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대화 한번 해볼까?

크리스틴 로젠의 '경험의 멸종'을 함께 읽고

by ㅁㅗ하니


"군대 가면 선임들이 괴롭힌다는 데 넌 괜찮아?"

작년 가을 군대에 간 아이와 처음 통화하며 한 질문이다. 오빠 둘, 남자 동기들, 주위 남자 동료들. 군대에 직접 가지 않았어도 군대가 어떠하다는 건 많이 들어왔다. 무용담과 함께 살벌한 폭력 경험을 종종 들어온 터라 걱정이 앞섰다. 혹시나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거 아닌가, CCTV 사각지대에서 선임들이 괴롭히지는 않나. 내 자식 문제이니 더 예민하게 반응한 거다.

"엄마 없다니까요. 없어요."

전화기 너머 아이는 세상물정 모르는 엄마가 답답한지 짧게 답한다. 애써 감추는 건 아닌지 더 캐물었다.

"아니 왜 없어. 엄마한테 솔직하게 말해봐."

"엄마, 다들 서로 관심 없어. 핸드폰만 봐요."

아, 그렇구나. 핸드폰이 있었구나. 안심이 됐지만, 씁쓸하다. 군대에 가면 안 좋은 기억도 남지만, 서로 어울려 부딪히면서 학생 때와 다른 경험도 하고 그러면서 생각도 커지고 어른스러워지겠구나 내심 기대했는데. 다들 핸드폰만 보고 있으면 집에서와 별반 다른 게 없는 것 아닌가. 혈기 왕성한 남자 애들 몸도 정신도 잡아 놓았네. 갑을론박이 있겠지만, 디지털 세대이니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고 학교에서 보는 아이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마음 한 구석 무거웠다.


3월이 막 지났을 때부터 한 아이가 결과를 하기 시작했다. 고교학점제가 적용되는 1학년은 최소성취 이수 시간을 채우지 않으면 보충 학습을 받아야 학점 이수가 인정된다. 교과 교사는 미이수 학생이 나오지 않도록 학생 출결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학생의 결과 사유는 복도에서 마주친 담임 선생님께 들을 수 있었다.

"같은 모둠 아이들끼리 단톡방에서 서로 말다툼했대요. 모둠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아 서로 뭐라 했나 봐요. 아이가 모둠 활동이 싫어서 오지 않는 거래요."

이런, 그런 거였구나. 사실 모둠 활동을 하면서 몇 년 전과 다른 것을 느꼈다. 전반적으로 모둠 탐구이지만 각자 영역을 나눠 자기 몫만 하고 끝낸다. 의견을 조율해 하나의 대표 의견을 모으는 걸 하지 못한다. 애들에게 물었다.

"다른 수업에서도 모둠 활동을 하니?"

"영어 하고 과학탐구실험만요."

이런, 시대에 맞지 않는 무리한 수업에 도전한 건가?


책쓰기교육 연수를 이수한 선생님들과 함께 읽고 대화하고 쓰는 모임을 갖고 있다. 2024년부터 소설, 철학 소설, 고전문학 등 다양한 책들을 함께 읽고 있다. 이번 책은 크리스틴 로젠의 『경험의 종말』이다. 다양한 사례를 인용하면서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하는 좋은 책이다. 온라인 디지털 도구들이 십 대 학생들의 일상에 얼마나 깊숙이 파고들었는지 그 현주소를 보여 주는 대목에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10대 10명 중 여섯 명은 매일 또는 거의 매일 온라인으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고 답한 반면, 같은 빈도로 친구들을 직접 만나 시간을 보낸다고 답한 비율은 24퍼센트에 불과했다(학교 관련 활동 제외). 미래 모니터링 조사 Monitoring the Future Survey에서는 “거의 매일” 친구를 직접 만난 12학년 학생의 수가 2010년 44퍼센트에서 2022년 32퍼센트로 감소한 것이 드러났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32퍼센트 비율보다 많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저자는 대면 의사소통을 피한다면 그 시기에 꼭 배워야 할 사회적 기술과 감정 읽는 기술을 아이들이 배우지 못할 거라 경고한다. 강의식 수업에서는 아이들끼리 상호작용 할 기회가 거의 없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사회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마저 개인 태블릿에 얼굴을 묻고 가상 세계에 주의를 빼앗긴 아이들이 점점 더 눈에 띈다. 심지어 점심 먹기를 포기하는 아이도 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공간에 가 있는 거다.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이원의 세계가 공존하는 걸 보여주는 건가?


작가는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의 말을 인용한다.

관심은 가장 희귀하고 순수한 형태의 관대함이다.


추상적이고 어려운 존재론적 정의가 아니더라도 같은 공기를 마시고, 얼굴을 서로 보며 이야기하고, 웃고, 싸우고 화해하는 것만큼 내가 누구인지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이런 대면 상호작용은 매개된 상호작용 보다 시간을 더 많이 쏟을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을 내어주는 것보다 큰 관대함은 없다.

대면 경험의 부족으로 아이들은 현실에서 더 불안해지고 외로워져 그 보상으로 더 가상 세계에 빠져드는 것 같다.


아이들이 가상 세계에서 빠져나와 얼굴을 마주 보며 인간다움을 발견하게 하려면 관심 갖는 주제에서 시작되는 안전한 대화, 각자의 삶과 연결되는 의미 있는 대화의 장에 아이들을 초대해야 한다. 그러기에 그림책을 활용한 철학적탐구공동체 활동은 좋은 경험이다.

전부터 눈여겨 봐둔 아드리앵 파를랑주의 『누가 사자의 방에 들어왔지?』로 아이들을 대화에 초대해 봐야겠다. 애들이 관심을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