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밥을 남기지 않고 있다. 집에서 먹을 때야 내가 만들어 먹는 것이니 말할 것도 없고 밖에서 밥을 사 먹을 때도 차려진 음식을 가능한 말끔히 먹으려 한다. 반찬까지 싹 비워버린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일정 기간을 두고 하는 챌린지도 아니다. 이런 것도 일종의 취미나 특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취미의 사전적 정의는 '전문적 일이 아닌 기쁨이나 재미를 얻기 위해 여가 시간에 즐겨하는 활동'이고 특기는 '남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기술'이다. 밥을 남기지 않은 건 재미를 얻기 위한 활동은 아니지만 상당한 뿌듯함을 느낀다. 나만의 특별한 기술이라고 하기는 뭐 하지만 가끔은 자랑하고 싶은 나만의 루틴이기도 하니, 취미와 특기의 중간 어디쯤이라고 해야 할까.
아마 이 비밀스러운 여가생활은 십 분의 일을 운영하면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십분의일은 애초에 '잔반'이 많이 나오는 가게가 아니다. 어디 가서 짜파게티를 남겨본 적 있으신지? 치즈, 햄 등의 간단한 와인 안주 위주로 판매하는 곳이다 보니 다른 일반 음식점에 비해 버려지는 음식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가끔은 남겨지는 음식들이 있다. 이유는 다양했을 것이다. 입에 안 맞을 수도 있는 것이며 막상 시켜놓고 보니 손이 안 갔을 수도 있고. 맛있어서 아껴먹다 보니 애매하게 남아버리는 그런 안주도 있지 않는가. 남기는 것은 어디까지나 손님의 재량인데 가게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그게 그렇게 가슴이 쓰라렸다. 아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정성껏 플레이팅 해 나간 멋진 음식이 이제 곧장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한다니. 혼자 하던 시절엔 업장의 모든 것에 자아를 투영시킨다. 자식 같은 음식.. 을 넘어 내 분신과도 같다는 일종의 과잉 자아 투영이 가슴을 치게 만든 것이다. 흑흑 나를 쓰레기통 처박아야 한다니.
원통한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옅어졌지만 여전히 비대했던 자아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됐다. 바로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에 대한 집착이다. 시작은 내 가게에서 말끔히 돌아오는 빈 그릇을 보니 참 좋다, 그렇다면 나도? 다른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남기지 말아야지~싶은 유치원생 뺨치는 맑고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됐지만 거듭하다 보니 내 밥그릇이 아닌 다른 이들의 밥그릇까지 신경 쓰게 된 것이다. 친한 친구들에겐 대놓고 지랄을 하기도 했고(밥을 남겨...?), 조금 덜 친한 관계일 땐 간접적으로 압박했다. 가령 함께 먹는 사람이 자신의 음식은 남긴 채 나에게 "오 아주 깨끗이 드시네요?"라고 한다면 큰 소리로 "네 저는 음식을 남기는 건 죄악이라고 생각해서요. 허허..."라는 식으로 압박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했을 때 내 눈치를 보며 그 그..렇네 마저 먹을까? 하며 주섬주섬 남기려던 음식을 마저 먹는 사람도 있었다. (죄악이라는 단어까지는 안 썼던 것 같다)
한동안 그렇게 날뛰던 자아는 본가로부터 독립을 한 직후 가장 극에 달했다. 더 이상 친구도 모임도 거의 없어진 나는 대부분의 음식을 스스로 집에서 해 먹기 시작했는데 실력이 조금씩 늘면서 양념장 같은 것도 웬만하면 직접 만드는 단계로 넘어갔다. 그렇게 파와 마늘 같은 재료들까지 직접 사서 조리하다 보니 쌀한 톨, 김치 한쪽까지 소중하게 여기며 "내가 뿌려먹던 소스가 이렇게 만들어졌구나..." 되뇌이게 됐다. 사실상 자연인의 영역으로 진화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끝을 달리던 혼자만의 집착은 먹다가 남기는 음식보다 냉장고에서 썩혀서 버리는 게 더 많다는 사실에 현타를 겪으며 서서히 내려놓게 됐다.
러닝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주변인들에게 러닝을 권하긴 하겠지만 굳이 멱살 잡고 끌고 달리진 않는다. 달리기를 하고 마는 데는 다 각자의 사정이 있다. 할 수 있는 여건이 돼서 같이 달리면 좋고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음식을 남기니 많이 하는 것도 똑같다, 는 아주 상식적인 생각을 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비대했던 자아를 조금씩 내려놓으며 더 이상 밥상머리에서 상대에게 눈치를 주는 유난은 떨지 않게 됐다. 대신 나만의 작은 취미생활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러닝처럼 누군가 함께 해도 좋지만 아니어도 혼자 달리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뿌듯한 취미생활.
최근 릴스에서 독특한 분을 봤다. @1trash1follow. 집 앞 골목의 쓰레기에 현타가 와서 혼자 쓰레기를 줍다가 아예 릴스를 만들어 올렸다. 팔로우 1명이 늘면 쓰레기 1개를 줍겠다는 슬로건으로 계속 쓰레기를 줍더니 어느새 팔로워 20만을 넘겼다. 주말마다 공지를 올리고 팔로워들과 함께 쓰레기를 줍는다. 진정한 인플루언서라는 생각이 든다. 다 같이 모여 잔반을 남기지 않은 캠페인을 벌일 생각은 없지만 언젠가 러닝처럼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음식을 남기지 않은 것을 하나의 취미쯤으로 여기는 시절이 오는 것은 잠깐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