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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Feb 15. 2024

오래되어 낡은 그래서 더 따스한 솜이불

20대에 서울로 상경하여 홀로 살았다. 당시에는 무어하나라도 아껴야 하는 경제 상황이었다. 고시원에서 살며, 스스로 벌어서 학원비를 내고, 밥을 먹었다. 엄마, 아빠에게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 서울에서의 생활은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했다. 취업을 위한 시험을 치르려면 차비도 필요하고, 옷도 필요하고, 화장품도 필요했다. 시험을 위한 스터디를 하기 위해서는 공간대여비도, 사람들과 함께 먹을 식사비도 필요했다. 그래서 어쩌다 고향에 가면 눈에 불을 켜고 무엇이든 가져왔다. 혼자 사는 살림에 돈을 들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고시원에 처음 자리를 잡고 이부자리 하나즘은 사기 마련이건만 집에서 덮던 이불을 고시원으로 부쳤다. 고시원은 방과 방끼리 붙어 있어 그리 춥지는 않았다. 차라리 더운 게 문제였다. 그렇게 사계절 용으로 가져온 솜이불 하나로 버텼다. 취업을 하면서 고시원을 옮겨도 이불도 고스란히 옮겨가 함께 했다. 혼자 살며 무섭고 힘들고 지치고 아픈 날 솜이불은 나를 감싸주었다. 새로 산 이불이 아니라서 오히려 좋았다. 엄마, 아빠, 언니의 온기가 묻어 있는 이불이 함께 해준다는 사실이 내게 더 위로가 되었다. 오래전 일요일 아침, 4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드라마 '짝'을 보던 그 시절의 포근함이 솜과 솜사이 켜켜이 담겨있었다.



결혼을 하면서 나의 거처는 고시원에서 신혼집으로 바뀌었고, 이불도 함께 왔다. 새로 들인 침구가 올 때까지만 쓰고 처분을 하리라 마음먹었지만, 막상 새 이불이 침대 위에 가지런히 놓이고 나서도 오래된 솜이불은 여전히 집의 한자리를 차지했다. 거실 소파에서 티브이를 본다거나, 거실에 잠깐 눕는다거나 하는 용도의 이불은 따로 구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낡은 솜이불은 아무렇게나 막 써도 좋았기에 이곳저곳에 앉고 여기저기에 누울 때마다 쓰였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고 이불이 새로 들어왔다. 오래된 솜이불은 설 자리가 없어지는가 싶었는데,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누구나 알 테다. 집에 폭신폭신한 공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오래된 솜이불은 기어 다니는 아이가 넘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폭신한 벽이 되어주었고, 조금 더 커서는 아무렇게나 넘어져도 다치지 않는 폭신한 바닥이 되어주었다. 조금 더 커서는 아이가 요새를 짓고 소꿉놀이를 하는 아늑한 공간도 되어 주었다. 첫째가 자라고 둘째가 자라고 그동안 솜이불은 더 낡고 더 해졌지만 그만큼 더 온기를 품고 추억을 담았다. 



하루는 시어머니가 우리 집에 와 머무르게 되셨는데, 낡고 낡은 이불을 보고는 이제 그만 버리는 게 어떠냐고 하셨다. 본가에 새 이불이 많다며 가져가라고도 하셨다. 사실 그 솜이불이 없어도 우리 식구가 이불을 덮고 사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아이들이 각자 침대를 가지면서 더 많은 새 이불이 들어왔고, 놀이를 대체할 이불도 많아졌다. 새 이불은 과학 기술의 발전을 반영하여 더 가볍고 더 따스하고 더 시원해졌다. 그럼에도 거실에서 아이들과 장난칠 때, 소파 위에서 가볍게 덮을 때, 그냥 막 써도 편하고 막 빨아도 편한 이불을 생각하면 그 솜이불이 떠올라 언제고 그 솜이불을 꺼내온다. 오래되고 낡은, 모서리가 해어져 뜯어지기도 한 그 솜이불은 아마도 우리 집에서 내가 떠나는 그날까지 함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면 시간의 힘이 참 무섭다. 세월의 힘이 강력하다. 원가족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나에게 선물했던 솜이불에 이제는 나의 아이들과 남편과의 시간을 쌓아간다. 낡은 솜이불의 솜이 떨어져 나가고 천이 뜯어졌지만 이불은 여전히 따스하다. 아니 오히려 전보다 더 많은 온기가 깃들어 더 보드랍고 두터운, 평안한 솜이불이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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