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별을 노래할 수 있는 이유
세상엔 수많은 종류의 비극이 있다.
그러나 노래로 불리는 비극의 소재는 이별뿐일 것이다.
실패, 끔찍한 사고, 살인사건, 폭력, 상해와 같은 일이 노래의 소재가 되는 일은 잘 없다. 하지만 성애의 끝과 그 고통의 여정은 지극히 미화되어 넘쳐나도록 노래로 태어난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별이라는 종류의 비탄은 앞서 나열한 비극들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별이라는 것이 누구나 살면서 겪는 일이라기에는 버거운 고통을 준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별 한 사람들이 아무리 허무하고 못난 이별을 했어도 그것을 미화하고 포장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사실 이별을 소재로 한 노랫말도 이별 미화의 한 방식이며 이별은 신금을 울리는 멜로 영화나 드라마, 소설과 같은 스토리텔링 되는 모든 것들에 무한한 소재로 미화된다. 이별은 창작자에게 더 없는 영감이자 뮤즈가 된다. 여기서 이별이라는 고통이 지니는 도취적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어느 정도 이별이 주는 고통에 취한다.
이별은 통보한 쪽과 통보받은 쪽이라는 미묘하게 다른 입장 차이에 따라 양분된 감정 상태를 겪게 한다. 이별 후 쉽게 싸구려 감상에 젖게 되는 쪽은 주로 이별 통보자 쪽이며 통보받은 쪽은 치명적인 자존감의 상처로 한동안 형용할 수 없는 비탄에 빠지게 된다. 이런 경우 감상에 젖을 새도 없이 스스로가 한없이 비참할 뿐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격렬히 고통스러운 이별 초기를 지나 잔잔하게 그 사람을 추억할 수 있을 때 진정 이별을 노래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극도로 힘든 시기에는 아름다운 이별 노래도 소음일 뿐이었던 것을 나는 경험했다.
어느 정도 망각의 축복이 드리우고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만큼 무뎌졌지만 여전히 이별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우연히 듣게 된 추억이 담긴 노래나 문득 떠오른 기억으로 가슴이 아프지만 한편으로 그 감정에 묘한 도취감을 느낀 적이 있지 않은가?
극단적으로는 사랑의 실패로 목숨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별이 주는 고통스러운 상태가 한시적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헤어진 그 사람으로 인해 힘들었던 나날들이 무색하게 새로운 만남으로 너무 쉽게 망각해 버리기도 하는 것이 허무한 연애의 실체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별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별이란 고작 노래할 수 있는 성질의 비극이라는 사실로 우리는 무의식적인 위로를 받고 있지 않을까?
2016. 4. 4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