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페촐트의 <어파이어>리뷰

-[모하지의 영화 리터러시]그리고 재난은 우리를 덮친다

by 모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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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로지 자신의 작품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작가가 있다. 친구가 놀자고 해도 무심히 거절하고, 옆방의 소음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민감한 성격 때문에 밤에 잘 자지 못해 짜증을 부리고 잠을 자지 않아야 하는 순간에는 잠에 들게 된다. 그렇다고 열심히 글을 쓰는 것 같지도 않다. 타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그런 태도 때문에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에게 오해를 갖기도 한다. 이런 태도는 주위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자신도 힘들게 만든다. 그에게는 그 어떤 공간보다 자신의 책을 완성할 곳이 필요하다. 그런 그가 친구의 한적한 바닷가 별장을 선택한 건 어떤 면에서는 적합한 선택이지만 사람들이 여름휴가를 떠나는 장소라는 측면에서 현명하지 않은 선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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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미완의 소설 <클럽샌드위치>를 완성하기 위해 친구 펠릭스의 별장으로 향한다. 그는 오직 작품이 출간되기만을 바라며, 자기 주변의 모든 관계를 귀찮고 성가신 방해물로 여긴다. 바다로 나가자고 졸라대는 펠릭스, 옆방의 나디아, 그리고 지나치게 자유롭고 솔직한 구조대원 데이빗 등 모두가 그에겐 감내해야 할 불편함이다. 그러나 그 불편함은 결국, 작품이 진척되지 않는 상황에서 비롯된 내적 불안과 결핍의 투사에 지나지 않는다. 레온의 시각에서 바라본 휴양지 풍경은 바쁜 일상에서 잠시 쉬어가는 사람들의 삶에 있지 않고 완성되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자기 소설과 닮았다. 자동차가 고장 나고 벽지에 곰팡이가 피고 멀리서 다가오는 산불의 불길함이 완성되지 않는 자신의 예술을 좀 먹고 있는 요소인 것이다. 그래서 자동차를 고치려고 하고 지붕에 방수 처리를 다시 하려고 하는 펠릭스와 함께 할 수 없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진 나디아를 제대로 돕지도 못한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두 번째 소설에 관한 생각 뿐이며 그조차도 완성도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그는 자신의 실패가 자신을 둘러싼 주변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잠들지 못하게 하는 소음, 자신에게 달라붙는 날벌레, 뜨겁게 내리쬐는 7월의 태양과 담배 하나 말게 하지 못하는 바람 등이 그러하다. 그는 타인을 탓함으로써 자신의 무력함을 가리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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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물들의 관계와 정체가 드러나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친구인 펠릭스는 동성애자였고, 아이스크림을 팔던 나디아는 사실 문학 박사 과정에 있는 연구자였으며, 출판사 편집장 헬무트의 방문은 레온에게 자신의 글이 실패했음을 직감하게 만든다. 헬무트는 레온의 두 번째 책보다는 펠릭스의 사진을 더 좋아하고, 나디아의 박사 논문에 더 관심을 드러낸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한가로운 여름 별장의 정적 풍경을 벗어나, 피할 수 없는 재난의 기운 속으로 서서히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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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감독한 페촐트 감독의 창작 동기는 꽤 흥미롭다. 그는 이전에 완성한 영화 <운디네>의 홍보와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프랑스로 가게 된다. 주연 배우인 파울라 베어와 함께 인터뷰하게 되는데 인터뷰어가 코로나로 쓰러지게 되고 베어와 페촐트 역시 감염되어 버린다. 당시에는 치료제나 백신이 나오기 전이라 몇 주간 호텔에 감금되어 지내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는 영화제 측에서 선물로 준 에릭 로메르 DVD 전집을 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 영화인 <어파이어>의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해변과 여름, 젊은이들의 대화는 독일의 역사적 사건 속에서 존재론적 의미를 고심했던 그의 이 전작들과 다른 방향을 향하게 했다. 로메르적 세계가, 페촐트 특유의 긴장감과 존재론적 고립을 통해 재구성된 셈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펠릭스가 예술학교 포트폴리오를 위해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촬영하는 장면이다. 펠릭스는 그들의 시선 너머의 풍경, 즉 바다에 의미를 둔다. 반면 레온은 그들을 정면으로 찍게 되면 오히려 사진이 촬영자를 응시하게 되어, 의미가 희석된다고 주장한다. 이 장면은 두 인물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즉 ‘바라보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의 본질적인 간극을 드러낸다. 예술은 타인을 응시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기 시선을 드러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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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재가 눈발과 같이 날린다. 사이렌이 울리고 헬기가 날아든다. 내륙풍이 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믿었던 바닷가에도 불안의 기운이 덮쳐온다. 출판사 대표 헬무트가 쓰러지고, 산짐승이 불에 타고, 친구가 죽는다. 그리고 레온은 비로소 생의 균열을 경험한다. 그는 이 재난 속에서, 펜으로 세상을 통제하려 했던 자기 오만을 내려놓는다. 더 이상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과의 경험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어 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클럽샌드위치>가 아닌, 이 여름의 체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책을 써낸다. 친구 펠릭스의 사진은 그 책의 표지가 된다.

재난은 모든 것을 불태우지만, 때로는 한 예술가를 바꾸어 놓기도 한다. 고립과 상실을 거쳐 우리는 다시 세상과 연결된다. 예술은 결국 세상을 재현하는 것이다. 촘촘하게 연결된 세상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는 세상과 타인에 대한 열린 시각이 필요하다. 예술은 결국 ‘나’의 언어가 아니라 ‘우리’의 경험이다. '코로나'라는 고립의 시간 속에서 페촐트가 깨달은 것도 그것이었을 것이다. 예술은 세상을 담는 행위이며, 그 시작은 타인을 향한 열린 시선이다.






- 모하지 칼럼니스트 (mossis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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