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했던 바로 그 풍경

초원에서

by 모과
"몽골의 고민은 넓은 국토에 비해 인구가 너무 적다는 점이다. 남한 면적 15배가 넘는 넓은 나라임에도 인구가 300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참고로 인천광역시와 비슷한 인구다."


나무 위키에서 몽골을 검색하면 나오는 내용이다. 실제로 몽골은 사람이 눈에 띄게 적다. 그렇다고 길거리가 횅~한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서울처럼 사람이 붐비는 느낌은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살기 좋은 지방 소도시의 느낌? 이것도 어디까지나 수도인 울란바토르의 얘기고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갑작스럽게 게르와 초원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파란 하늘과 초원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드문 드문 나타나는 양 떼와 염소, 말 그리고 게르가 나타난다.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 풍경이다. 게르와 가축이 있는 걸 보면 어딘가 사람도 있다는 것인데 사람 구경은 정말 힘들다. 그런 그림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자니 어딘가 힐링이 되는 것 같으면서 쓸쓸해지기도 하고 온갖 생각이 들면서 마음 한구석이 촉촉해지기도 한다.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가, 세상은 넓고 자연은 아름답구나. 시라도 몇 편 쓸 수 있는 감성으로 우릴 끌어당긴다.


물론 이런 건, 처음 며칠간의 이야기고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차 안에서 달리다 보면 상당히 심심해지기 마련이다. 말이 나타날 때마다 셔터를 누르는 것도 한두 번이지 어차피 그놈이 그놈인지라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 시시해진다. 그래서 동행과 가이드가 중요하다. 나는 운 좋게 멋진 사람들을 만났고 가이드인 아미는 이야기했듯이 아주 특별한 청년이었다. 그런데 한 명이 더 있었다. 운전을 담당한 아므라였다.

짐을 실어주는 아므라. 앞장 서서 자꾸 무언가를 해줬다


아므라는 본명이 아마라싸나 바야르샤히칸..(몽골 사람들 이름이 대부분 이렇게 본인들도 부르기 어려운 긴 이름이었기에 그들도 부를 땐 간단하게 줄여서 불렀다. 심지어 아미는 예명이다. 본명은 바이락 어쩌고 저쩌고..) 지금도 따로 찾아보지 않는 한 도저히 기억할 수 없는 그런 이름이었고 겉보기엔 40대처럼 보이지만 3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정확히 하면 아므라는 늙어 보인다기보단 원숙한 느낌이었는데 다른 몽골인들에 비해 피부도 하얗고 눈이 들어가 있어 어쩐지 독일 사람 같은 느낌을 줬다. 그리고 실제로 굉장히 젠틀했고 무엇보다.. 부유했다.


아므라가 왜 부유한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냥 태생이 부자인 사람 같았고 (간단히 해서 금수저) 가이드 일은 취미 삼아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원래는 20대에 꽤 큰 사업을 하며 돈을 벌고 한때 방탕하게 살기도 했는데 미국에 놀러 갔다가 교회를 접하고 종교에 귀의했고 그리하여 남은 여생은 봉사활동이나 하면서 남을 위한 삶을 살자는 마음을 먹고 새사람이 됐다는 이야기. 젊은 나이에 경험이 많았던 탓인지 아므라는 못하는 게 없었다. 운전, 요리, 개그, 노래, 춤.. 전형적인 멀티 플레이어 금수저였던 것이다. 단 하나, 한국말을 못했는데 그거야 늘 인간 파파고인 아미가 함께 있으니 문제 될 게 없었고 간단한 말은 영어로 의사소통했다.


아므라의 활약은 여행 내내 계속되는데..다시 차 안으로 돌아오면, 우선은 함께 플레이리스트를 선곡하는 게 즐거웠다. 처음엔 한국 노래나 몽골 노래를 서로 틀어줄 때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백미는 팝송. 나이 때야 비슷했으니 함께 아는 뮤지션이야 많았고 다행히 취향도 겹쳤다. 비틀스를 흥얼거리고 콜드플레이 yellow를 따라 부르며 갈 때는 드디어 모두가 하나가 된 느낌이랄까. 역시 음악의 힘은 대단했다. 만난 지 며칠 안된 한국인과 몽골인을 하나로 묶어주다니.

이렇게 종종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볼일을 보고 바람도 쐤다
흔한 몽골 풍경. 갑자기 불쑥 불쑥 양이나 말이 등장한다. 리얼 사파리..


그렇게 우리는 하나가 되어 초원을 지나고 사막을 넘고 도대체가 길인지 그냥 산을 넘는 건지 알 수 없는 비포장 길을 지나 소위 미니 고비로 불리는 엘승타사르하이에 도착했다. 사막이라고 해봤자 원체 작고 진짜 고비 사막처럼 거대한 모래언덕이 펼쳐진 그런 사막이 아니라 나무나 풀이 듬성듬성 나있는 사막이었다. 애초에 우리가 택한 최종 목적지는 홉스골 호수였고 사막은 중간에 들리는 곳 정도였기 때문에 별 아쉬움은 없었다. (어차피 가는 동선에 있기 때문에 굳이 들리지 않을 이유도 없다)

오히려 난생처음 낙타를 타보고 모래바닥에 몸을 뉘어보며 우리가 사막에 왔다는 걸 만끽했을 뿐이다.

어르깅 호수. 대성리 아님


엽서처럼 멋졌다

아미 투어는 의사소통이 원활한 게 가장 큰 매력이었지만 투어 내용도 알찼다. 첫째 날 사막의 게르에서 1박을 하고 또 다른 초원 어딘가로 향할 예정이었는데 갑작스레 어르깅 호수라는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호숫가에서 다 같이 놀면 재미있을 것 같고 우리에게 그곳을 보여주고 싶어서.. 오두막 집들 몇 개가 늘어선 아기자기한 호수가였는데 예정 없이 온 것 치고는 그림이 정말 예뻤다. 결국 그런 분위기에 취해 우리는 하나 둘 물속으로 들어가 물개처럼 뛰어놀았다. 막판엔 그냥 거기서 머리도 감고 시골 개울가에 온 것처럼 자유롭게 즐겼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어디를 가든 노을을 보는 걸 즐긴다. 보통 제대로 된 하늘을 감상하려면 웬만큼 높은 곳으로 올라가줘야 하지만 몽골은 그런 게 필요없다. 어디에 서있든 뷰포인트다. 눈앞에 걸리적걸리는 게 없다. 초원의 가장 큰 매력이었던 것 같다. 걸리적걸리는 게 없다는 것.

우리가 묵었던 오두막집과 어르깅 호수
CG아니고.. 실제 하늘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석양이 거의 사라질때쯤 시작된 아므라의 댄스교실이었다. 알고 보니 아므라는 댄스스포츠 선생님 출신.. 수준급이었다. 하필 중간에 전기가 나가버려 랜턴과 초를 켜놓고 기초적인 왈츠나 살사 같은 수업을 받는데 그야말로 어둠 속의 댄서. 영화 찍는 줄 알았다. 몽골 초원 한복판에 이런 이벤트를 만날 줄이야. 그 뒤로도 아미는 종종 예정 없는 일정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짜여진 시나리오일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그 시나리오덕에 즐거웠다.



아므라는 한명 한명 정중하게 우리에게 왈츠를 가르쳐줬다. 남자인 나에게도 친절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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