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의 철학적 대화 가능할까?

그림책 '누가 사자방에 들어왔을까?'를 함께 읽고

by ㅁㅗ하니

고등학교 7월과 12월은 잔인한 달이다. 기말고사가 끝난 뒤 더 이상 학생들은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교사들도 교과세특(교과세부능력 특기사항의 줄임말) 입력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다교과를 담당하는 교사들에게 쓰기는 노동이자 고통이 된다. 이미 고등학교 교육은 평가와 생기부(학생 생활기록부 줄임말)가 양대 축이 되어 모든 교육 활동이 이 둘을 위해 돌아간다고 봐도 과장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정답 찾기에 익숙해지고 교육 활동은 경직될 수 밖에 없다. 평가는 누구에게나 어렵다. 하는 자나 받는 자 모두.

올해 수행 활동으로만 평가하고 3등급 절대 평가로 결과를 내는 과학탐구실험 교과를 전담하게 된 건 전화위복, 기회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것만으로도 학생들과의 관계 형성은 훨씬 부드러워질 수 있다. 기말고사가 끝난 뒤 아이들과 대화를 준비했다. 고등학교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적당히 쉬우면서도 적당히 고민을 던지는 그런 책이 뭘까. 최종 선택한 그림책은 아드리앵 파를랑주가 그리고 글을 쓴 '누가 사자의 방에 들어왔지?'이다. 그래 해보자.

그림책으로 시작하는 철학적 대화를 시도하려면 안전한 분위기, 공간이 우선이다. 평소에 아이들과의 관계를 잘 형성해야 한다. 무조건 학생 뜻에 맞추라는 뜻이 아니라 상호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구성원들의 성향이나 반 분위기도 중요하다. 여러 반에서 시도해도 모두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하는 이유다.

아이들과 돌아가며 책을 읽었다. 단순한 일러스트 형식의 그림이고 글이 많지 않아 짧은 시간 동안 읽기에 좋다. 무엇보다 한장 한장 넘기면서 그림에 숨겨 있는 차이점을 발견해가는 재미가 크다.

고등학생이지만 누군가 한 명이 그 차이점을 찾아내는 순간 다른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 대화는 다른 국면으로 넘어간다.


"어, 천장에서 거미가 점점 내려오는 거네요."

"애들은 사자방인줄 알고 왜 들어간 걸까요?"

"사자는 왜 자기 방에서 떨죠?"

"시간이 가면서 애들은 점점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왜 긴장을 안하죠?"


아이들은 등장하는 캐릭터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유를 묻는다.


"등장 인물들처럼 움츠려들 때가 언제였지?"

"처음 낯선 사람과 만났을 때요."

"고등학교에 들어왔을때, 처음 친구를 사귈 때 그래요."


등장 캐릭터들의 행동을 서로 다른 아이들이 자기 생각과 감정을 이입해 해석하면서 이야기는 학생 수 만큼 다르게 전개된다. 대화 속에서 아이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왜 그런 불안한 감정이 들까?"

"예측하지 못하니까. 실패할까봐서요."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요."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받는 거 때문에요."


시간적 제한과 내 경험 부족으로 더 깊이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 늘 아쉽다.

어느 반 한 아이가 쥐에 대해 관심을 보이며 질문했다.


"선생님, 도대체 쥐는 뭐에요? 쥐는 왜 다른 애들이랑 다르죠?"

그러면서 묻는다.

"도대체 이 책 결론이 뭐에요?"


그림책에서 쥐는 가장 마음이 편하다. 환경의 변화와 상관없이 편안하다. 그 아이가 말한다.

"쥐는 다른 캐릭터들과 다르게 쥐는 너무 주위 신경을 안쓰는 것 같아요. 자기만 신경쓰고 사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아이가 말한다.

"난 오히려 쥐처럼 살고 싶어요. 남 신경 안쓰고 그때 그때 즐기며 사는 것이 좋잖아요."

"그럼 나만 즐기면 된다는 거야?"

"그러게. 쥐를 통해 말하고 싶은 건 뭘까?"


결론을 짓지 못하고 종이 울렸다. 불안과 그 원인 대해 말했어야 했는데, 불안이란 무엇인지 질문했어야 했는데...... 늘 아쉬움이 많다. 제대로 된 연속 질문도 없고, 의미 탐구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런 대화는 시간 낭비이지 않을까? 도입-전개-정리로 이어지는 구조화된 교실 속 대화를 했어야 했다. 단발적인 미완성의 철학적 대화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을지 자신이 없다. 고등학교 교실에서는 어려운 시도인 걸까?

최근 읽고 있는 가렛 매튜스의 '아이들과의 철학적 대화' 에서 그나마 위안을 주는 문장을 발견했다. 오랜 기간 아이들과의 철학적 대화를 실천해온 전문가 조차도 교사가 모든 것을 주도하고 옳은 결론이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경험을 고백하고 있다. 덧붙여 교사들에게 당부한다.


내게는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느끼게 해주는 것이
가장 핵심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말이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교사의 역할은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입으로 읊어주고 기록해주어 그 말을 '살려 내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기의 생각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매튜스는 철학적 대화가 어떻게 마무리되어야 하는지도 말해준다.


나는 수업이 마무리될 때쯤 "그렇다면 이 질문의 답은 무엇인가요?"라고
아이들이 묻지 않기를 바란다.
나를 마치 책 속 어딘가에 있는 정답을 가르쳐 주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 스스로 그 답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길 바란다.


이제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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