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 페달에 발을 올리고 조금 더 세게 밟았다. 몇 미터 가지 않아 띠링띠링 경고음이 차 안에 울려 퍼졌다. 내비게이션 속 빨간 동그라미 안의 50이라는 숫자와 그 위에 더 빨갛게 표시된 57이라는 숫자. 발을 떼고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횡단보도에 다다르자 빨간색 신호등에 불이 들어왔다. 발을 브레이크로 옮겨 멈추어 섰다. 다시 초록불. 브레이크에서 액셀로 다시 발을 옮겨갔다.
운전을 할 때마다, 더구나 신호 대기 순간 빨간 불을 바라보고 있으면 더더욱 생각나는 것이 있다. 힘든 날이면 그런 마음이 굴뚝같아지고, 머릿속이 복잡하면 더 많이 공감하고, 생각이 많아지면 격하게 원한다. 인생에도 이런 신호등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아쉽다는 문자만 자꾸 와서 다음기회라는 메일만 자주 와서 가슴에 저격당하는 그런 때에, 아이들이 한숨만 쉬고 또 똑같이 행동해서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몰라 답답하고 갑갑하고 미로에 갇힌 것 같을 때, 도대체 왜 이러고 사냐고 나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지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그런 때에 내 인생에도 정해진 신호등이 있으면 어떨까 상상하곤 했다. 좌회전하라고 알려주고, 여기서는 60으로 다니라고, 이 길로는 들어가면 안 되고 나오기만 해야 한다고, 잘못 갔으면 유턴하여 돌아오면 된다고 누군가가 자세히 친절히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하지만 인생의 길이란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모습이 너무 달라서 정해놓은 신호가, 적당한 속도가, 알맞은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저 각자가 각자의 속도에 맞게 각자의 방향으로 가는 것뿐이다.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나를 이끌어주는 인생의 신호등은 비록 없지만 나 나름대로의 신호등을 상상하곤 한다. 하는 일마다 안 된다면 잠깐 쉬어가라는 뜻이구나, 뭘 해도 척척 들어맞으면 지금은 계속 달리라는 뜻이구나. 됐다 안 됐다 됐다 안 됐다 하면 조금 천천히 우회해 보자고 마음을 먹는다.
그러다 어떤 날은 뿌옇게 낀 안갯속에 파묻혀 나만 볼 수 있는 내 신호등마저도 찾을 수 없는 날도 있다. 또 어느 날은 온갖 빨간불이 깜빡깜빡 점멸신호를 보낼 때도 있다. 그래서 비상등을 켜고 빙글빙글 그 주변을 계속 맴돌거나 아예 터무니없는 곳으로 길을 잘못 들어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할 내 모습을 그리며 나아간다. 인생의 최종 목적지야 알 수 없겠지마는 지금 내가 가고 싶어 하는 그곳에 도착해,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벌컥벌컥 들이켜 마는 나를 상상하며 나만의 신호를, 나만의 속도를, 나만의 경로를 지키며 나아간다.
어차피 세상의 모든 길은 이어져 있고, 조금 늦어도 가면 되고, 어떻게 가든 도착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