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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호연 May 22. 2023

스팸 전화에 안도하는 사람

미안하지만 다행입니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린다. 반복적으로 울리는 것을 보니 전화가 분명하다. 영화 ‘주토피아’의 나무늘보 공무원처럼 느려터진 동작으로(하지만 내게는 최선인 속도로) 화면을 내려다본다. 전화번호가 070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무래도 스팸전화 같다. 받을지 말지 고민하는 사이 전화가 끊긴다. 이런, 인내심이 없으시군요. 하지만 현명한 판단입니다. 저는 당신이 권하는 무엇도 받아들일 의사가 없거든요. 굳었던 안면근육이 부드러워진다. 거듭 전화가 울리지 않는 데에 안심하고 다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는다. 머지않아 같은 번호로 전화가 울린다면, 나는 둔해서 진동을 잘 못 느끼는 사람이 될 예정이다. 


전화 공포증이 심한 나는 연락처에 등록된 번호가 아니면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는다. 지역번호로 시작하는, 어쩌면 나에게 특별한 용건이 있을지 모르는 전화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타인의 반응에 전전긍긍하면서 부재중전화가 남아 있을 때만은 믿을 수 없이 쿨한 사람이 된다. ‘중요한 용건이면 메시지를 남기겠지. 그렇지 않으면 중요한 용건이 아니겠지.’ 물론, 공기관은 문자메시지를 따로 남기지 않으므로 중요한 용건임이라도 계속 놓칠 수 있다. 그래서 부재중으로 남은 전화번호를 인터넷으로 모두 검색한 다음, 스팸이 아닌 공기관으로 밝혀진 번호는 부서명과 함께 연락처에 등록해 둔다. 이후에는 전화받는 속도가 조금은 빨라져 놓칠 확률이 줄었다. 


한때는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요청하고 설득하는 일이 내 직분이었다. 전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가히 한 몸이라 할 수 있는 것이 곧 방송작가의 삶이다. 덕분에 단련이 된 것일까. 지금도 전화를 거는 쪽은 부담이 덜하다. 최대한 미룰 뿐 공포감이 들지는 않는다. 전화를 거는 입장에서는 통화 상대가 누구인지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나의 공포는 ‘미지의 번호’에서 시작된다. 모르는 번호, 모르는 상대의 전화가 걸려오면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다. 아주 오래전, 구애라는 이름의 스토킹에 시달린 적이 있고 그 경험은 나를 움츠러든 사람으로 만들었다. 정류장으로 가는 지름길을 두고 멀리 돌아가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길 건너편에서 비슷한 사람을 보면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세월이 흐르며 공간에 대한 두려움은 자연스럽게 치유되었지만 여전히 연결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일부러 연락처에서 지우지 않고 번호를 차단해 놓았으나 모르는 번호로 그 누군가의 전화를 받는다면 힘겹게 일구어 놓은 일상이 순식간에 무너질까 두렵다. 평상심을 깨뜨릴 수 있는 일말의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 나는 아주 방어적인 태도로 전화 상대를 고른다. 걸려온 전화가 차라리 스팸전화인 게 다행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스팸전화의 목적은 뚜렷하다. 나를 설득해 보험이나 유료서비스를 이용하게 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새 기종의 아이폰을 특별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앞으로도 같은 전화를 종종 받게 되겠지만, 나는 그런 권유가 싫지 않다. 그는 상담원으로서 주어진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간혹 이 투철한 직업인들의 능란한 호소를 마주하면, 달콤한(그러나 결과는 쓸 게 분명한) 권유에 어물쩡 넘어가고 싶은 기분에 휩싸이기도 한다. 다만 한 푼의 돈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나의 철벽 같은 쪼잔함이 상담원의 유창한 말솜씨를 이겨낼 뿐이다. 거절해야 할 때 나는 친절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들이 무시할 수 없는 답을 내놓는다. 


“제가 돈이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나는 생판 모르는 남에게 이 말을 하는 데 전혀 부끄러움이 없다. 여기서 조금 방어적으로 말한다면 “고정비를 더 늘릴 마음이 없습니다.”라고 하겠지만 이런 말은 아무래도 와닿지가 않는다. 상담원은 매일 불특정 다수에게 수백 통의 전화를 걸 수 있을 만큼 용감한 직업인이다. 그러므로 그의 가슴을 울리는 직관적인 말로 대응해야 한다. 


“정말로 돈이 없습니다.”


수긍한 상담원은 설득하기를 멈추고 빠르게 전화를 끊는다. 좋은 하루 되시라는 다정한 인사도 간혹 덧붙인다. 세상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가장 다정한 직업인은 아마 상담원일 것이다. 직업적으로 그래야 하는 입장이기에 당연히 그러하다는 것을 안다. 


한때 휴대폰 보험사의 전화상담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 대부분 걸려온 전화를 받는 쪽이었다. 고객의 정보를 확인하고, 휴대폰을 파손했거나 분실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이었는데 좋은 일로 거는 전화가 아닌 탓에 흥분하거나 화가 난 고객이 많았다. 가시 돋친 고객의 마음을 공감어와 쿠션어로 달래 가며 필요한 서류를 받아내는 일은 피로하면서도 은근히 성취감이 있었다. 상대방의 방어심리를 해제시켜 안되던 일이 되게 만드는 순간의 짜릿함은 자기 통제감으로도 이어졌다. 실질적으로는 권한이나 권력이 전혀 없음에도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이 드는 것이다. 이미 그만두었기에 하는 생각이지만 전화를 두려워하는 내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상담원에게 전화를 거는 사람은 오직 고객뿐이다. 내 지인일 수도, 가족일 수도 없다. 과도한 요구로 나를 괴롭게 할 수는 있으나, 대부분 고객의 용건은 내가 아닌 회사에 있다. 상담원은 책임을 지는 주체가 아니다. 그저 고객과 회사를 연결하는 가교일 뿐이다. 때로는 스스로를 자동응답기라고 생각하고는 했다. 나와 상담원 자아를 분리함으로써 전화기 너머의 그릇된 요구나 험악한 말들을 버텨내는 것이다. 그런 전화도 내 휴대폰으로 걸려오는 전화보다는 두렵지 않았다. 또 한편으로, 상대방의 입장에 공감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도록 독려하는 일은 내가 잘하는 일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사람은 조금이라도 잘하는 일을 할 때 여유로워지는 법이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상담원들과의 통화는 어쩐지 옛 동료와의 대화처럼 수월하게 느껴진다. 내가 질문해도 괜찮은 사람, 공통의 목적(보험 가입, 물건의 구입이나 환불 등)을 이루는 것이 직분인 사람과의 대화는 버겁지 않다. 서로 바라는 결과가 다르더라도 괜찮다. 그는 사무적으로 다정할 테고, 나는 품위를 잃지 않으려 그에게 친절할 것이므로.  


오늘은 몇 통의 스팸 전화가 올까? 하루가 지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우연히 전화를 받게 된다면 나는 싫지 않은 기분으로 ‘돈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상담원은 스팸 전화를 싫어하지 않는 사람과 짧은 통화를 하며, 다음 고객에게 전화를 걸 용기를 내게 되리라. 


그동안 수없이 많은 전화를 ‘못’ 받으면서 누군가에게는 약간의 신뢰를 잃었겠지만, 통화목록에 스팸 전화가 많을수록 안도하는 마음을 누군가는 이해하리라 믿는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말아 주길. 당신이 건 전화를 일부러 안 받는 것이 아니다. 당신인 줄 몰랐거나 받을 상황이 안되었거나 동작이 느려서 놓쳐버린 것이 분명하다. 다만, 당신이 내게 약간의 친절을 베풀 마음이 있다면 전화를 걸기 전에 문자 메시지를 꼭 남겨주기를 바란다. 연락처에 당신의 이름을 등록하고 안전한 영역 안으로 당신을 들이는 과정을 허락하기를. 스팸 전화가 아닌 전화에 도리어 겁을 먹는, 지극히 소심한 자의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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