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워질 병원생활 (3)

34주를 향해서

by 모얼리

28주가 지나고, 협진을 했다. 산부인과 교수님이 집도하시지만, 결국 아가는 태어나면 소아과로 가야 한다. 소아과에서 우리 아가를 어떻게 관리해 주실지 얘기해 준다고 하셨다. 오전에 초음파 검사를 통해 베짱이를 만나고, 남편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았다. 협진센터는 3층에 있어서, 아주 오래간만의 긴 이동이었다. 간략하게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시고, 소아과 교수님이 산부인과 교수님께 “꼭 34주는 갈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하셨다. 할 수 있을까? 휠체어에 앉아 빼꼼 보이는 내 발끝이 약간 떨렸다.


병원에 있으면서 육아용품 구매를 시작했다. 사실 ‘해도 될까?’ 하는 걱정의 불씨가 자꾸 커지려 해서 육아용품 구매로 불씨를 꺼뜨렸다. 다들 아기 방 컬러무드에 맞춰서 예쁘고, 귀여운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준비하던데 나는 시커먼 카시트부터 준비했다. 카시트로 유명한 네이버 카페 글을 보며 공부하고, 튼튼하다는 북미산 카시트를 아마존 직구로 결제했다. 아가의 건강, 안전, 생존 이런 단어들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혼인신고도 서둘렀다. 엄마랑 아빠가 서류상으로도 끈끈하고 준비가 되어 있어야, 아가가 안심하고 잘 버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느긋한 남편을 닦달해 서류를 손에 들려 보냈다.


30주가 되어갈수록 점점 노란 피(혈소판)를 맞는 주기가 줄어들었다. 빨간 피(적혈구)는 맞으면 수치가 좀 유지되는 것 같았는데, 노란 피는 금방금방 소진돼서 한 주에 2개씩, 3일에 한번 꼴로 맞았다. 궁금해서 챗지피티한테 물어보니 혈소판이 적혈구보다 수명이 짧다고 했다. 하루에도 수십 개씩 아무 질문이나 던져도 한 번의 짜증 없이 대답해 준다. 내가 임신한 기간에 인공지능의 비약적인 발전이 새삼 고마워졌다.


선생님들과 대화를 하긴 했지만, 다들 바쁘시니 내가 마냥 붙잡아 놓을 수도 없었다. 어떤 날은 말을 많이 안 해서 갑자기 얘기하면 목에서 쇳소리가 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르고, 생각보다 병원 생활은 바빴다.


06:00-06:30 오전 체크, 채혈

07:30-08:30 아침식사

08:30 이후 회진

09:00-10:00 회진 후 태동검사(종종 수혈도 진행)

10:00-11:30 중간 체크

11:30-12:30 점심식사

12:30-14:00 오후 체크

14:00-15:30 태동검사

15:30-16:30 보통 회진 및 저녁 체크

17:30-18:30 저녁식사

18:30-20:00 태동검사(남편 퇴근 및 귀가)

21:00 소등


빽빽한 일정 사이 생기는 잠깐의 휴식 시간에 간식을 먹거나 좀 졸고 나면, 어느새 시간은 오후가 되어 노을이 진다. 수혈하는 동안은 반기절했다가, 교대하시는 선생님들과 짧은 인사라도 나누면 시간은 더 쫓긴다. 그래도 베짱이는 쑥쑥 잘 크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태동이 점점 늘어 배에다 손을 얹는 시간이 길어졌다. 베짱이의 태동은 “딸꾹질”이었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꿀렁거리는 배가 귀여웠다. 항상 내 오른쪽 배에 단단한 몸의 어딘가를 얹고 있어서, 태동검사할 때마다 “아가 여기 있어요, 선생님“ 하고 알려드릴 수 있었다. 나중에는 태동검사 한다 하면 내가 벨트를 찼고, 아가가 움직여 심박수가 없어지면 기계 위치를 이리저리 옮겨 아가 찾아내는 반(半) 전문가가 되었다.


나름 바쁜 환자 생활에서 제일 열심히 한 건 묵주기도였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기도했다.


“성모님, 주님께 제 기도 좀 전구해 주세요. 아가 좀 살려주세요, 지켜주세요, 도와주세요.”


병원에서 예쁜 십자가도 선물 받아서, 손에 꼭 쥐고 기도했다. 아가 초음파 사진을 또 주셨는데, 좀 더 컸고, 좀 더 웃기게 생겼지만, 더 많이 사랑스러워졌다. 나를 하나도 안 닮고 남편이랑 똑같이 생겨서 웃음이 났다.

못 걷고 누워있으니 다리 근력이 없어져서 링거가 걸린 폴대를 꼭 잡고 화장실에 갔다. 배 사진을 종종 찍었는데 하루가 갈수록 많이 나와서 신기했다. 머리를 감은 날은 병원에 있는 중에 제일 예쁜 날이라 또 사진을 찍었다. 이 맘 때쯤 사진첩에는 똑같은 사진들만 가득한데, 태동을 찍으려다 실패한 그냥 볼록한 배 사진, 매일 들러주는 남편 뒷모습, 어플을 잔뜩 얹은 내 얼굴과 간식 사진들. 선생님들이랑 셀카 좀 많이 찍어놓을 걸 하는 후회가 든다.


30주를 넘기니 스테로이드를 맞았다. 조산의 경우에 폐가 스스로 호흡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않기 때문에 폐성숙 주사로 예방한다고 하셨다. 다들 잘 버틸 거라고 힘내라고 해주시면서도, 언제든 태어나도 살려보려 모든 의학적 조치를 취하기 시작하셨다. 이제는 진짜 나와도 살 수 있어, 그 생각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 맘 때 즈음 새로운 임산부가 왔다. 나랑 친했던 산모가 출산을 하고 나간 자리에 새로웠는데, 어리고 앳된 얼굴에 늘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항상 친정어머니가 같이 계셨는데, 커튼을 치고 있는 안쪽에서는 매일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와 다른 주치의 선생님의 환자였는데, 집에 좀 보내달라고, 너무 힘들다고 엉엉 울었는데 교수님은 단호하게 잘 버티자고 하셨다. 예전(이라고 해봤자, 겨우 몇 주전이지만) 생각이 나서, 종종 간식을 전해줬다. 어느 날은 달달한 마카롱이었고, 어떤 날은 과일이었다.


앞 침대 산모의 어머니는 내가 재원 70일도 훌쩍 넘기고 있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어오셨다.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씩씩해 보였는지, 어떻게 그렇게 잘 버티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슬프지 않냐고, 힘들지 않냐고 하셨는데 그냥 있다고 했다.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냥 루틴을 따르고, 핸드폰을 들고 유튜브를 보며 낄낄댔다. 그러는 사이에 봄이 와서, 창 밖에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교수님이 처음으로 산책을 허락해 주셨다. 비록 휠체어에 앉아, 6층에 있는 정원에 나가는 게 고작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신이 났다. 정원에 있는 조금 핀 복사꽃을 손에 들고 사진도 찍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배 둥둥 임산부지만, 씩씩하게 버틸 거다. 이제 100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기다리던 34주 차에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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