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워질 병원생활 (1)

24주를 넘기고

by 모얼리

24주, 토요일 아침. 또 검사를 했다. 자궁 경부는 여전히 1.3cm 정도였다. 그래도 수축 없이 비슷한 상태라 조금 더 버텨보기로 했다. 이제 아가가 태어나면 생존율은 80% 가까이 된다. 0%에서 80%라니, 놀라운 변화였다. 내가 한 주 한 주 버텨낸 만큼 생존율이 올라간다니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산부인과 교수님은 잘 버티고 있다고 칭찬해 주셨다. 매일 한 번, 혹은 두 번. 종종 주말도 오시는 교수님을 보면 하루가 안심이 됐지만, 또 하루도 안 쉬시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래도 교수님이 괜찮다 하면 괜찮은 거였다. 내가 한 건 없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뿌듯했다. 아가에게 고마웠다. 혈액내과 교수님도 또 한 번 들러주셨다. 그 크고 훤칠한 키로 성큼성큼 들어오셔서는, 또 "괜찮지? 배가 많이 나왔네." 하셨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우리 교수님이 멋지다고 칭찬을 했다. 괜히 내가 또 뿌듯했다.

24주 주간에는 졸업식이 있었다. 대학원을 열심히 다녔는지 최우수 성적상을 받아, 대표로 올라갈 수도 있었다. 결국 학교 교정에서 사진도 찍지 못했고, 증서만 따로 받기로 했다. 못내 아쉬웠다. 남편이 아쉬워하지 말라며 발런타인데이 겸 졸업 축하 초콜릿을 사다 줬다. 당이 오를까 봐 하루에 한 개씩 아껴 먹었다. 초콜릿을 삼킬 때마다 단 맛이 달지 않게 느껴졌다.


교수님이 새로 주신 데드라인은 28주였다. 이왕 병원에 머무르기로 한 것, 기록을 경신하고 싶어졌다. 겉으로는 담담하게 마음을 먹어도, 문득 피어오르는 아쉬운 마음들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특히 올해는 주변에서 임신 소식이 많았다. 그 많은 임신 소식들 중에 나만 이렇게 병원에 있어 괜히 억울하기도 했다. 남들의 임신 기간은 내내 행복하고 순탄해 보였다. 소셜 미디어 속의 임산부들은 예쁘고 동그란 배를 내밀고 다녔다. 나는 넉넉한 병원복 사이로 배가 언뜻 보이는 약간 살찐 사람 같았다.


그래도 어쩔 수 있나, 그냥 그런가 보다 하기로 했다. 뭐, 언제는 안 그런 삶이었냐며. 덕분에 회사도 안 가니, 내 인생에 다시없을 긴 휴가라고 믿기로 했다. 미뤄놨던 소설, 드라마를 잔뜩 받고, 평소에는 보지도 않던 유튜브도 봤다. 내가 즐거워 낄낄 웃을 때면, 배에서 베짱이가 톡톡 두드렸다. 내가 즐거워야 저도 즐거운가. 경부길이를 확인할 때, 종종 초음파로 베짱이를 보여주시곤 했다. 어떤 날은 양수를 먹는 입을 뻐끔뻐끔 보여주기도 하고, 어떤 날은 얼굴을 보여주기 싫은지 얼굴을 가렸다. 귀여운 발을 보는 날도 있었고, 손바닥을 쫙 펴서 올려놓는 날도 있었다. 병원 밥을 다 먹지는 않아 나는 크게 살찌지 않았는데, 베짱이는 무럭무럭 컸다. 그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아가의 태명을 물어보셨다. “베짱이”라고, 지은 이유를 설명해 드렸다. 예쁜 네임택을 만들어서 붙여주셨다. 버틸 수 있는 수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눈물이 났다. 괜히 부끄러워, 자꾸 사진을 찍었다.

약을 맞는 수액줄 라인은 3일에 한 번씩 갈아야 했다. 왼쪽과 오른쪽 번갈아 찔렀는데도, 수혈을 위한 큰 바늘이라 혈관이 자꾸 숨었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해주실 때도 있었고 정맥팀에서 와서 잡아주시기도 했다. 어쩌다 숨은 내 혈관 때문에 두 번, 세 번 다시 주사를 꽂으면 미안해하셨다. 그 마음마저 고마웠다. 그래도 장기 환자가 되다 보니 선생님들과 얘기를 많이 했다. 맛집을 추천해 주시는 선생님, 환자 중에 나를 제일 좋아한다는 선생님, 병원에서 일하셨냐고 묻는 병아리 선생님, 늘 햇살같이 반짝반짝 빛나는 선생님. 선생님들 이름을 꼭 기억하고 싶어서 메모장에 기록했다. 3교대를 하시고 로테이션도 많이 돼서, 왔다 가시는 선생님들도 새로 오시는 선생님들도 있었는데 한 분 한 분이 다 천사였다.


수혈은 거의 매주 했다. 헌혈증이 있으면 나중에 피값에 도움이 된다는 게 기억났다. 남편한테 말하니, 친구 중에 취미가 헌혈인 분이 있다고 했다. 그분이 잔뜩 보내주신 헌혈증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주기적으로 병원비를 결제했는데 단위가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웃음이 났다. 태아보험을 들 때 산모특약을 고지해서, 산모보험은 못 들었던 터라 회사에서 들었던 실비에 고마웠다. 병원에 누워있으면서도 이런 현실적인 것들을 기억하고 챙겨야 한다는 게 우스웠다. 그리고 이런 이성적인 생각들을 할 때마다, 이게 맞는 건가 하며 걱정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걱정들을 달고 잠을 자니 계속 꿈을 꿔서, 늘 피곤한 상태였다. 그래서 수혈할 때 자는 잠이 달았다. 수혈 부작용을 방지하는 주사를 맞으면 기절하듯이 자버렸는데, 그게 부작용이라는 건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병원 생활이 짧지 않은 편인데도 모르는 게 많다.


그래도 나는 인복이 넘친다. 교수님들도, 간호사 선생님들도, 나와 베짱이를 위해 애써주고 계셨다. 그래서 베짱이도 잘 버티고 있었다. 하루는 길고, 일주일도 길었는데, 4주가 금방 가고 28주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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