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재밌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영화 <그린북> 리뷰

by 모과

'그린 북'은 1960년대 실제로 있었던 여행 책자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유색 인종들만 이용할 수 있는 숙박 시설을 안내하는 책이에요. 미국 남부에서 백인과 흑인이 한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넷플릭스에서 마이클 조던의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고,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시대를 지나온 지금 우리로서는 잘 그려지지 않은 시대지만 당시 미국 남부 11개 주엔 ‘공공시설에서 백인과 유색 인종 분리’를 명시한 '짐 크로 법'이 존재했습니다. 불과 50년 전 일입니다.


그린 북 (Green Book), 2018
감독 : 피터 패럴리
출연 : 비고 모텐슨, 마허샬라 알리, 린다 카델리니


영화 <그린 북>은 클럽에서 일하던 주인공 토니가 잠시 일자리를 잃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동네 해결사로 나쁘지 않은 평판을 지니고 있던 그는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의 운전기사로 추천받게 되고 그 일을 하기로 해요. 이탈리아계 백인이었던 그는 습관적으로 흑인을 '깜둥이'로 보고 말이 안 통하면 주먹이 먼저 나가는 전형적인 마초 캐릭터지만 그래도 실리 추구형 인간이었던 모양이에요. 두둑한 페이 앞에 사실상 흑인의 수행비서나 다름없는 일자리를 덜컥 잡았으니까요. 아무래도 북부 사람이었으니 최소한의 편견은 없었던 걸까요? 미국인이라는 캐릭터 참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것 같습니다.


흑인이지만 고상한 천재 예술가와 백인이지만 단순 무식한 운전기사의 남부 투어. 별 게 없지만 이 캐릭터 설정만으로도 이미 절반 이상은 재미가 보장된 이야기입니다. 인종차별에 대한 반복되는 설정들이 영화 초반부터 끝까지 등장하지만 그다지 지루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조금씩 가까워질랑 말랑 하는 그 아슬아슬함을 관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잖아요. 그들을 둘러싼 외부인들의 시선도 꽤 다채로운 편이고요. 너무 딥하지 않게 관객을 웃기고 울릴 수 있는 훌륭한 각본이었어요.


하지만 이 재밌는 이야기를 즐기고 난 뒤에 남는 묘한 찝찝함은 무엇일까요. 특히 결말에 다다를수록 그래요. 돈 셜리 박사가 원했던 건 정말 흑인 클럽에 들어가서 클래식을 연주하는 그런 것이었을까요? 용기를 내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남부로 왔다고 했었는데요. 영화 <그린 북>은 인종과 차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렵고 어두운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 멋진 캐릭터와 이야기를 짠 것은 분명하지만 어째 10까지는 안보여주고 7 정도에서 멈춰버린 느낌이랄까요. 이런 영화에서 결국 많은 부분을 조금 더 선량한 백인이 등장해서 해결해주는 것을 백인 구원자형 이야기라고 한다는데요. 아마 이 부분에서 따진다면 각본을 쓴 사람은 그건 당시 사회 구도가 그렇게 그릴 수밖에 없는 구도였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하겠죠. 그러니까 그린 북은 딱 거기까지인 영화입니다.



작품성 외에도 이슈가 많은 영화입니다. 실존인물 토니의 이들이자 각본을 쓴 닉 발레롱가의 무슬림 폄하 발언이나, 유족들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은 점, 실존인물들에 대한 왜곡 등 이 작품을 둘러싼 다양한 논란들을 생각했을 때 오히려 영화를 보고 났을 때 드는 약간의 찝찝함은 자연스러워져요. 진실은 알 수 없다고 하나 이 영화의 경우 영화 속에 답이 있긴 합니다. 특히 마지막 엔딩 이후 나오는 실존인물들의 사진 속에 임종 전까지 우정을 나눴다는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정도가 등장하지 않는 점은 논란을 모르고 봐도 어째 의아한 부분이죠.


그럼에도 <그린 북>은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본상을 수상했습니다. 당시 함께 노미네이트 된 <블랙클랜스맨>을 연출한 스파이크 리 감독은 자리를 박차고 나갈 뻔했다고 하죠. 그의 분한 마음이 멀리서나마 이해됩니다. 인종차별 소재로 한 미국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블랙클랜스맨>을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그린 북>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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