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워질 병원생활 (4)

가까운 듯 먼 34주

by 모얼리

호기롭게 지금 버틴 것처럼 잘 버티면, 금방 출산일이 다가올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32주가 복병이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너무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커튼을 치고 울었다. 남이 들을까 봐 소리는 내지 못하고, 배에 힘들어갈까 봐 널브러져서 울었다. 잠깐의 산책에 콧바람이 들어 바깥 생활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걷고 싶고, 꽃도 보고 싶고, 예쁘게 사진도 찍고 싶었다. 코로나 시기에 결혼해 제주도가 신행지였던 터라, 태교여행도 가고 싶었다. 괜히 모든 게 부럽고, 모든 임산부가 부러웠다. 선생님들이 들어오실 시간이 되면 눈물을 닦고 괜찮은 척했는데, 숨길 수 없었나 보다. 간호사 선생님이 교수님한테 말을 전했다.


“힘들죠? 잘하고 있어요. 좀만 더 힘냅시다. “


과묵한 편의 교수님이셔서 호들갑스럽게 말 걸어주시지는 않았는데, 오셔서는 손을 또 꼭 잡아주고 가셨다. 옆 방 산모가 줬다며 쿠키도 나눠 주셨다. 잘하고 있다는 그 칭찬 한 마디가 필요했나 보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더니, 터널의 가장 어두운 지점을 지나는 중이었다. SNS가 문제였다. 다들 너무 쉽게 행복해 보였다.


나는… 행복한가? 행복의 실체가 아직 아득히 멀었다. 아가가 톡톡 발로 찼다. 모성애는 아직 모르겠지만, 책임 지고 버티는 게 내가 지금 할 일이다.


배는 이제 동그랗고 크게 나왔다. 딸이라 그런지 배가 예쁘다고 하셨다. 임신을 하니 피부도 좋아지고, 머리를 며칠 안 감아도 기름기 하나 돌지 않아 신기했다. 남편이 주말에 대학원에 가서 내 학위기와 상장을 들고 왔다. 내가 이뤄낸 것들을 장하다고 칭찬해 줬다. 마주 안아주려 했는데 이제는 배가 우리 사이를 가로막았다. 비로소 웃음이 터졌다.


간호사 선생님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위로해 주셨다 햇살을 닮은 선생님은 매일매일 써야 하는 섭식일지 윗부분에 얼마나 지났는지 써주셨다.

라인을 가는 테이프에 하트를 그려주시기도 하고, 몰래 간식을 놓고 가시기도 하셨다. 바깥 날씨를 전해주시거나, 자리가 없어 잠깐 들러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고약한 할머니 환자 얘기를 속닥속닥 같이 하며 처음 병동에 왔던 그 순간처럼 또다시 응원을 해주셨다.


사실 선생님들은 바뀐 게 없었다. 내 마음이 다시 한번 힘을 내야겠다고, 두 주먹을 꼭 쥐었을 뿐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100일이 됐다. 입원한 지 100일이라니, 축하해야 하나? 싶었다. 남편이 케이크와 숫자초를 사 왔다. 병원이라 불은 붙일 수 없었지만, 내 눈앞에 놓인 숫자초를 보니 뿌듯했다. 14주 넘게 버텼다. 아가는 이제 내일이 되면 생존율은 98-99%가 된다. 무조건 살 수 있다. 기뻤다. 아, 이제 온전히 기뻐할 수 있다.

34주가 중요했던 이유는 또 하나 있었다. 그동안 한 몸과도 같았던 <라보파>를 떼는 일이 남았다. 계속 맞으면 자궁 수축은 억제되지만, 이제는 아가가 나와도 괜찮으니, 약의 부작용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그동안 심전도와 폐 CT를 찍느라 내심 불안한 터였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내일 나는 약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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