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주, 드디어 버텨낸 시간
약을 떼는 것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오, 진짜 뗀다!”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교수님과 선생님들은 아니었나 보다. 출생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 서류에 서명을 받았고, 태동검사도 더 본격적으로 자주 해주셨다. 사실 라보파를 떼도, 수액은 달고 있어 주렁주렁한 건 변함이 없었는데, 묘한 긴장감이 생겼다.
’ 욱신 ‘
응? 가끔 찌릿찌릿 콕콕한 적은 있었는데, 욱신하고 아픈 건 오래간만이었다. 태동검사를 할 때 잘 안 나오던 수치들이 보였다. 그래도 약을 뗀 토요일 낮은 그럭저럭 지나가서, 교수님은 주말 잘 버텨보자며 퇴근하셨다. 그리고 밤이 되자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가진통인가? 참기 힘들 정도는 아니지만 은근히 계속 아파서 잠을 자기가 어려웠다. 간호사 선생님들은 아프면 꼭, 바로 말하라고 하셨는데 왠지 이 순간만 넘어가면 괜찮을 거 같았다. 딱 3주, 내가 지금껏 버틴 시간보다 딱 3주만 더 버티면 아가는 37주에 태어날 수 있다. 37주 출생은 ’ 정상‘적인 시기에 태어난 만삭아로 본다고 했다. 왠지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눈을 꼭 감고 애써 아픈 신호를 무시했다.
잔 듯 안 잔 듯, 아침이 밝았다. 괜찮았다. 다행이었다. 밤을 잘 버텨낸 기념으로 남편과 병원에서 케이크를 먹었다. 마침 부활절이기도 했다. 우리 아가에게 어울리는 이름과 세례명을 지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요일 내내 남편과 이름을 골랐다. 34주 0일을 무사히 보냈다.
월요일 전문의 선생님이 초음파를 봐주시면서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셨다.
“종종 이렇게 잘 버티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 사람들 중에 하나가 나라서 다행이었다. 아가는 아직 발이 밑으로 있는 역아였는데, 그래서 더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하셨다. 장하다, 아가. 여전히 1cm의 입구를 눈앞에 두고 아가는 뱃속에서 잘 놀고 있었다.
34주가 지나자 그다음의 시간들은 더없이 바쁘게 흘렀다. 남편이 병원에 못 오는 날들이 많아졌다. 남편은 혼자 손수건과 옷을 빨고, 집을 청소하고, 아기 침대와 의자를 조립했다. 카시트에 아가를 앉히는 방법도 공부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없었지만, 호들갑을 떨며 해외 직구까지 했던 카시트만큼은 조금 뿌듯했다. 시시각각 오는 카톡 사진들을 기다렸다.
아기 옷을 잔뜩 받았었다. 새 옷도 있었고, 물려받은 옷도 있었다. 포장만 봐도 마음이 아파 풀지 말라했는데, 뒤늦게 다 펼쳐 놓으니 너무 많았다. 그 마음들이 이제야 온전히, 하나하나 다 고마웠다.
이제 진짜 괜찮아, 교수님도 선생님도 마음을 놓으셨다. 이왕 여기까지 버틴 거 37주, 38주 아니 40주 만삭까지 가고 싶었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묻는 질문들이 바뀌었다.
“자연분만이 좋아요, 제왕절개 할 거예요?”
“탯줄은 보관할 거예요? 소개해드릴까요?”
괜찮냐는 질문 대신,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었다. 그대로 혈액내과 교수님께 여쭤봐야 했다. 다행히 그때 즈음 한번 더 보러 와주셔서, 100일 지났다고 자랑도 했다. 내심 기분이 좋아 보이는 교수님 모습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자연분만이 피가 덜 나고, 회복이 빠를 거라 수술이 없이 갔으면 좋겠다고 얘기하셨다. 그리고 제대혈은, 재생불량성 빈혈과 같은 자가면역질환은 보관도 기증도 안된다고 하셨다. 언제나 그렇듯 명쾌하고 시원하게 답을 주신다. 그럼 나는 아가가 무사히 순탄히 나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3주 더 버티는 게 될까 싶을 때쯤, <언젠가는 슬기로워질 전공의생활>이라는 드라마가 시작됐다. 산부인과 에피소드를 다루는 딱 내 현실의 드라마와, 그 드라마를 리뷰하는 유튜브를 보느라 하루가 너무 바빴다. 드라마 안에서 100일을 버티고 아가를 보낸 엄마의 이야기를 보고 엉엉 울었다. 아가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엄마가 밖에서 보고 싶어도 조금만 더 참자? 다들 뱃속에 있을 때가 더 편하다고 하던데, 아가가 밖에 있어 눈에 보이는 게 내 마음이 더 편할 거 같아서 아이러니했다. 그래도 시간이 잘 가니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