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주, 두 번째 산 넘기
병원 재원 59일 차, 그리고 28주. 이제 생존율은 90%로 올라갔다. 28주가 되면 대부분의 장기가 형성되어서 생존 가능성이 매우 높게 된다고 한다. 이제는 선생님들도, 내가, 그리고 베짱이가 얼마나 버틸지 날짜를 꼽으셨다. 또 4주나 버티다니, 아가가 기특했다.
글로 쓰면 이렇게 후다닥 흐르는 시간이, 사실 병원에서는 매우 더디게 느껴졌다. 빨간 피를 맞는 간격은 주 1회에서 주 2회로 늘었다. 샤워는 교수님 허락 하에 아주 짧게 다녀올 수 있었는데, 라인을 가는 타이밍이 맞아야 해서 혼자 머릿속으로 치열하게 계산하곤 했다. 그리고 요령이 생겨, 병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들을 추가로 마련했다. 미용실처럼 앉아서 머리를 감을 수 있는 접이식 세발기, 멀리서도 물건을 잡을 수 있는 긴 집게 따위였다. 집게가 등장했을 때 선생님들이 웃으셔서 내심 뿌듯했다.
병원에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는데, 앉을 수도 없으니 더 답답했다. 주치의 선생님께 앉아있으면 안 되냐 여쭤보기도 했는데 단호하게 안된다 하셨다. 앉아 있을 때 자궁경부에 압력이 더 직접적으로 전달되어, 서 있는 거랑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셨다. 늘 누워있거나 침대를 비스듬하게 해 기대 있었는데, 그 자세로 교수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을 맞이하는 게 예의 없어 보여 혼자 신경 쓰였다.
5인실 병동은 아주 조용한 날도, 많이 시끄러운 날도 있었다. 대부분은 아가를 낳으러 분만장 들어가기 전 잠깐 입원하는 경우라 일주일 내외였는데, 비슷한 처지의 산모가 한 명 들어와 친해졌다. 나보다 버텨야 할 날은 훨씬 짧은 만삭의 임산부였지만, 말을 할 상대가 있다는 게 환기가 됐다. 간식을 나눠먹기도, 육아 아이템 준비 리스트를 공유받기도 하면서 조금씩 만출(滿出), 예정일까지 채우는 날을 꿈꿨다.
이때쯤 “뱃속에서의 하루는 밖에서의 일주일이다.”는 말이 있다는 것도 배웠다. 이제부터는 베짱이가 태어나도 살 수는 있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서 찾아보지도 않던 ‘조산’, ‘28주 출산’ 같은 단어를 검색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내 탓이면 어쩌지? “라는 죄책감도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는 주변인들에게 조금씩 연락을 받았다. 다만 ”너무 무리했니? “, 혹은 ”대학원 다니느라 무리해서 그런 거 아니야?”라는 주변인들의 걱정을, 순수하게 걱정으로만 듣지 못했다. 괜찮았지만 썩 괜찮지는 않았다.
28주를 무사히 찍고, 그다음 목표는 <뇌 발달의 전환점>이 되는 30주 버티기에 들어갔다. 파워 J인 나는 미리미리 큰 계획을 세우고 싶었는데, 교수님은 눈앞에 당면한 과제만 자꾸 내주셨다.
“2주 또 잘 버텨봅시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데, 나는 자꾸 계획을 세운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에 무너지는 건 항상 나였으면서, 습관처럼 계획을 세운다. 그래서 남편이 제일 큰 힘이 됐다. 내가 조급해할 때마다 내 손을 꼭 잡았다.
“우리 오늘 하루만 또 잘 버텨봐요. “
그래, 오늘 하루. 30주, 34주, 37주는 멀었지만, 오늘 하루는 그렇게 까지 길지는 않다고 생각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