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은 원래 춥다

by 모과

쉽지 않은 1월이었다. 이번 겨울은 이상하게 더 춥고 길다. 찾아보니 작년과 크게 차이는 없는데 한파가 지속되는 시간이 길어 더 춥게 느낄 수는 있다고 한다. 아무튼 춥다. 창가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발이 너무 시립다.


12월 말일에 돌려받지 못했던 아내의 전세금을 돌려받았다. 공증과 소송 같은 단어가 오가는 3개월 간의 어려움 끝에 받아낸 돈이었다. 마침 해가 넘어가기 전에 받아낸 것이라 뜻깊었고 가족들은 기뻐했다. 도움을 줬던 몇몇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하자 축하를 건네왔다. 너무 잘됐다! 이제 걱정할 게 없겠어! 하지만 나는 그렇게 기쁘진 않았다.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최악은 면했군, 정도였다.


역시나 12월의 기쁨이 1월로 고스란히 이어지진 않았다. 위기는 전세금을 받은 다음 날 바로 찾아왔다. 우리는 그동안 전세집에 묶어둔 아내의 짐을 빼서 바로 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짐이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줄인다고 줄였지만 10개가 넘는 이사박스가 나왔다. 수납이 잘 짜인 새 집으로 이사하는 것이면 좀 나았겠다만 내가 살던 집에 아내가 들어오는 것이었고 이 집은 아직 짐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전세금 돌려받기에만 급급했던 우리는 그다음 순서를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박스가 성벽처럼 거실에 쌓였다. 우리는 매일 밤 쌓여있는 짐과 통장에 쌓인 전세금을 마주하고 어떻게 치우고 어떻게 활용할지 논의해야 했다. 아내의 야근이 잦았기 때문에 속도는 나지 않았고 11시가 넘긴 시각에야 간신히 거실에 모인 우리는 자주 다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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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바 십분의일은 올해로 10년 차를 맞이한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10년씩이나 했다니 대단하네. 딱히 걱정할 게 없겠어. 10년이라는 세월은 감사한 숫자지만 그렇다고 걱정할 게 없진 않다. 얼마 전엔 매장 천장에 고양이가 들어왔다. 십분의일은 워낙 오래된 왜식 목조 건물이라 천장에 복층 구조처럼 생긴 공간이 있다. 그곳 어디에 틈이 생겼는지 어느 날 갑자기 고양이가 들락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날이 추워 한 두 번 들어오나 싶더니 어느새부턴가 주기적으로 들어와 자리를 깔기 시작했다. 공간이 꽤 넓어 고양이 입장에선 웬만한 원룸 오피스텔 이상이었을 것이다. 안 되겠다 싶어 주인분과 상의해 결국 천장 공사를 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현재보다는 미래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여자친구가 없어 고민 많던 중학생 때는 고등학생이 되면 자연스레 연애를 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생기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는 늘 교복을 살짝 크게 입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지금보다는 키가 크고 몸이 커질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친구들은 내가 힙합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현재의 만족보다는 미래의 기대 속에서 살 때가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미래의 나는 더 강해져 있겠지. 그러고 보니 노래도 에메랄드 캐슬의 발걸음을 좋아했다. 시간은~ 해결해 주리라~ 난 믿었지. 그것조차 어리석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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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는다. 젊은 시절 이별의 아픔정도는 시간이 어떻게 해주겠다만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냥 계속 되풀이될 뿐이다. 10대의 나는 20대, 30대가 되면 당연히 아주 멋진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며 보란 듯이 잘 살고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1년 차에는 1년 차의 기쁨과 고난이 있고 10년 차에는 10년 차의 편안함과 괴로움이 있다. 미리 다 계획하고 대비한다면 괜찮지 않겠냐 싶겠지만 10년 동안 멀쩡하던 건물 지붕에 틈이 생겨 거기로 고양이가 들어올 줄 어떻게 알았겠으며, 소송 직전까지 가던 전세 사기가 극적으로 해결되어 돈을 받게 될 줄도 몰랐다.


심슨 가족의 수많은 에피소드 중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남극에서 펭귄 무리를 보던 리사와 바트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

KakaoTalk_20260128_222916491.jpg Stop thinking about having fun and have it!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 날이 추우면 두꺼운 양말을 꺼내신든 핫팩을 사두는 대비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변수들에 대해선 가능한 즐기는 수밖에. 이런 것도 습관이니 틈틈이 연습이 필요하다.


아 춥지만 창가에 앉아 글을 쓸 수 있다니 참 많이 컸다.

딱히 소재가 없었는데 고양이가 제 발로 들어와 주다니 땡큐 쏘마치

아 아내가 전세금을 돌려받다니 세상에 이런 럭키비키가 따로 없다

중학교 때는 여자친구도 없었는데 이제는 아내가 있다니 이번 생은 완전한 성공이다! 하하하하


하다 보니 10개는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오버하면 역풍이 불 수도 있으니 오늘은 여기서 마감하려 한다.


내년 1월은 올해보다 더 추울까. 아마 곧 가만히 있어도 땀이 뚝뚝 떨어지는 무더위를 겪을 우리들은 추위 따위는 금세 잊어버렸다가 다시 1월이 되면 또 되뇔 것이다. 올해 왜 이렇게 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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