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124일째, 지구별에 온 베짱이
36주 6일 밤, 근무를 끝내시고 퇴근하시던 간호사 선생님 한 분이 커튼을 살짝 열었다.
“오, 선생님 사복이네요?”
나보다 앳된, 그래도 병원에서만큼은 너무 의지하고 있는 선생님이 주섬주섬 봉투를 열었다.
“내일 드디어 37주! 정말 축하드려요.”
37이라는 숫자초와 케이크가 들어있었다. 내가 이런 걸 받아도 되나? 분만실에 있던 고위험 임산부 센터에서, 산부인과 병동까지 쭉 같이 있던 선생님이다. 그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찡그린 적 없이 늘 씩씩한 선생님이라, 말 걸어주시고 가는 것만으로도 그날 하루는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선물을 받자니, 왈칵 눈물이 터졌다.
내가 갑자기 울어버리자 선생님도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닦았다.
“제가 내일부터 5일간 오프예요. 그런데 이상하게 제가 돌아오면 안 계실 거 같아서, 응원하러 왔어요. 분만장 선생님들도 다들 궁금해서 저한테 매일 물어봐요. 꼭 저 있을 때까지 버텨주셔야 해요? 물론 아기가 정하는 거지만. “
잘 버텨보겠다고 인사했다. 그리고 고맙다는 마음을 온몸에 담아 선생님을 꼭 안았다.
남편이 뒤늦게 와서 케이크를 보더니, 예쁘네 했다. 그리고 내일 드디어 37주라고 했다. 남편이 마주 안아 주며 다정하게 등을 쓸었다.
“고생했어요, 잘했어요.”
늘 나에게 칭찬해 줄 때 미사여구가 하나도 없는 담백한 말투라 투덜거렸는데, 이 날 만큼은 그 이상의 단어가 필요 없었다. 정말 긴 시간이었으니까.
37주 0일의 아침은 토요일이었다. 검사하러 들어오시는 모든 선생님들한테 축하인사를 받았다. 교수님도 싱글벙글 웃으면서 오셨다.
“37주! 고생했어요, 잘했어요.”
교수님과 선생님들 덕분이라고. 거짓 하나 없는 감사인사를 했다. 교수님은 주말을 잘 보내고, 월요일에 실을 풀자고 하셨다. 이제는 나와도 정말 괜찮으니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주말 내내 기분만큼 날씨도 좋았다. 예전 회사 친한 친구가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해서 제왕 절개 수술의 날짜를 잡았는데, 5월 12일 월요일 오후라고 했다.
“설마 실 풀자마자 우리 아가도 나오는 거 아냐?”
웃으며 연락을 했는데, 마음 한 켠으로 어떤 느낌이 왔다. 나도 5월 12일, 그날이 d-day가 될 것만 같았다.
주말을 행복하게 잘 보낸 5월 12일 월요일, 남편은 새벽에 출근하고 나는 일찍부터 깨어 있었다. 배를 만지며 베짱이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실 풀 거야, 베짱아. 오랫동안 잘 버텼어.”
교수님이 아침 회진을 오셔서 처치실에 가서 실을 풀었다. 아플 줄 알았는데 아프지는 않았다. 실을 잘라서 그런지 처치실에서 돌아오는 길에 내가 걸어가는 길 대로 뚝뚝 피가 떨어졌다. 빨간 피가 무슨 암시 같았다. 서서 피를 멍하니 보고 있자, 닦을 것을 주시며 태동검사를 해야 하니 침대에 누우라고 하셨다.
다른 환자들을 보고 외래를 가시기 전 내진을 해주셨는데 2cm였다. 초산이고 통증이 없으니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하셨다. 다만 분만장으로 이동해야 할 것 같으니 준비하라고 말씀하고 바삐 자리를 비우셨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낳을 수도 있는 거 같은데, 아프진 않지만 일단 와보기는 해 보라고 했다. 어느새 전문의 선생님이 오셔서 수술 관련 영상이 담긴 탭을 주셨다. 혹시 몰라 금식한 나를 칭찬해 주셨다. 급하면 수술에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영상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11시 30분쯤 갑자기 교수님이 다시 오셨다. 내진을 하니, 벌써 4cm라고 하셨다.
“통증 없으세요?”
약한 생리통 정도였는데 기계를 보니 생각보다 수치가 높았다. 내진은 아프다던데, 느낌도 안 났다.
“진통 오면 자연분만 할 수 있겠어요?”
대학병원에서 자연분만 시에는 무통이 없다. 그런데 수술 후 통증도 없고, 내진도 안 아픈 나였다.
“교수님, 저 통증에 좀 둔한 거 같아요.”
“괜찮다는 얘기죠?”
교수님은 간호사 선생님께 분만장으로 왜 이동이 안 됐냐고 닦달하셨다. 분만장이 아직 준비가 안된 터였는데 나도 우물쭈물하자니, 짐은 나중에 보호자가 와서 챙기면 된다 하시고는, 이동기사님을 부르셨다.
어? 나 아기 낳으러 가는 건가? 밀려가는 침대에서 누워서 얼떨떨해하는 데, 선생님들이 우르르 응원을 오셨다. 잘 다녀오라고 했다. 복도 건너편의 분만장으로 가니 익숙한 선생님들이 또 환영인사를 했다. 분만실에 들어가기 전 대기장에 있었는데, 조산사 선생님이 오셨다. 다행스럽게도 바로 남편이 도착해서 짐 정리를 하고 내 옆에 앉았다. 점점 아파져서 바로 눕기가 조금 어렵다고 생각했다.
조산사 선생님은 차분하고, 아주 느린 말투로 천-천-히 말씀하셨다. 골반이 나쁘지 않고 아기 자세도 좋으니, 빠른 진행을 위해 양막파수를 하기로 결정했다. 긴 가위 같은 도구를 보여주시며 따뜻한 물이 흐를 거라고 하셨다. 다리 사이로 팍 하고 터지는 따뜻한 물을 느끼며, 아, 이게 양수구나하는 걸 알았다. 양수가 터지니 진통이 갑자기 커졌다. 처음에는 기계에서 보이는 숫자가 50 정도여서 그래 이 정도는 버틸 수 있다 생각했는데 점점 머리를 잡아 뜯고 싶어졌다. 몸을 펼 수도 굽힐 수도 없었다.
남편이 옆에서 같이 후-후 호흡을 해주고 있었는데, 그 호흡을 따라 하라는 남편이 얄미웠다. 아프지 않았을 때는 차분하다고 느껴졌던 조산사 선생님의 말투는, 아파서 정신이 없어지자 좀 더 빨리 말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없었다. 몸을 옆으로 틀어 침대 난간을 부서져라 잡으며, 호흡을 따라 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언제 끝나지? 그 정신없는 사이로 선생님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엄마가 힘주는 걸 잘해야 아가가 덜 힘들어요. 아가도 지금 힘들 거예요."
선생님이 아래로 아가를 밀어낸다는 생각으로 힘을 10초간 주는 연습을 계속하라고 하셨다. 숨을 크게 마시고 다시 내뱉은 다음, 다시 숨을 크게 마시고 숨을 참는다. 그리고 10을 센다. 한 번의 진통이 지나가고 가라앉았을 때쯤, 다시 새로운 진통이 온다. 이걸 몇 번쯤 했을까. 나중에는 기진맥진해서 자고만 싶었는데 갑자기 진통 간격이 빨라졌다. 선생님의 말에 속도가 붙었다. 분만실로 이동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양 무릎의 뒤를 손으로 잡고 가슴 쪽으로 당기는 자세를 알려주셨다. 두세 번만 제대로 힘주면 아기 나올 수 있다며, 산소호흡기를 씌워주셨다. 그 와중에 어느새 이동을 했는지 분만실의 환한 조명이 들어왔다. 그리고 아가가 밀고 내려오는 느낌이 났다.
"힘주세요!"
시끄러운 소리들 사이로, 내가 힘을 제대로 못 주면 아가가 더 힘들 테니 잘해야 해라는 마음만 가득했다. 처음 두 번의 힘주기 뒤로, 세 번째 아래로 온 힘을 줬을 때 갑자기 따뜻하고 미끄덩한 뭔가 쑤욱 빠지는 시원한 느낌과 아가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 나왔구나. 아, 우리 아가 태어났구나.
소아과 선생님이 빠르게 체크하신 후 따뜻하고 몰캉한 아가를 내 가슴에 얹어주셨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안녕, 베짱아?"
울음이 나왔다. 동시에 아가의 큰 울음소리가 위안이 됐다. 아가는 여러 가지 검사를 위해 니큐(NICU)로 간다고 했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소아과 선생님이 남편에게 절차를 이야기해 주시는 동안, 산부인과 주치의 교수님이 내 회음부를 꿰매주시는 게 느껴졌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저 아가가 배에 없는 느낌이 이상했다. 네가 나에게 무사히 왔다. 병원에 온 지 124일 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