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지의 영화 리터러시] 심연의 잠식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본다.”
니체의 이 경고는 인간의 내면을 향한 섬뜩한 진단이다. 끝없이 깊은 공허와 혼돈, 파괴 충동은 인간이 외면할 수 없는 심연이며, 오래 마주할수록 그것은 우리를 집어삼킨다. 곤 사토시의 데뷔작 <퍼펙트 블루>는 이 심연의 메타포를 가장 선명하게 형상화한 작품 가운데 하나다. 저예산 애니메이션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28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불길한 울림을 남긴다.
올해 4K로 마스터링 되어 재개봉된 작품 중 가장 기대가 되었던 것은 곤 사토시의 전설적인 걸작 <퍼펙트 블루>였다. 제작 당시부터 화제를 낳았던 이 작품은 당시 대부분의 일본 애니메이션이 SF와 판타지에 치중하고 있었던 것과 달리, 현실을 직시한다. 아이돌 산업과 팬덤, 그리고 연예계의 폭력적 시스템을 스릴러라는 장르 안에서 풀어내며 충격을 안겼다. 곤 사토시는 반복, 교차, 급격한 전환 편집과 영화적 미장센을 활용해 저예산 애니메니션이 가지는 한계를 뛰어넘는다.
아이돌 그룹 참의 리더였던 미마는 레코드 판매로는 이익 창출이 쉽지 않다는 소속사 대표의 판단에 의해 그룹을 탈퇴하고 배우로 커리어를 전향한다. 참의 팬들은 미마의 선택에 불만을 갖게 되고 미마 역시 가수를 동경하며 상경했던 자신의 꿈이 틀어지는데 대해 아쉬움을 가지고 있지만 주위 사람들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과감하게 연기자로 변신한다. 미마는 드라마에서 강간을 당하는 역할을 받아들이고 누드 사진을 찍는 그라비아 활동을 하게 된다. 이 활동은 그녀를 순수한 아이돌 가수를 숭배하는 팬들의 분노의 대상이자, 자신이 꿈꾸던 ‘가수로서의 순수성’을 배반한 인물로 만든다. 연기자로 변신한 미마의 길은 성공을 향한 도약이 아니라, 자신과 팬 모두에게 심연을 마주하게 하는 통로가 된다. 영화 속 살인 사건은 단순한 스토킹 범죄가 아니다. 그것은 미마의 무의식이 투영된 욕망의 발현이며, 드라마 속 살인극과 현실의 사건이 교차하면서 경계는 무너진다. 미마는 가수로 남고 싶은 자신과 배우로 인정받고 싶은 자신, 그리고 드라마 속 인물과 현실의 자신 사이에서 끊임없이 분열한다. 이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거울과 어항은 내면의 심연을 비추는 장치다. 미마가 들여다보는 것은 거울이 아니라 ‘타자의 시선 속에 왜곡된 자기 이미지’이며, 그것이 결국 그녀를 역으로 응시한다.
아마 이 영화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우상으로서의 완전한 순수함을 뜻하는 말일 거라 짐작된다.-이 제목은 감독인 곤 사토시가 만든 것이 아니라 제작 단계에서 정해진 것을 그대로 썼다고 알려져 있다.- 우상으로서의 원형에 대한 욕구는 아이돌 오타쿠의 팬으로써의 우상화와 아이돌로써 성공하지 못한 매니저 루미의 대리 욕구 형태로 등장하여 극단적인 행위로 드러난다. 결국 변질된 원형인 미마는 숭배의 대상이 아닌 제거의 대상이 되어 쫓기게 된다.
1997년 제작된 이 작품은 윈도우95가 보급되던 시기의 산물이지만, SNS와 사이버 스토킹이 일상이 된 지금에도 놀랍도록 현재적이다. K-pop의 세계적 성공과 그 이면의 어두운 구조—거대 기획사 시스템, 팬덤의 집착, 온라인 폭력—는 이 작품의 주제를 더욱 날카롭게 한다. 곤 사토시가 포착한 것은 단순한 아이돌 스릴러가 아니라, 이미지 소비 사회 속에서 개인이 겪는 정체성의 붕괴이자, 심연에 잠식당하는 자아의 초상이다.
2부에서는 라캉의 욕망 이론을 바탕으로, <퍼펙트 블루>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해석해볼 것이다.
- 모하지 칼럼니스트 (mossisl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