 공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여자아이들이 잘하는 고무줄 뛰기도 두줄 뛰기인 '월화수목금토일'밖에 할 줄 모르는 운동과는 거리가 먼 아이다. 그런 내게도 잘하는 능력이 있으니 바로 오래 달리기다. 빨리 달리는 게 아닌 끝까지 달리기. 학창 시절 등산을 하며 끝까지 오르는 건 포기한 적이 없었다. 집에서 50분 남짓 걸리는 대학교를 걸어 다니며 이런저런 사색에 빠지곤 했다. 운동은 싫지만 걷기는 좋다. 걸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생각이 분명 해지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며 좋아하는 산책을 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남편이 마라톤에 빠지면서 나도 하고 싶다는 마음의 물결이 일었다. 하지만, 부부가 모두 대회에 나가려면 아이를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불가능이었다. 언제나 제1 양육자는 엄마가 되듯이 아이들은 엄마가 있기를 바랐고, 나 역시도 당연하다는 듯 남편에게 양보했다. 그런 나의 속내를 알았는지, 남편이 ‘가족마라톤’을 제안했다.


가족이 함께 하는 마라톤이라고?

8살, 6살이 5km를 걸어서 완주할 수 있을까?


고심했지만, 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덜컥 신청을 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서울 한강공원 런더풀 페스티벌 출발선에 서있었다. ‘탕’하는 출발 신호에 사람들은 우르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기록보다는 완주가 목표였기에 아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페이스 조절을 하며 걷기 시작했다.


빨리 달리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하고, 중간 반환점을 돌아오며 급격히 떨어지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느라 지치기도 했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우리 가족은 함께 걸었다. 마지막 도착지점의 선을 넘을 때의 아찔함이란, 아마 뛰어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처음 하는 마라톤이라 5km도 은근히 걱정했는데, 오히려 짧게 끝나 아쉬운 느낌이었다. 다음에는 나 혼자 10km를 도전할 터이니 아이들을 맡아달라고 신랑에게 당부했다. 신랑도 흔쾌히 허락했지만, 그 이후 갑작스레 들이닥친 코로나로 인해 나의 마라톤은 아직도 휴식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예전 모습의 마라톤 대회는 모습을 감추었지만, 달린 거리를 어플로 인증하여 마라톤을 완주하는 새로운 방식이 생겨났다. 그날 이후로 다시는 마라톤을 하고 싶지 않다는 큰 아이 때문에 도전을 계속 뒤로 미뤄왔는데, 이제는 2년이 훌쩍 지났으니 괜찮지 않을까? 다시 시도해보고 싶다는 열정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한다.





2년 전 마라톤의 추억을 곱씹으며 오늘도 동네를 걸어본다.

비록 마라톤 선수들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는 달리기는 아니지만,

달리다 보면 아니 그냥 걷다 보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은 것들을 보게 된다.

아름다운 하늘과 그런 하늘을 더 아름답게 빛내주는 해와 달.

그리고 그들이 외롭지 않게 곁을 내어주는 구름과 별.

말라가는 나뭇잎 한 장에 계절이 또 변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토록 열심히 겨울을 준비하는 자연을 보며

나 또한 월동준비를 알차게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온 우주의 감각을 깨우며 걷다 보면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진다.

나의 사랑하는 가족과 내가 좋아하는 일들.

모두 아끼고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해야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묘비에 작가 그리고 러너라고 쓰고 싶다고 했다. 작가 지망생인 나도 그와 같아지기를 꿈꿔본다. 내 묘비명에는 작가 그리고 워커라고 쓰기를.

간절한 바람을 담아 오늘도 걷는 하루를 보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난생처음 은메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