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끝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by 모얼리

마지막 날이 밝았다.


이제는 수액도 맞을 필요가 없어 바늘을 뺐다. 자연분만 덕분인지 욱신거리는 엉치뼈 빼고는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그동안 환자로서 꽤나 많은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봤지만,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아침 회진 시간이 되어 교수님이 내 이름을 부르며 들어오셨다. 교수님은 그간 본 얼굴 중에 가장 환한 얼굴로 들어오셔서


“정말 잘했어요. 베짱이도 잘할 거예요. “


라고 말씀해 주셨다. 아직 해야 할 검사들이 많아, 아가를 NICU에 남겨두고 조리원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무거운 터였다. 그 다정한 말씀에 애써 눌러두었던 눈물이 펑하고 터져버렸다. 자유로워진 양손으로 교수님을 안았다. 약간 마르고 단단한, 그리고 따뜻한 교수님은 나를 마주 안아주시며 등을 토닥토닥해주셨다. 잘했다고, 정말 장하다고.


어느새 나와 교수님 주변의 선생님들도 눈물을 훔치는 게 보여서 헤헤 웃음이 나왔다. 울다가 웃다가, 요동치는 내 마음은 다 호르몬 때문일 거다.


감사합니다, 베짱이를 살려주셔서,

그리고 저를 살려주셔서.


우당탕탕 인사 끝에는 병원 이곳저곳을 돌며 인사를 했다. 매일 내 자리를 청소해 주시던 여사님들, 아주 가끔 가던 샤워실, 울고 싶을 때 가던 만남의 방. 조리원으로 떠나기 전, 베짱이에게 들러서 인사도 했다. 내일부터는 엄마가 조리원에서 올 거라고, 초유는 꼭 주고 싶으니까 유축 열심히 해서 오겠다고.


혀 끝으로 내뱉는 “엄마”라는 단어가 생경했다. 뒤늦게 퉁퉁 불어 찐빵 같은 베짱이가, 못생기고 예뻤다. 호흡이 살짝 불안정하다는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곧이어 오신 소아과 교수님이 걱정을 덜어주셨다. 내 주치의이신 혈액내과 교수님이 소아청소년과 과장님이라고, 그래서 아주 신신당부하셨으니 걱정 말라고 해주셨다. 병원에서 엄마랑 딸을 같이 챙겨주시는 모습에 내가 꼭 VIP 환자가 된 것 같았다. 웃기게도 그게 좀 멋있다고 생각했다.


퇴원해야 하는 시간, 정말 가야 했다. 계시는 선생님들께 마지막으로 인사를 한 후에, 남편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꽤 오랜 시간 있었던 탓에 짐이 많았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데도, 하루에 스무 걸음도 안 걷다가 갑자기 계속 걷다 보니 발걸음이 영 어색했다.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비틀거렸다. 이제 진짜 병원에서 벗어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숫자가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입원하던 날이 생각났다.


126일.


2025년 1월 9일부터, 2025년 5월 14일까지, 124일을 버텨 베짱이를 만났고, 이틀 뒤 병원을 떠난다.


내가 해냈다. 우리가 해냈다. 정말 해냈다.


나는 늘, 내 몸의 귀퉁이 어딘가에 “죽음”이라는 단어를 꼬리표처럼 달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거의 늘 환자였고,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인생에 베짱이가 와버렸다. 그것도 아가가 원해서가 아니라, 나와 내 남편의 의지로 지구별로 베짱이를 불러들였다. 그것도 너무 어렵고 힘든 방법으로.


그래서 나는 앞으로 베짱이를 위해 제대로 된 책임을 져야 한다. 베짱이와 병원에서 잘 버틴 게 첫 단추였다. 나는 건강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하게 잘 살아가야 한다. 그걸 위한 시간들이었다.


기다리던 끝이었고, 기대하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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