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여행의 시작

울란바토르에서

by 모과


작고 통통한 몸에 살짝 그을린 피부, 길게 쭉 찢어진 눈을 가진 짜야 아줌마가 나를 보며 실쭉 웃었다.

“조금 춥지? 어제 비가 오고 나서 온도가 더 떨어졌어.”

한국에서 15년 가까이 일했다는 몽골 아주머니의 한국말은 막힘이 없었다.

“옷 많이 가져왔어? 몽골사람들은 고기를 많이 먹어서 추위 잘 안타. 그런데 어떻게 혼자 오려했어?”

반팔을 입은 짜야 아줌마는 내가 걱정됐는지 연신 질문을 쏟았다. 그중에서도 화두는 공항에서 어찌 혼자 오려했냐 였다.


IMG_0471.JPG 징기스칸의 시작

가이드를 둔 투어 여행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대학 시절 베이징 여행을 3박 4일짜리 패키지 투어로 해본 적 있다. 여행 경험이 부족했던 당시로서도 ‘아 이건 아닌데..’ 싶었다. 관광버스에 올라 어디가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른 채 이리저리 며칠 돌아다니고 나니 그제야 관광과 여행의 차이를 실감했다.

몽골 여행이 괜히 망설여졌던 것도 몽골은 대부분 투어사를 통해 여행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나중에야 몽골도 자유여행을 하는 방법이 영 없진 않다는 걸 알게 됐지만 당시로선 네비도 잡혀지 않는 초원을 스스로 차를 몰고 달리는 모습은 전혀 상상되지 않았다. 좋은 가이드와 동행을 만나 즐겁고 편안한 (투어) 여행을 해보자. 내 몽골 여행은 거기까지 였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자유) 여행의 기분을 내고 싶었던 터라 최대한 작은 투어사를 찾고 – 물론 작은 투어사가 그런 기분을 낼 수 있을 거란 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 – 캐리어가 아닌 배낭을 꺼내 멨다. 급기야 공항에서는, 가이드인 아미에게 숙소까지 알아서 찾아가겠으니 픽업은 걱정 마시라는 문자를 덜렁 보내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아미는 생각했던 것보다 프로페셔널한 면이 있는 친구였고 애초에 얘기됐던 대로 픽업 기사인 짜야를 공항으로 보냈다. 한편으로는 안도했고 또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가출을 하려다 30분 만에 엄마에게 붙잡힌 기분.

공항을 나서 차에 오르니 더 시원한 공기에 얼굴에 닿았다. 울란바토르에서 택시를 하며 여름엔 투어일을 한다는 짜야 아줌마의 운전은 능숙했다. 20분 정도 지나자 울란바토르 시내가 나왔다. 솔직히 시내는 삭막했다. 어디서 본듯한 러시아풍의 건물들이 그나마 다른 나라에 왔다는 기분을 내줬다. 울란바토르 시내는 딱히 볼 게 없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다.


창밖을 한참 바라보는 나에게 짜야 아줌마가 말을 걸었다.

“별로지?”

짜야 아줌마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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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F2600.JPG 숙소 근처. 물론 시내 중심으로 나가면 좀 더 화려하다


저녁이 되자 숙소로 투어 일행들이 하나 둘 모였다. 동행은 남들처럼 몽골 여행카페에서 구했다. 글을 올리기도 하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꽤 열심히 동행을 찾았는데, 어째 그렇게 그룹을 짓고 나니 나를 제외한 4명이 모두 여자였다. (물론 그냥 우연이었다) 처음엔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나 자신을 내려놓고 편하게 가기로 했다. 주변에선 짐꾼으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만 다행히 나는 힘도 세지 않고 남의 짐을 잘 들어주는 편은 아니어서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다행히 우리 동행들은 좋은 사람들이었고 각자 짐은 스스로 들 수 있는 튼튼한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이런 식의 몽골 여행에선 거의 모든 구간을 차로 이동하기 때문에 굳이 짐을 오래 들일이 없었다.


IMG_0479.JPG 숙소는 몽골의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사실 더 궁금한 건 가이드를 하게 될 아미였다. 가기 전에 카톡을 주고받긴 했지만 젊고 남자라는 것 외에는 파악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만난 아미는 한국말을 상당히 잘하는 유쾌한 친구였다. 한국말을 잘하는 게 특징 중에 특징이었는데 농담이나 속담 등을 자유자재로 쓰는 건 기본, 취미가 랩이었는데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랩을 했다. (애초에 아미는 몽골대 언어학 전공에 한국 대구대 교환학생 출신;; 영어까지 3개 국어 프리토킹이 가능했다. 한국에 있을 때 한국어 경연 대회에서 우승하고 상으로 독도도 다녀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잠시 주눅이 들기도..)


실제로 학구열이 있는 청년이어서 여행 중에도 한국 영화를 돌려보며 한국어 공부를 했다. 한 번은 영화 <국제시장>을 보다가 “형, 발육상태가 상당히 남다르다 라는 게 무슨 말이야?”라고 물어보기도 해 5초간 고민하다 낮에 만났던 러시아 청년들을 예로 들며 진지하게 설명해주기도 했다. (바로 이해함ㅋ) 그만큼 아미는 참 부지런했다. 지금도 아미를 떠올릴 때면 나도 그렇게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 됐든 우리는 아마 덕에 든든하고 편안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아미는 그저 아미에 불과했을 뿐. 아미 이상으로 엄청난 사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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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가 다 되서야 해가 지기 시작했다. 유달리 이뻤던 울란바토르 하늘
한식을 좋아했던 짜야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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