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엄마도 한 때는 패셔니스타였단다

엄마의 옷차림

by 책닮녀

신혼 초, 주말. 외출을 나서는 길이다.

남편과의 데이트를 아름답게 수놓고 싶은 나는 치마를 꺼내어 든다. 예뻐 보이고 싶어서.

요리조리 거울을 보며 디테일에 신경을 쓴다. 눈썹 모양, 귀걸이의 느낌, 가방의 조화.

준비를 끝내고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거실로 나간다.

"이제 가자~~ 오빠, 준비 다했어?"

"응. 다 준비한 건데?"

신랑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웃는다. 역. 시. 나 트레이닝 복이다.

"나랑 드레스코드 좀 맞출 수 없어?"

"야~산책 가면서 뭘 그렇게 불편한 걸 입어. 예쁜 트레이닝 복을 하나 사자. 내가 사줄게. 지금 백화점 갈까?"


그렇게

신랑의 끈질긴 구애애도 나는 트레이닝 복을 사지 않았다.

나의 남편도 첫 만남에서는 번듯한 옷을 입고 있었다. 물론 직장에서 만났으니까 그랬겠지만, 데이트할 때에도 세련된 옷차림이 맘에 들었다. 소위 말하는 옷발 좀 받는 스타일(물론, 지금은 엄청난 체중 증가로 그러한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지만)이, 잘생기지 않아도 단정하고 깔끔한 느낌이 끌렸다. 그런 그가 결혼을 하고 나니, 세상 트레이닝복은 모두 섭렵할 기세였다. 쇼핑하러 가면 늘 신상 트레이닝 복을 사고, 결혼식을 비롯한 행사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트레이닝복이었다. 지금까지도.


10년을 함께 살면서 신랑은 끊임없이 나에게 트레이닝복 하나 사라는 말을 했었다. 주말에 청바지를 집어 들면 어김없이 트레이닝복 예찬론을 풀어놓았다. 내가 좋아하는 걸, 아내도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었겠지. 이렇게도 편하고 예쁜 옷이 있는데, 왜 불편한 옷을 입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절대 트레이닝복을 사지 않았다.


두 아이의 엄마, 주부 십 년 차로 지내며 원피스를 입어 본 지 5년도 넘었다. 그나마 치마는 아이가 다 크고 나니 이제야 가끔 입는 아이템이고, 그 마저도 롱 스커트 아니면 어색해서 입지도 못하는 정말 아줌마가 되고 말았다. 원피스가 입고 싶어 쇼핑을 하려고 해도, 결국 내가 사는 건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편한 바지. 편한 바지를 찾고 고수하다 보니, 10년간의 설득으로 드디어 트레이닝 복을 샀다. 트레이닝복보다는 요즘 유행하는 조거 팬츠 스타일의 느낌으로. 무난한 블랙으로.


조거팬츠1.jpg



어제 처음으로 그 팬츠를 꺼내어 입었다. 물론 윗도리도 대놓고 트레이닝복 같지 않은 편한 맨투맨 스타일의 옷을 입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등교시키려는데, 딸이 물었다.


"엄마, 그 옷 어디서 난 거야? 아빠 꺼야?"

트레이닝복은 당연히 아빠의 산물이라고 아는 아이들은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너희랑 같이 가서 산거잖아~~"

"엄마가 이런 옷이 있었어? 이거 운동복이야?"

입고 있는 나도 조금 어색한데, 아이들도 낯설었겠지라고 생각하며 물어선 안될 질문을 던졌다.

"왜? 이상해??"

"응. 운동복 같아~~~~~~별로야~"

입술을 일자로 굳게 다물며 딸은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는 다 예뻐'라고 말해주던 아들도 별말이 없었다.

이런,,, 역시 트레이닝복은 나랑 안 맞나?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집으로 들어와 전신 거울에 비친 나를 봤다. 나 자신을 예쁘게 꾸미던 파릇하던 나는 없고 편한 옷을 입은 내가 덩그러니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새로 산 옷이라 그런지 그리 초라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사실 나는 그 옷이 맘에 들었다. 신랑의 말대로 정말이지 너무나도 편했으니까. 옷을 안 입은 것 마냥. 그리고 내 눈에는 예뻤으니까.


그래, 내 맘에 들면 된 거지!

그리고 딸에게 하고픈 말을 혼자 중얼거렸다.

'딸아, 엄마도 한때는 패셔니스타였어!'


짧은 가죽바지에 롱부츠를 신고, 베레모를 쓰고 거리를 활보하던.

스키니 청바지가 처음 나왔을 때, 쫄바지 입고 왔냐고 온갖 놀림을 받아가며 유행을 선도하던.

여름에는 등이 훅 파인 형광색 민소매에 초미니스커트도 턱 하니 소화해내던.

발에 물집이 생겨도 아무렇지 않게 10cm 킬힐도 거뜬히 신어내던.

그런 패셔니스타였다는 것을.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 나니 나에게 신경 쓸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아니, 이제는 그런 쪽에는 관심이 가질 않는다. 언제나 나의 신발은 운동화이고 옷차림은 편한 티셔츠에 편한 바지. 하지만 그런 내가 싫지 않다. 나에게 어울리는 차림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지금의 나는 외면보다는 내면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남들이 바라보는 시선을 신경 쓰느라 예쁜 옷을 입고, 예쁘게 치장하기보다는 나의 마음과 생각에 집중하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딸도 언젠가 나이를 먹어가며, 그때 엄마가 왜 그렇게 편한 옷 들을 고수했는지 이해하게 되겠지?





횡단보도를 건너며 딸아이가 묻는다.

"엄마, 저 아줌마처럼 저런 옷 입어본 적 있어?"

예쁜 롱 원피스를 찰랑이며 지나가는 한 여자를 보고 하는 말이다.

"있지. 당연히. 엄마는 어릴 때부터 치마만 입었어. 체육복 입고는 학교도 안 갔어. 대학교 때도 항상 미니스커트였고. 야 엄마 옷 잘 입었거든!"

딸이 히죽히죽 웃는다.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히히,,, 진짜?"

"그럼. 엄마도 한때는 패셔니스타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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