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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호연 Oct 21. 2021

따뜻한 녹차와 김밥 두 줄

김밥을 싼 사람의 손아귀 힘이, 내 먹이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하다.

이사 온 집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은 포장만 되는 김밥집이다. 층층이 쌓인 집합주택으로 가득한 동네에서 유일하게 단층인 건물, 길 모퉁이에 자리한 김밥집은 절반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카페나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어쩌다 그곳은 김밥집이 되었을까? 혹시 이 김밥집이 있는 주변에 집들이 지어진 것일까? 


호기심을 가지고 탐색만 하다 마침내 들어가 보았다. 테이블은 없고, 포장을 기다리는 동안 앉아있을 만한 의자 네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점심때를 한참 지난 오후, 손님은 나뿐이었다. 


참치김밥과 멸치고추김밥을 한 줄씩 주문했다. 돈을 빠르게 건넬 수 있도록 지갑에서 꺼내 주머니에 미리 넣어 두었다. 텔레비전 소음을 들으며, 등받이가 없는 동그란 의자에 앉아 사장님이 김밥을 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김에 밥을 깔고 재료를 하나씩 얹는 손놀림이 익숙하고 느긋하다. 누가 기다리든 말든 나는 이 순간, 이 김밥에 집중하겠다는 숙련된 기술자의 여유가 느껴진다. 정작 나는 내가 요리할 때 누가 쳐다보는 걸 싫어하면서도, 기회만 되면 이렇게 김밥 싸는 과정을 구경한다. 그러고 나면 나중에 김밥을 입 안에 넣고 씹을 때에도 '꽉꽉' 눌러 담은 사람의 손맛이 느껴진다. 김밥을 싼 사람의 손아귀 힘이, 내 먹이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하다. 


김밥은 체하기 쉬운 음식이니 따뜻한 차를 곁들여 먹는다. 샹달프(st.Dalfour)는 한국에서 과일잼으로 유명한 브랜드이지만 티백 녹차(오리지널 그린티)도 맛있다. 향이 한국 녹차와는 달라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자극적인 맛의 분식과 중식 메뉴에 잘 어울린다. 보통 식사할 때는 입안에서 맛이 섞이는 게 싫어 음료를 마시지 않는데, 김밥은 예외다. 김밥을 씹으며 뜨거운 녹차를 한 입 머금으면, 모든 재료들이 부드럽게 풀어지는 느낌. 뜨거운 차와 함께라면 식은 김밥도 따뜻하게 먹을 수 있어 좋다. 


참치김밥은 생각했던 그 맛. 멸치 고추김밥은 맛있는데 멸치가 많아서 짜다. 김밥보다는 밑반찬으로 먹고 싶은데 따로 팔아주시면 좋겠다. 결국 멸치고추김밥은 반으로 갈라 배추에 싸 먹었다. 이제 간이 딱 맞네. 오늘 나의 먹이에 또 다른 메뉴가 등장했다. '김밥쌈'이라고. 쌈채소만 있으면 뭐든지 싸 먹어 버리는 K력을 십분 발휘한 결과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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