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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땅, 내 사랑

어느 날, 이 사랑의 끝을 상상해 보았다.

by 김모고

"가능하시다면 이제 피하수액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2023년 10월의 어느 날이었다.

남편과 15년간 함께 했던 본가의 강아지가 강아지별로 돌아간 지 열흘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날 밤은 무척이나 길었고, 집으로 혼자 돌아와 울고 있던 나에게 몽땅이가 다가와서 가만히 곁에 있어줬었다. 그때 처음으로 깊게 생각해 봤던 것 같다. 몽땅이가 없는 어느 날 밤을.


그리고 차분한 말투로 설명해 주시는 수의사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한번 그날 밤 했던 생각들을 떠올렸다.


사실 고양이에게 피하수액을 하는 게 그렇게 대단히 드문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노묘들은 신장 관련 질환을 가지고 있고, 또 질환을 가진 아이들은 대부분 피하수액을 받고 있으니까. 하지만 내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수의사 선생님께서 내가 생각하던 그 부분을 바로 짚어주셨다.


"그렇지만 몽땅이가 너무 어려서 말이죠.. 어린데 수치가 이래서.."


몽땅이의 신장 수치는 BUN 2.9/CREA 1.96 정도로 신부전 stage2에 해당한다고 했다. 신장에 손상이 있고 기능 저하가 우려되지만 수치상으로는 아직 보조제 이외의 다른 약을 먹어야 될 정도는 아니라고 하셨다. 다만 초음파로 봤을 때도 신장 손상이 눈에 보여서, 확실히 손상이 진행되어 있으니 꾸준히 케어해줘야 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몽땅이는 겨우 두 살(태어난 날짜를 정확히 알지 못해 추정한 나이이기는 하다)이었다. 도움을 얻고자 환묘 카페를 가입하거나 인터넷을 검색하면, 노화를 동반한 신장 기능 저하를 겪고 있는 고양이들의 사례가 많이 나왔다. 어쩌면 몽땅이는 '노묘'가 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여기 잘 관리받으며 나이 먹어가고 있는 고양이들의 사례와는 다른 케이스인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머릿속이 아찔해지기도 했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책으로도 찾아보고. 이것저것 공부하고 고민했지만 결국 내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드는 것은 내 눈앞에 보이는 이 하얀 털뭉치의 존재 그 자체였다. 얘는 너무 아기잖아! 물론 성묘였지만 내 눈에는 그저 아기였다. 작고 소중한, 연약한,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나의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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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중요한,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때 느낀 감정이 아무리 강렬한 것이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색이 바래버리고 마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내가 정말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언젠가 사라질 것들을 나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아마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결론을 내릴 것이다. 그리고 이건 내가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면 증발할 기억들을 하루하루 글로써 묶어두는 것.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작고 사소한 이야기마저 그리워할 어느 날을 위해 열심히 모아두는 것. 그렇게 결코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손으로, 실체로 구현해 낼 수 있다고 한다. 아마 글을 잘 쓰는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고, 내 생각을 글로 남기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 글로 쓰는 것뿐만 아니라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정리하는 일도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남겨둬야만 했다. 시간은 흐르고 언젠가 이별은 다가오고 말 테니까.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나의 고양이와의 시간들을 기록해 두기로 했다. 몽땅이가 내 곁에 오래 있어준다면 그건 그거대로 뿌듯한 기록이 될테니까



부디 함께 하는 시간이 늘 행복하고 건강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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