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진저의 '공부가 되는 글쓰기'를 읽고
교사라는 직업을 밝히고 나면 으레 뒤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혹시 무슨 과목을 가르치세요?"
그럼 대답 대신 질문을 돌려주곤 한다.
"무슨 과목 가르칠 것 같아요?"
대체적으로 국어 교사일 것 같다는 대답이 많다. 어울리는 사람들이 국어 교사들이어서 자연스레 물들었을 수도 있겠다. '생각'은 오래 품을 수록 밖으로 새어 나와 표정이 되고 말과 행동을 낳는다. 글쓰기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이제 남들이 눈치챌 정도로 드러나는가 보다. 물론 국어 교사만이 글쓰기에 관심을 갖는다는 생각이 편견이긴 하지만, 과학교사가 글을 읽고 쓰는 것에 관심을 갖는 사례보다 많다고 볼때 아주 치우친 생각은 아니지 않나. 그래도 생각과 삶이 천천히 조율되어 맞춰지는 것 같아 내심 듣기 좋았다.
외국어고에 근무할 때부터 였다. 입시 지도에서 벗어나면서 과학이 무엇인지, 과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에 관심을 갖게됐다. 그래서 이것저것 기웃거리며 할 수 있는 것들부터 했다. 학생 대상 인문학 강의, 고등학교 논술 아카데미, 인문영재 강의, 인문독서추진단 활동. 과학 교사로 익숙하고 잘할 수 있는 장(場)을 벗어나 낯설고 서툰 영역에 발을 들인 거다.
왜 경계인이 되는 걸 선택해왔을까?
단순히 주목받고 싶어서라든지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단발성 외유로 끝나지 않고 13년 넘게 한 방향을 향해 꾸준히 걸어온 것만한 진심과 증거가 있을까? 처음엔 스스로 확신하지 못해 머뭇거렸지만 지금은 그런대로 단단한 마음으로 답한다. 마음의 소리를 따라왔다고. 자기 안의 질문에 응답하며 살아왔다는 말은 제대로 진심으로 해내려 애써왔다는 거다.
요즈음 수업에서 시도하는 과학 글(책)쓰기도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다. 글쓰기라는 건 모든 교과에서 하고 있고,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까지 평생 하는 거다. 하지만 그 가치에 주목하지 않고 전문가나 필요한 사람만 하는 걸로 취급되었다. 특히 중고등학교 과학 교과에서는 서술형 평가니 과학 논술이니 과학 글쓰기니 여러 활동을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주요 활동은 아니며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글쓰기는 철학함이다. 글쓰기는 공부한 것을 자기 삶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즉 앎이 곧 삶이 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생각에 힘을 실어준 책이 바로 윌리엄 진저의 '공부가 되는 글쓰기'다. 오래전에 읽고 치워놓았던 책인데 과학과제연구 수업을 준비하면서 다시 꺼내 읽었다. 같은 문장이지만 지금은 다르게 보인다.
최근에 들어서야 글쓰기에 대한 중대한 관점의 변화가 일어났다. 결과 중심에서 과정 중심으로의 변화다. 글쓰기를 과정 중심으로 보는 관점은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 거치는 과정, 즉 최상의 결과물을 빚어내기 위한 반복적인 다시 쓰기와 다시 사고하기를 강조한다. 과정이 훌륭하다면 결과는 자연스레 따라오기 마련이다. 글쓰기는 사고를 명료하게 정리하고 조직하는 행위다. 글쓰기는 우리가 어떤 주제에 접근해 그것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과정이다. 글쓰기는 내가 배우고자 하는 것에 대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깨닫게 한다. 개념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창에 서린 성에를 닦아 내는 작업과 비슷하다. 흐릿하고 모호했던 개념이 글을 쓰면서 서서히 명확하게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공부가 되는 글쓰기' 본문 중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는 과정은 읽기(Reading), 쓰기(wRiting), 사고하기(Reasoning)의 되먹임과 맞물림의 순환 과정이다. 과학 탐구인 귀납적 탐구와 연역적 탐구도 단계별로 정형화되어 있는 듯 하지만 결국 그 밑바탕은 읽기, 쓰기, 사고하기다. 탐구를 위해서 선행 자료를 조사하고 논문을 검색해 인용하고 이론적 배경을 알아보데 읽기와 쓰기는 중요하다. 탐구 설계와 수행 과정에서는 창의적 사고, 비판적 사고 등 고차적 사고가 특히 더 중요하다. 탐구 결과를 정리해 해석하고 의미있는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은 여러번 읽고 쓰며 고도의 추론을 해야한다. 그러면서 다른 관점에서 보며 다시 사고하는 창의적 사고도 한다. 실험(탐구) 보고서는 으레 규격화된 양식에 맞춰 개조식으로 정리하고 검증된 객관적 사실로만 기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탐구는 주장의 근거에 기반해 정당화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에 더해 자신의 주관적 배경과 질문, 가치 판단도 포함된 엄밀한 주관적 글이기도 하다.
수학에는 풀이 답안 이상의 글이 있으며, 과학에는 실험 보고서 이상의 글이 있다.
학교에서 우수하다 판단되는 과학 탐구 보고서는 사실적 기록이나 객관적 검증에만 치우쳐 딱딱하고 엄숙하다 못해 생동감도 없고 서사도 빠졌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우리 과학 교육의 단면을 보여주는 거다. 난 학생들의 탐구 보고서가 한 편의 글이자 책이 되어야 한다 생각한다. 학생들의 순수한 호기심과 열정, 실패, 극복하는 성장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글로 표현되었으면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 하는 것이 탐구 동기를 찾는 거라 한다. 자기가 진짜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기 어려워 한다는 뜻이다. 학생들은 자기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생각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또 질문이 생겨도 선생님께 이 질문이 인정 받을 수 있을지, 이 질문이 좋은 질문일지 걱정한다. 수학과 과학 교과에서 하는 질문은 거의 정답이 있다 생각한다. 그래서 보통 정답에 가까운 질문을 찾고 싶어 한다. 이런 환경에서 사실 탐구라는 것이 가능할까? 결국 탐구가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 밖에 없다.
무언가를 쓰면서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닫는다.
자기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아야 자기가 무엇을 알고 싶은지 알 수 있다. 읽고 쓰는 과정은 '아는 것'과 '알고 싶은 것'을 명확하게 다듬어가는 과정이다. 학생들의 글쓰기는 곧 내 글쓰기가 된다. 방향과 목표는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내가 하는 일은 분명해지고 있다. 그래 쓰자. 기꺼이 경계인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