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탐구가 철학 탐구가 된다고?

'청소년을 위한 두 글자 인문학'을 읽고

by ㅁㅗ하니

지금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과 과학과제연구 수업을 하고 있다. 그것도 온라인으로.

고교학점제의 정상 운영을 위해서는 학생들의 교과 선택의 폭을 넓히고 진로 설계에 도움이 되도록 다양한 교과를 개설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지역적, 시간적 한계다. 중심에서 소외되었거나 규모가 작은 학교의 경우 학생 선택에 물리적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물론 모든 학교가 모든 학생의 선택을 다 충족해줄 수 없는 근본적 한계도 있다. 그래서 교과의 학생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공동교육과정을 개설 운영한다. 그중 온라인 학교나 온라인 공동교육과정은 그 틈새를 메우기 위한 보완 장치다. 과학 탐구(연구) 수업이 '온라인'으로 가능할지 망설여 졌지만, 실험이나 실습이 실험실을 벗어나 일상 생활 속에서도 가능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에 도전했다.


과학과제연구는 학생들이 과학 학습을 진로 탐색과 준비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교과라 생각한다. 교과 수업에서 해보기 어려운 과학연구 전 단계를 한 학기 동안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시간이기에 이공 계열로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겐 대입에서 학업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지표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개설된 교과 이외 개인적으로 선택한 교과이니 이보다 더 설득력 있는 지표가 있을까? 교사와 학생 둘 다 알고 공감하는 이유다. 하지만 난 이유가 더 있다.


화학 교과는 선택 교과로서 좋아하거나, 최소한 배워야 하는 이유가 분명한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다. 그러다 보니 과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 학생뿐 아니라 교사 자신도 묻지 않거나 생각하지 않게 된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을 때야 비로소 근본적 질문을 하게 되는 경우처럼, 외국어고에서 화학을 가르치면서 그 결정적 질문과 만났다.


선생님, 화학은 너무 어려워요. 어렵고 재미없는 걸 왜 하셨어요?

난 아이의 당돌한 질문에 어쩔 줄 몰라했다. 바로 대답할 수 없었던 건 나도 그 이유를 잊었거나 몰랐기 때문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고등 학생들은 과학 교과를 입시 과목으로 생각하고 악명높은 문제 풀이에 매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요즘 '사탐런'이란 말이 있다. 어려운 걸 하기 싫어하는 애들이 과학 탐구가 아니라 사회 탐구를 더 많이 선택하는 풍조를 말하는 거란다. 공부 잘하는 이공 계열 학생, 영재고, 과고 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말 이렇게 피상적으로 받아들일 문제인가? 이게 과학 교육의 현주소라면 과학 교사로 씁쓸해 하기 전 고민하고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학생의 질문을 시작으로 과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 학생들을 설득해야 했고, 과학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관련 책을 찾아 읽다 대학원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수업 관련 책, 과학 교육론이나 화학 교재론 등. 하지만 여전히 내가 가진 본질적 질문들을 교묘히 피해 가는 난해하고 진부한 말뿐이었다. 학부 때 가졌던 치기 어린 반감이 떠올랐고, 대학원 수업도 다르지 않았다. 컵에 물을 비워야 채울 수 있듯 익숙하고 잘해왔던 것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철학 공부였다. 하지만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와 달리 ‘철학’이라는 완고한 벽에 좌절하고, 낯선 용어들로 말문이 막혔다. 중요한 것은 철학사나 철학 사상이 아니라 실천적 방법이었으니까. 그렇다고 과학 수업에서 철학을 가르칠 수는 없지 않은가. 대입이라는 학생들의 현실적 필요와 이유도 외면할 수 없다. 과학 개념, 과학 이론도 중요하니까.


박사 논문을 마무리하고 공부를 이어가려 할 때 즈음 회의감이 밀려왔다. 학교 현장에서 만난 질문을 시작으로 공부했지만 논문과 책 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가르침에 관해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하고 평가받는 곳이 학교 수업 현장이지 않나. 처음 질문의 답을 찾아가려면 질문이 시작된 곳으로 가야한다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학교로 돌아왔고 그 선택에 후회 없다.


그즈음 내 안의 질문이 가리키는 곳에서 만난 것이 철학적탐구공동체 활동이었다. 처음 이 교육 실천을 시작한 매튜 립맨은 대학 교수로 철학자였지만, 한 계기로 박재된 철학 이론이 아닌 실천하는 철학 교육을 해야 겠다 마음 먹고 유아부터 고등학생까지 포함하는 어린이를 위한 철학 교육(Philosophy For Chidren)을 학교 현장에서 직접 실천하고 서로 배우는 교사 공동체를 설립했다. 이를 이어받아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단체로 한국 철학적 탐구공동체 연구회가 있다. 이 연구회는 초등 교사, 다양한 교과의 중등 교사, 대학 교수 등이 한 데 모여 학교 현장에서 실천 가능한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와 함께 하는 철학 교육을 고민하고, 실천하고 배움을 나누는 공동체다.


교육 연구자들은 하나같이 과학 교과의 지식 중심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해왔지만, 고등학교 수업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공정한 시험을 위한 과학 지식 위주의 수업 내용은 종이컵이 버려질 때 느껴지는 아쉬움 정도만 남긴 채 학생들에게 빠르게 잊힌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과학 지식이 어렵고 자기 삶과 무관하다 말한다. 더욱이 고교학점제가 실시되면서 교사가 수업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경우가 생긴다. 고객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상품이 될 수 있다. 고객에게 외면받지 않으려면 고객의 필요를 일깨우거나 마음을 훔쳐야 한다. 이제 생존이다.


과학이 무엇일까?

과학을 왜 배워야 할까?

과학 수업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답하려면 교사는 과학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과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를 답하려면 과학의 쓸모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즉 학생들의 질문이자 과학 교사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다. '과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과학의 본성, 본질을 묻는 것이니 어렵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큰 질문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인간이 끊임없이 해오는 본질적이며 큰 질문, 존재론적 질문이다. '과학을 왜 배워야 할까?'라는 질문은 과학의 쓸모, 가치, 의미를 묻는 거다. 가치와 의미를 묻는 질문도 어렵다.


존재론적 질문, 가치론적 질문은 어려워도 인간이 묻는 궁극적 질문이다. 그래서 철학적 질문이다. 그 답을 찾는 건 어렵지만, 찾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과정이 공부다. 칸트도 Philosophie라는 명사형이 아닌 일반적으로 사용된 적이 없는 philosophieren이라는 동사형을 강조했다. 철학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철학함 만을 배울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철학함은 ‘철학 하기(doing philosophy)’란 실천적 의미다. 철학은 어렵다고 생각해 경외할 이유가 없다. 철학 사상이나 철학자의 멋들어진 말은 박제된 과학 지식과 다를 바 없다. 철학함은 당연한 일상의 사건과 사물을 당연하지 않게 보는 것, 자신조차 타자화(他者化)해서 낯설게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되고 숙고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여 판단하게 된다. 이런 사고는 삶에서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할지, 무엇을 행해야 할지 결정하는 데 필요하고 결국 과학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철학함은 모든 교과에서 해야 한다.


탐구(探究 , inquiry)는 주어진 모든 상황이 잘 되고 있다는 생각에 대해 의심하면서 시작되고 이 의심은 질문을 낳는다. 철학함도 질문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즉 철학함은 탐구다. 과학 탐구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는 과학 탐구는 결국 철학 탐구로 이어진다 생각한다. 매튜 립맨이 영향을 받은 존 듀이의 철학도 결국 과학의 탐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왔다. 공통의 탐구과정이지만 질문의 형식과 종류가 다를 뿐이다.

사실 과학연구과제 수업을 개설한 것도 이 생각을 적용해보고 싶은 것이 이유였다. 개인적 호기심과 흥미에서 시작된 질문을 찾아보고 그 질문에 대한 자기 가설을 검증하며 정당화해보는 과정을 경험하도록 안내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질문의 잠정적 결론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질문하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것이 '과학이야, 이런 것이 과학의 쓸모야.' 라고 경험해서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물론 나도 잠정적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수업을 시작하기에 박병기 교수님이 추천하신 '청소년을 위한 두 글자 인문학'을 추천한다.



'나는 생각하는 사람인가?', '어떤 질문이 좋은 질문인가?', '철학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우리는 왜 공부를 할까?' 등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질문으로 엮은 책을 읽으며 학생들과 과학적 질문과 철학적 질문의 차이, 과학 탐구와 철학 탐구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고자 한다.

그래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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