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짱이 탄생 2일 차
병원의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걱정해 주신 덕분인지 생각만큼 피가 아주 많이 나지는 않았다. 혈소판 2개와 적혈구 1개를 맞고 병실에서 쉬고 있자니, 교수님이 오셨다. 그동안 봤던 얼굴 중 가장 밝고 안도하신 표정으로, 혈액내과 교수님한테 자랑해야겠다고 말하시며 떠나셨다. 오후 내도록 수혈을 하고 기력을 다 쓴 탓인지 중간에 한번 까무러쳤다. 그래도 이실한지 12시간 만에 91 병동으로 돌아왔다. 아가 낳고는 1인실을 요청했었는데 아주 다행히도, 늘 자리가 없던 1인실이 자리가 있어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긴 하루가 끝났다. 남편도 나도 아무런 방해 없이 가장 긴 잠을 잤다.
출산한 지 이틀차, 아드레날린으로 못 느꼈던 통증이 이제야 몰려오는지, 회음부도 아팠지만 왼쪽 엉치뼈가 너무너무 아팠다. 새벽 내내 간호사 선생님들께 애원해 진통제를 맞았다. 내가 엄마가 된 게 2일 차라는 게 실감도 안 났지만, 내가 낳은 베짱이를 얼른 보고 싶어서 아침 시간 내내 발을 동동 굴렀다. 아파서인지 입맛도 없었는데, 나는 이제 엄마니까 미역국을 먹었다.
10시 50분부터 링거대에 온몸을 기대고 같은 층의 NICU로 향했다. 문 앞에는 아가를 보기 위해 면회만을 기다린 다른 엄마아빠들로 세워진 줄이 있었다. 문이 땡 하고 열리자 바람같이 우르르 들어간다. 면회시간은 단 30분, 할 일이 너무 많다.
아가는 삑삑 거리는 기계음들 사이에 곤히 자고 있었다. 너무 작았다. 그중에는 큰 아기였는데도 너무 작아서, 남편도 나도 차마 만지지도 못했다. 가만가만 아가 태명을 불렀다.
“베짱아…“
이 작은 아가가 나에게 온 게 너무 기적 같다. 나에게 무사히 와줘서 고마워. 걱정해서 미안해. 넌 너무너무 예쁘다 정말. 양수에 퉁퉁 불어 빵빵한 얼굴조차 사랑스러웠다. 각종 검사를 위해 아가가 버텨야 할 날은 기약이 없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어떤 이름 모를 감정이 몽글몽글 올라왔다.
짧은 30분 면회 후에 자리에 돌아와 퇴원 설명을 들었다. 이제 긴 병동 생활을 끝내고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마지막 인사를 위해 교수님께 긴 편지를 썼다. 얼마나 고맙고, 얼마나 감사한지. 한 글자 쓸 때마다 울음이 터졌다. 호르몬 때문일까, 눈이 퉁퉁 부을 만큼 엉엉 울었다.
자연분만은 왜 2박 3일인지(그것도 3일 차는 오전 11시에는 나가야 한다), 나는 왜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병원에 더 있고 싶은 건지, 교수님은 다음 주에 외래로 또 만날 텐데 왜 작별 편지 같은 걸 쓰는 건지. 이 모든 걸 이해할 수 없었다.
밤에 짐을 싸면서 또 울었다.
그래도 나는 4개월을 병원에서 보냈고,
또 두 개의 계절을 보내고, 이 자리를 떠난다.
내 인생에서 가장 이상하고 아름다웠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