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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호연 Oct 12. 2021

마라탕 국물까지 먹을 놈

마라탕의 홍어애탕의 상관관계를 알아보자. 

마라탕과 튀긴 꽃빵


찬 바람에 으슬으슬 몸이 떨리는 날에는 화끈한 마라탕이 제격이다. 매콤하고 얼얼한 국물에 원하는 재료를 양껏 넣어 먹는 마라탕은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익힌 채소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 좋다. 훠궈나 샤부샤부의 간소한 버전이랄까. 월등하게 자극적인 음식인데 별로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맛있으면 0칼로리'라는 유행어에 한 마디 얹어서 '맛있으면 보약'이라고 어설프게 나를 속여본다. 


배달 어플로 동네 맛집에 기본 마라탕 2인분을 주문했다. 음식의 매운맛을 '순함-보통-매움-아주 매움'의 4단계로 나눈다면 한식을 주문할 때는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2단계인 보통맛을 고르는 한편, 마라탕은 자신 있게 가장 매운맛을 주문한다. 고춧가루나 캡사이신을 넣어 혀에 직접적인 통증을 가하는 매운맛과 달리, 마라탕 같은 사천음식은 뜨거운 기름에 고추와 마자오, 화자오를 볶아 간접적인 매운맛을 뽑아낸다. 비슷하게 매워도 오래가지 않고, 먹는 동안 기분 좋게 날아가는 정도의 화한 기운이 좋다. 몸은 적절하게 열이 올라 땀을 내고, 입안의 뜨거움이 영영 가시지 않을 듯이 얼얼한 맛에 중독된다. 마라탕이 있으면, 마주 보는 이와 말을 아낀 채 바쁘게 젓가락을 움직인다. 


다양한 버섯과 채소, 부들부들하게 익은 푸주, 양념을 빨아들인 쫀득한 당면을 번갈아 흡입하다 보면 국물도 심심찮게 떠먹게 된다. 나는 마라탕의 국물을 삼킬 때마다 어릴 때 엄마가 끓여준 홍어애탕을 떠올린다. 홍어애탕은 삭힌 홍어의 뼈와 내장을 넣고 끓인 탕인데, 국물을 삼킬 때는 코끝이 찡하게 아프고 연기를 들이마시는 것처럼 기도가 화하다. 홍어애탕의 국물을 삼킬 때는 사레가 들리지 않도록 기도를 요령 있게 잠가야 하는데, 그 느낌이 바로 마라탕 국물과 비슷하다. 아마도 마라탕에 생선을 넣어 끓인다면 홍어애탕과 느낌이 비슷하지 않을까. 뭐, 어느 쪽이든 어린이가 먹기에는 난이도가 상당한 음식이다. 하지만 나는 "어린애가 이런 것도 잘 먹네!"라는 어른들의 칭찬을 듣기 위해 주어진 한 그릇을 묵묵히 먹었고, 금세 적응했고,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니 마라탕을 사랑하게 된 것은 필연과도 같다. 


마라탕 국물을 무방비로 마시다가는 거하게 사레가 들리기 일쑤인데, 이런 위험 요소가 의외로 먹는 재미다. 혀보다는 코를 찌르고, 입안을 얼얼하게 마비시키는 화한 맛. 국밥처럼 훌훌 마시지 못하고, 아슬아슬 긴장하며 틈틈이 떠먹는 그 맛. 본래 마라탕이나 훠궈의 매운 국물은 재료를 담가 익혀 먹기 위한 것이라, 중국인들은 건더기만 먹고 국물을 먹지 않는단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육수와 사골의 민족이 아닌가. 무엇이든 한 번 끓이고 나면 우러난 국물까지 완전히 비워야만 낭비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럴 때만 '우리' 타령이다) 


마라탕을 배달시켜 먹으면, 남은 국물을 버리지 않고 재탕한다. 이름하여 '재탕 마라탕'이다. 


재탕 마라탕


배달 온 첫날에는 덜어먹는 국자와 집게로 건더기를 알뜰하게 먹고, 남은 국물은 보관용기에 담아 식혀서 냉장고에 넣는다. 이것으로 다음 날 점심은 '재탕 마라탕'을 끓여 먹는다. 재탕 마라탕은 고추기름을 내서 대파와 채소, 버섯 등을 넉넉하게 볶은 다음 마라탕 국물을 부어 끓인 것이다. 숙주가 있으면 마지막에 넣어 살짝 익힌다. 그릇에 담아 고수를 얹으면 어제보다 심심하고 부드러운 맛의 재탕 마라탕이 된다. 볶은 채소의 향과 수분이 어우러져 자극은 줄고 한결 담백하다. 엄밀히는 마라탕이 아니라 '마라 맛' 탕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한때 중국에서는  '마라탕 국물까지 먹을 놈'이라는 말이 가난함을 빗대는 욕으로 쓰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물을 남겼다가 '재탕'을 해 먹거나 수제비를 넣어서 '마라 수제비' 같은 것을 해 먹는 나에게 그것은 결코 욕이 되지 못한다. 백 퍼센트 사실이니까. 어찌 보면 알뜰하고 어찌 보면 궁상맞은 이런 식의 끼니 때우기를, 나는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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