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 속 정치적 배경과 사랑에 대하여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제목은 너무나 유명하고 또 다양한 매체의 제목으로 나타나기도 해서, 누구에게나 익숙한 구절입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이러한 제목을 사용한 이유는 러시아의 혁명가 '트로츠키'의 유언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요.
트로츠키, 그는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의 혁명가이자 마르크스주의 사상가입니다. 소비에트 연방 시기, 붉은 군대를 창설하고 레닌과 함께 당시 권력을 휘두르던 혁명가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레닌 사후 스탈린 정권이 시작되면서 스탈린과의 의견 대립과 권력투쟁으로 '인민의 적'으로 간주되어 멕시코로 망명했으나 암살자에 의해 살해당하고 맙니다. 멕시코로 망명한 뒤에도 그는 스탈린의 독재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기에 자신 또한 곧 살해당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죽기 전, 남긴 유언 중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프롤레타리아의 혁명가요, 마르크스주의자이며, 변증법적 유물론자다. 결국 나는 화해할 수 없는 무신론자로 죽을 것이다. 인류의 공산주의적 미래에 대한 나의 신념은 조금도 식지 않았으며, 오히려 오늘날 그것은 내 젊은 시절보다 더욱 확고해졌다. 방금 전 나타샤가 마당을 질러와 창문을 활짝 열어주었기에, 공기가 훨씬 자유롭게 내 방안을 들어오게 됐다. 벽 아래로 빛나는 연초록 잔디밭과 벽 위로는 투명하게 푸른 하늘, 그리고 모든 것을 비추는 햇살이 보인다. 인생은 아름다워!'
그러니,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제목은 트로츠키의 유언에서 따온 것입니다. 비록 죽을 것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이 나의 뜻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지금 내 눈앞의 풍경이 아름답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기에, 인생은 아름답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1997년에 개봉한 이탈리아의 영화입니다. 주인공 '귀도' 역을 맡은 배우 로베르토 베니니는 이 영화의 주연이자 감독이며, 귀도와 사랑에 빠진 '도라'를 연기한 배우 니콜레타 브라스키는 로베르토 베니니와 실제 부부 사이입니다. 간략하게 이 영화의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젊고 유쾌한 유대계 이탈리아인 주인공 귀도는 이탈리아 아레초에 도착해 웨이터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치 인연처럼, 그야말로 우연히 도라를 만나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사실 도라는 이탈리아에서도 꽤나 알아주는 부유한 집안의 딸로 약혼자가 있었죠. 하지만 귀도의 노력으로 계속해서 둘의 우연인 듯 우연 아닌 인연이 계속되자, 도라도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사랑에 빠진 둘은 귀여운 아들 조슈에를 낳고, 작은 서점을 열어 단란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귀도와 조슈에가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가고, 유대인이 아니었던 도라 또한 자원해 수용소로 가게 됩니다. 이 힘겹고 고통스러운 수용소 생활 동안, 귀도는 이것이 모두 게임이며 1000점을 먼저 따면 상품으로 탱크를 준다는 거짓말을 하게 되죠. 덕분에 조슈에는 천진난만하게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수용소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 내내 유머와 동화 같은 생각을 잃지 않는 귀도가 고통스럽고 무자비한 수용소 생활 중에도 아들 조슈에의 순수함과 안전을 지켜주려 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입은 귀도를 따라 웃지만 눈가가 촉촉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죠. 이 영화 전체를 감싼 사랑이라는 말 안에서, 몇 가지 키워드로 <인생을 아름다워>의 의미를 다시 알아보겠습니다.
귀도는 정말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순간의 재치와 말로 사랑하는 사람의 그 순간을 마법처럼, 동화처럼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부분은 귀도가 도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기' 작전을 썼던 부분들에서 가장 잘 나타납니다.
평소 귀도와 수수께끼를 즐겨 주고받던 '레싱 박사'에게 귀도는 아버지가 냈던 문제라며 다음과 같은 문제를 냅니다.
물론 레싱 박사는 이 자리에서 이 문제에 대해 답을 말하지 못하죠.
하지만, 며칠 뒤 우연히 도라와 데이트를 하게 된 귀도는 그녀와 헤어지기 싫어서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고 말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귀도의 재치와 능력이 진가를 발휘합니다.
바로 저쪽에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레싱 박사'를 발견한 것이죠.
그리고 박사가 귀도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이쪽으로 걸어옵니다.
레싱 박사는 귀도에게 생각해두었던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말하러 온 것이었지만, 사실 귀도가 만든 이 상황에 대한 답이 되기도 하죠. 이것이 바로 귀도가 우연을 인연으로 만드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인연을 만드는 데에는 귀도만의 근거가 있습니다.
바로 쇼펜하우어입니다.
쇼펜하우어의 저서 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쇼펜하우어가 말하고자 하는 '의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의지와는 사뭇 다릅니다. 모든 사물의 내적 원리이며,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개념이죠. 따라서 그가 말했던 '의지'라는 개념은 욕망, 추구, 노력 등의 맹목적인 감정 또한 포함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친구가 말했던 쇼펜하우어에 대한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귀도는 곧장 실행에 옮깁니다. 그는 자신의 노력과 의미로 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믿으며 약혼자가 있었던 도라에게도 거침이 없었죠. 덕분에 도라 또한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지 않을 수 있었고, 귀도는 운명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의지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죠. 바로 태생입니다. 유대인인 귀도는 어쩔 수 없이 수용소에 끌려갔고 너무 어렸던 아들 또한 귀도와 함께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귀도의 무한한 사랑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옵니다. 나에게도 모두에게도 최악의 순간인 데다, 당장 내일 내 옆자리의 사람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당장 오늘 내가 끌려가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 몸 하나뿐만이 아니라 아직 너무 어려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어린 아들의 동심을 지켜주려 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살아서 나가면 다행인걸 어째서 이렇게 철저하게도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려 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귀도 또한 살아서 나가 가족들을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이라는 아쉬움에서 기인한 의문이었으며 결론적으로 이 이야기는 그야말로 귀도가 선택한, 아들에게 남기기로 했던 마지막 선물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 보입니다. 조슈에는 평생을, 끔찍하지만 아름답게 포장되어 자신에게는 작은 생채기조차 남기지 못할 이 나날들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가지고 살아갈 것입니다. 아빠가 죽음을 향해 가는 순간조차도 말입니다.
극의 후반으로 갈수록 상황은 점점 더 위험한 순간으로 치닫고, 수용소 외부의 상황은 수용소 내부의 사람들에게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이나, 내부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오로지 극단적인 공포와 강압적인 명령들 뿐입니다. 이 상황에서 귀도는 선택을 합니다. 그가 원한 것은 자신보다 아들과 도라가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아들을 작은 캐비닛에 숨겨 놓고, 도라를 찾으러 나섰다가 그는 도라를 찾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귀도가 가족들을 향해 보여주는 사랑은 영원하고, 맹목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이 그 어떤 것보다 위대하고 강하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표상이 이 영화 속에서 귀도뿐일까요?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유명한 영화에 대해 사람들이 후기를 남길 때, 귀도의 희생에 감동받았다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주 간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도라입니다.
도라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유대인이 아니며, 사회적으로 좋은 위치에 있는 약혼자도 있었습니다. 본인의 의지와 마음은 아니었지만요. 그런 도라가 귀도와 사랑에 빠진 것은 순전히 본인의 의지이며 스스로 선택한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또 도라는 모두가 놀랄만한 선택을 합니다.
귀도와 조슈에가 수용소에 끌려갔다는 사실을 안 뒤, 유대인들을 태운 기차에 스스로 올라타 수용소로 향했다는 부분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도라는 수용소에 갈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길을 본인이 선택했다니요. 이곳에서 도라는 죽을 수도 있었고, 영원히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선택은 오로지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그곳에 있기에 스스로 사지에 걸어 들어간다는 것은 영원불멸한 사랑의 힘입니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1930년대 말, 파시즘이 만연하던 시기의 이탈리아입니다.
파시즘은 전체주의, 권위주의를 표방하는 사상이며 세계 1차 대전 이후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주장하며 등장한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이념입니다. 그렇게 등장한 지도자는 바로 '무솔리니'였죠. 그는 사회적 계급의 평등을 부정했고 독일의 나치즘과 함께 유대인을 향한 차별과 증오를 표출해 그들을 사회적으로 배제시키고 반유대주의를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반유대주의는 가장 중요한 배경으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곳곳에서 우리는 파시즘의 흔적과 반유대주의, 그리고 1930년대 말의 이탈리아의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차가 고장 난 귀도는 친구와 함께 달리다가 이탈리아 국기를 흔들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게 됩니다.
이때 사람들이 달려 내려오는 귀도의 차를 보고 '왕께서 오십니다!'라고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있죠. 이는 무솔리니의 행차를 풍자한 장면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위험하니 물러서라 손짓하는 귀도의 손 모양이 의미심장합니다. 어쩐지 나치의 경례를 연상시키지 않나요?
영화에서 이 시대의 파시즘과 이탈리아의 상황을 담아낸 방식은 섬세하고 풍자적이며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귀도의 과장된 말과 몸짓은 찰리 채플린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연상시키며, 겉으로 보기엔 웃을 수 있으나 그가 하는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죠. 찰리 채플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런 그의 특징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부분은 귀도가 장학사로 변장해, 도라가 일하는 초등학교에 갔을 때입니다. 이때 우리는 귀도가 무엇을 풍자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귀도는 순수한 아리안 혈통이 아닙니다. 그는 유대인이죠. 하지만 귀도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을까요? 사실, 귀도가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된 이유는 원래 이 자리에 오기로 했던, 로마에서 온 장학사가 제시간에 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귀도는 그의 자리에 서서 그를 표방하고 있죠. 우스꽝스럽고, 누가 봐도 거짓이지만 농담에는 뼈가 있습니다. 순수한 아리아인만이 가장 우수한 혈통을 가진 민족이며 완벽하고, 다른 민족 특히 유대인들은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반유대주의를 풍자하고 있죠.
민족은 다 다릅니다. 원래 그렇습니다.
파티를 하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평범한 수학 문제임에도 이걸 독일의 초등학생이 풀어냈다는 이유로, 독일인을 아주 뛰어난 민족인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일까요? 정말 전 세계에서 독일인만이 가장 뛰어난 민족이기에 이런 말을 한 것일까요? 이러한 아리아 민족에 대한 선망은 자연스럽게 유대인에 대한 혐오와 증오로 이어집니다. 단순히 사회에서 배제함을 넘어서, 알프레트 로젠베르크의 <시온의 장로 지침>과 같이 국제적으로 유대인들의 민족성에 대한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후반부는 이탈리아가 국제적 상황에 따라서 독일과 손을 잡게 되고, 베를린 - 로마로 축이 형성되는 상황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독일에 우호적인 정책으로서 더욱 강압적인 반유대주의를 택했으나, 결국 마지막은 패배였습니다. 세계 2차 대전에서 나치가 패배하면서 유대인 수용소에 대한 증거를 없애기 위해 그들을 학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인생은 아름다워>의 마지막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패배를 직감하고 모두가 떠난 수용소, 홀로 남은 조슈에. 그리고 그곳에 다가오는 탱크 하나.
조슈에는 이 탱크를 상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미군이 나치군에게서 탈취한 탱크였죠. 그렇게 세계 2차 대전과 나치의 시대, 파시즘의 시대가 막을 내립니다.
사랑은 위대하다고 말합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랑이라는 감정은 전 세계, 전 세대를 아우르는 것이었으며 그 때문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바로 그런 감정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세상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며 그 속에서 기회를 찾는다는 것은 힘들지만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 어떤 고난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내가 사랑하는 것을 생각하며, 난관으로부터 기회를 찾는다면 인생이 아름답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