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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Feb 20. 2024

오래 달리기를 잘하고 싶은 그대여

마음 가는 대로

연애할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롱런하려면 그러면 안 돼. 조급해하지 말고, 밀당을 해야지. 그리고 너무 붙어있지 말고 각자의 영역을 잘 지키라는 말. 안 좋아하는 척 쭈뼛거리다가 연애만 시작하면 간과 쓸개를 다 퍼다 주는, 연애만 하면 모임에는 두문불출하고 데이트하기에 바빴던 내가 자주 들었던 조언이다. 연애보다도 더 긴 생명력을 지닌 인생은 롱런하기 위해 지켜야 할 것이 더 많다. 속도를 조절할 것, 나만의 페이스를 찾을 것, 휴식으로 나를 돌볼 것, 나 말고 타인도 배려할 것 등등. 하지만 연애를 하면 느꼈던 사실은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것이 최고라는 사실. 



술에 취해 밤새 몇 십통 씩 전화를 걸어 다음 날 땅을 치고 후회해도, 후회해 본 경험을 하는 것이 훨씬 좋았다.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하지 않은 것들은 두고두고 미련이 되어 인생의 롱런에 방해가 될 것이 분명하니까. 적당한 속도와 적당한 호흡 적당한 거리라는 분명하고도 정확한 오래 달리기 잘하는 방법 말고, 나만의 노하우를 공개해 볼까 한다. 물론 연애 고수들에게는 지극히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1. 못 먹어도 고!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사후세계니 환생이니 이다음의 생이 또 있다고들 말하지만 어찌 됐든 나의 이름으로 나의 인생을 사는 건 단 한 번뿐이다.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은 유일한 순간이며 우리는 그 시간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미래의 일을 멀리 내다보고, 상처받고 손해 보는 일로부터 나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생 중반기에 들어 돌아보니 일단 무조건 고를 하는 것이 맞다. 피박을 쓸게 뻔히 보여도 고를 해보는 거다. 끝까지 고를 해본 사람만이 나중에는 아무런 미련 없이 멈출 줄도 알기 때문이다. 인생의 오래 달리기에서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자기 부상 열차에 올라타서 쌩쌩 나아가 보고 싶다면 무조건 고를 하라! 행여 달리다 떨어진다해도.




2. 다른 길로 가도 괜찮아!

연애를 할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어떻게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고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한 사람이랑 결혼해서 평생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 누군가와 썸을 탈 때면 이 사람이 호감이 갔다가 또 더 멋진 남자가 나타나면 마음이 변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더 이상의 연애 세포 따위는 깨어나지 않더라는 것. 그러니 그냥 마음이 동하는 순간에는 그 마음에 따라 다른 길로 가도 괜찮다. 여태껏 사랑한 무언가를 버리고 다른 길로 가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거나, 그래서는 안 된다며 부여잡고 있기보다는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또 다른 길로 가봐도 괜찮다. 하얗게 그려진 트랙을 조금 밟아도, 그 트랙을 벗어나 새로운 트랙을 찾아가도 괜찮다.




3. 마음껏 질척거려라!

누군가를 좋아하면 푹 빠지는 스타일이라 정말 질척거렸다. 같이 사랑을 말해놓고선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는 이들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진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허나 마음껏 질척거리고 진상 중에 진상이 되고 나면 더 이상의 미련은 남지 않는다. 오히려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어떤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어떤 것에 마음을 쓰며 어떤 것에 마음을 쓰면 안 되는지를 저절로 체득하게 된다. 질척거리고 좌절하고 슬퍼하고 망나니가 되어 본 만큼 다시 일어나 덤덤하게 더 오래 달릴 수 있다. 그러니 이제 나이 들었다고 체면 차리지 말고 마음껏 슬퍼하고 마음껏 아파하고 마음껏 질척거려라. 진상이 되어 본 사람 많이 진상(眞相)이 될 수 있으리라. 





20km 마라톤에 도전한 적이 있다. 미리 소지품을 담을 수 있는 가방을 구매했고 발이 편한 운동화를 준비했다. 마라톤 당일에는 밥을 적당히 든든히 먹고, 혹시나 중간에 당이 떨어질까 봐 에너지바를 몇 개 넣어갔다. 달리면서는 그늘을 찾았고 쉼터에서 물을 너무 많이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힘들어도 멈추기보다는 느린 속도라도 달리기를 유지하며 페이스를 조절했다. 그렇게 제한 시간 안에 들어왔다. 오래 달리기를 잘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것들이 참 많았지만, 돌이켜보니 그건 제한시간 안에 들어오기 위해서 유의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유한한 인생이지만, 인생의 오래 달리기에는 제한 시간이 없다. 소지품을 손에 들고뛰다가 주우러 가도, 밥을 조금 많이 먹어 잠시 화장실에 들러도, 물을 많이 마셔서 잠깐 지쳐 쓰러져도 괜찮다. 그러다가 다시 또 터벅터벅 걸어가면 되니까. 


그러니 오래 달리기를 잘하고 싶은 그대여, 마음 가는 대로 고를 외치며, 이쪽저쪽 기웃거리고도 하며, 울고 웃고 즐기며 열정과 정열의 시간을 쌓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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