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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May 13. 2024

우리 가족

인생이 변해가는, 삶의 순리라는 건 참 신기하다. 내가 꼬마였을 때는 엄마 껌딱지였다. 엄마 없으면 죽는 줄 알았는데, 엄마 없이 집 떠나 타지에서 살다 보니 뭐 그럭저럭 괜찮은 삶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혼자라는 삶에 익숙한 척 할 때 즈음, 외로움이라는 녀석이 훅 치고 들어와서는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친정에 가면 몸은 편했지만 내 집처럼 편한 마음은 점점 사그라들었다. 결혼을 한 지 10년이 지나고 식생활을 비롯하여 다양한 문화생활, 생활습관등이 지금의 동거인들과 일치하게 되자, 더 이상 엄마 아빠와의 삶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신경 써야 할 것이 많고 챙길 것이 많고 배려해야 하는 것이 더 많은 삶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가족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엄마, 아빠, 언니와의 가족을 떠올리기보다는 지금 나와 꽁냥꽁냥 티격태격 살고 있는 남편과 딸과 아들을 떠올리게 된다. 가족구성원에 대한 소개를 어디까지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이렇게도 장황한 부연설명을 해버렸다. 이제는 한 가정의 엄마가 되어 가족이라는 단어를 듣고는 내가 꾸린 내 가정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걸 엄마가 이해해 주리라 생각하며, 지금 나와 한 공간에서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함께 공유하는 가족들을 한 명씩 소개해 본다.



1. 지식그림책인간

누군가는 '딸이 있어서 참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음, 딸이 있어서 좋다. 하지만 딸이라고 해서 누구나 말하는-감정을 잘 이해해 주고, 다정다감하다는- 그런 이유로 좋은 건 아니다. 자기 보고식 평가라는 커다란 취약점을 가진 엠비티아이를 맹신하지는 않지만, 또 아직 아이는 얼마든지 바뀌고 변할 수 있는 초등학생에 불과하지, 우리 딸은 정말 정말 거대한 대문자 T다. 감정보다는 논리와 이성이 앞서야 이해하고 공감한다. 뭐 그게 무언가를 설득할 때 논리만 있으면 쿨하게 먹혀서 좋기도 한데, T성향인 나조차도 극 T 성향의 딸이 가끔은 버거울 때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우리 딸은 지식그림책 같다. 지식 그림책처럼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며 세심하고 촘촘하다.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밝히고, 계획적이고 예상가능한 인생을 사는 인간, 우리 딸이다. 나는 그런 우리 딸이 투명해서 좋고 보면 볼수록 배울 점이 많아서 좋다.




2. 창작그림책인간

얼마 전 우연히 금쪽이 프로그램을 가족들이 다 같이 보게 되었는데, 아빠에게 욕을 하고 대드는 금쪽이를 보고는 가족 네 명 중 유일하게 아들만 눈물을 흘렸다. 욕을 듣는 아빠도 불쌍하고. 그렇게 말하는 아들도 불쌍하다고. 글썽글썽 눈시울이 시뻘게져서는 입을 삐죽거리는 아들. 귀엽고 재미있고 엉뚱한 아들은 창작그림책 같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몇 배나 더 오버해서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기도 하고, 또 코끝이 찡해오는 감동적인 이야기는 또르륵 눈물도 흘려가며 즐길 줄 아는 감성형이다. 엉뚱한 상상도 어찌나 잘하는지 판타지와 현실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아들은 창작그림책 같다. 매일 살아있는 창작그림책을 넘기며 나의 동심을 자극한다.




3. 글없는그림책인간

마지막으로 우리 집의 커다란 울타리, 우리 집에서 가장 데시벨이 큰 남편. 남편은 언제나 목소리가 크다. 학창 시절부터 귓속말을 못하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선생님 몰래 누군가 귓속말로 장난을 치면 커다란 목소리로 '뭐라고?'를 질러대는 바람에 같이 속삭인 친구들이 곤란한 적도 많았다고. 남편은 아이들과 참 장난을 잘 친다. 특히 사춘기에 근접해 가는 딸에게는 한발 물러선 반면, 엉뚱한 아들과는 유치뽕짝 장난의 합이 척척 맞다. 둘이 장난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왁자지껄 그 자체다. 그런데, 왜 글 없는 그림책인간이라고 표현했냐고? 그야 제발 좀 조용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여보, 요즘은 글 없는 그림책이 대세야.)





어찌 됐든 전부 내가 사랑하는 그림책을 쏙 빼닮은 그런 가족들이라는 사실.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어쩌면 그림책이 가족들을 닮아서 내가 그림책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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