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세종류의 골목길(?)

자연의 골목길, 작은단위 골목길, 계획된 부동산의 길

by 홍진

서울이라는 도시를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행위를 넘어, 시대의 단층을 밟고 그 위에 축적된 삶의 흔적을 감각하는 경험이다. 그 도시적 경험은 물리적 구조만이 아니라, 공간이 내어주는 감정과 분위기, 그리고 보행자와 장소가 맺는 친밀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서울의 주거지 중에서도 특히 강남의 계획된 아파트 단지, 북촌과 서촌의 자연발생적 골목길, 그리고 마포와 서대문의 격자형 생활가로는 각기 다른 보행의 리듬과 감각을 제공한다. 나는 그 차이를 천천히 걸으며 느꼈고, 그 인상은 지금도 내 몸 어딘가에 촘촘히 스며 있다.


흥미롭게 서울의 골목길들은 다양하다. 다만 정부정책에서, 정치권의 언젠다에서, 이제는 자산증식의 목적으로 골목길들이 소멸되고 있다. 물론 어느누구도 자산증식이나 선거전략등으로 이야기 하진 핞는다. 모두의 묵인 속에서 빠르게 재개발로 인해서 사라지는 골목길들로 우리나라 도시들을 점점 공장 생산품처럼 단순화 시키고 있다. 이런 현상들이 가장 잘 드러나있는 몇 곳의 지역을 샘플로 이야기 해보자.


그런 여러가지 상황송게서 가장 무미건조한 재미없는 길을 만들지만, 사람들이 가장 환호하는 아파트단지의 길을 이야기 할 수 있다. 개포동과 대치동. 이곳은 서울에서도 가장 전형적인 아파트 단지 도시로, 1980년대 후반부터 계획적으로 조성되었다. 넓은 진입도로와 일렬로 정돈된 아파트 군락들, 깔끔하게 정비된 녹지대와 단지 내 보행로, 그리고 안전한 차단시설은 보행자에게 구조적으로 명확하고 쾌적한 길을 제공한다. 단지는 마치 작은 도시처럼 기능하고, 외부로부터 닫혀 있는 안정감을 준다. 그러나 바로 그 ‘안정’이 일종의 심리적 단절로 이어진다. 단지 내부는 조용하고 단정하지만, 길은 목적지를 향한 통로일 뿐, 우연한 만남이나 발견을 자극하지 않는다. 울타리로 둘러싸인 단지들은 외부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상가와 거주지가 분리되어 일상의 활동이 기능별로 구획된다. 이는 보행자가 도시를 경험하는 방식을 단조롭게 만든다. 평탄하고 안전하지만, 재미없고 예측 가능한 길. 보행자가 길에 상상력을 개입시킬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 구조다.


반면 서울의 원도심격인 명륜동과 옥인동의 골목길은 그 자체로 이야기다. 이곳은 한양도성의 역사적 경계 안쪽, 오랜 시간 축적된 도시 구조 위에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얹어 만든 곳이다. 골목은 계획 없이 자라났고, 길의 폭은 일정치 않으며, 이따금 돌계단이 나오기도 하고 갑자기 담장이 굽이치기도 한다. 보행자는 이 복잡하고 불규칙한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반응하며 걷게 된다. 담장의 곡선, 우연히 열린 대문 사이로 보이는 마당, 고양이 한 마리가 느긋하게 차지하고 있는 햇살 가득한 턱은 걷는 이를 멈춰 세우고 사소한 관찰을 유도한다. 특히 옥인동의 경우는 북악산 자락의 경사지를 따라 골목이 이어져 있어, 수직적인 감각까지 동반된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은 물리적인 보행 피로를 동반하지만, 그만큼 풍경은 다채롭다. 한 발짝만 이동해도 시선이 머무는 지점이 달라지고, 시야에 포착되는 장면이 바뀐다. 골목은 보행자에게 항상 새로움을 제공하고, 예상치 못한 만남—사람이든 풍경이든—을 가능하게 한다. 이곳의 길은 단지 이동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체류와 발견의 장소가 된다. 이런 골목길의 특성은 대체로 오래된 도시에서 나타나고, 유럽이나 오랜 문명을 가진 도시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도시공간의 유형이다.


아파트단지가 획일적이고 무미건조한 골목길의 동네로 한끝단에 있다면 자연발생적이고 우연처럼 이어지는 흥미진진한 골목길을 가진 전통골목길의 공간이 다른 한 축이다. 그 사이에 작은 필지로 구성된 계획된 골목길의 공간이 등장한다. 바로 서교동과 연희동은 또 다른 유형이다. 근대 도시계획에 따라 격자형 블록으로 구성된 이 지역은, 자연발생적 골목과 계획된 도시 사이 어디쯤에 있다. 서교동은 홍대 문화의 영향을 받아 젊고 창의적인 가게들이 골목 곳곳에 자리잡고 있고, 연희동은 한층 더 조용하고 주거지 중심적인 분위기를 띤다. 이 지역의 보행경험은 골목길이지만 일정한 구조감이 있어, 복잡하지 않되 지루하지 않다. 폭 4~6미터 남짓의 이면도로는 차량 통행이 가능하지만 속도가 느려, 보행자 중심의 감각이 유지된다. 도로변에는 작은 카페, 편집숍, 책방 등이 비정형적으로 배치되어 있어,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일상적인 소비가 가능하다. 특히 서교동 일대는 거리 자체가 무대처럼 구성되어 있어, 걸을 때마다 새로운 ‘쇼윈도’를 관람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한편 연희동은 단독주택 중심의 저층 주거지로, 담장 너머로 보이는 정원, 오래된 집의 파사드, 계절마다 바뀌는 가로수의 변화 등이 산책자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 정방형 블록 속에서 보행자는 자신의 리듬대로 걷기 좋고, 예측 가능하면서도 작지만 다양한 장면을 마주한다. 강남 가로수길은 이들 지역의 재현격인데 규모가 사실 훨씬 작다.


아무튼 이 세 유형의 공간—계획된 아파트 단지, 자생적 골목길, 격자형 생활가로—는 모두 저마다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개포동과 대치동의 아파트 단지는 보행자의 안정성과 효율성 면에서 매우 탁월하다. 넓은 보행로, 정비된 녹지, 어린이와 노인을 위한 안전 장치는 모범적인 도시 설계의 결과다. 그러나 지나치게 기능화된 공간은 감각을 둔화시키고, 사람과 사람의 우연한 접촉 가능성을 차단한다. 마주치는 이들은 대부분 같은 단지 주민이며, 외부인을 위한 환대는 제한적이다. 이런 구조는 거주자의 사생활 보호에는 유리하지만, 도시적 개방성과 교류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반대로 명륜동과 옥인동의 골목길은 불편함이 미덕이 된다. 길은 계획되지 않았기에 예측할 수 없고, 그 불규칙성이 오히려 걷는 행위를 생생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불규칙함은 고령자나 장애인에게는 장벽이 되기도 하며, 보행의 안전성 면에서는 취약한 요소가 많다. 차와 사람이 섞여 다니는 좁은 골목, 경사가 급한 언덕길, 야간 조명이 부족한 이면도로는 때때로 위험을 동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곳에서의 보행은 감각적이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고, 거주자의 삶이 길과 맞닿아 있어 보행자는 도시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서교동과 연희동은 두 세계의 접점을 제시한다. 계획된 질서 위에 삶의 우연성이 얹혀진 구조. 이곳에서는 도시의 리듬이 보행자에게 강요되지 않고, 걷는 이의 호흡에 따라 공간이 응답한다. 도시계획적으로는 정형적이지만, 그 위에 쌓인 삶의 층위가 다채로워 길이 살아 있다. 이 지역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새로운 변수 속에서도 여전히 보행자에게는 유연한 환경이다. 카페가 바뀌고 상점이 사라져도, 그 자리에 또 다른 무언가가 스며든다. 거리의 얼굴은 달라지지만 골목의 뼈대는 유지된다.


결국 걷는다는 행위는 도시와 관계 맺는 방식이며, 도시가 어떻게 짜여 있느냐는 보행자의 경험을 크게 좌우한다. 넓은 도로와 단지 중심의 강남은 효율과 안전을 담보하지만 감각의 여백이 적고, 옥인동과 명륜동은 감정의 진폭이 크지만 편의성과 접근성 면에서는 도전을 요한다. 서교동과 연희동은 그 중간 지점에서 계획과 우연, 규칙과 변칙의 절묘한 균형을 제시한다.


나는 세 공간을 모두 좋아한다. 개포동은 부드러운 빛 속에 정돈된 일상을 보여주고, 저녁의 명륜동은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 하나가 얼마나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연희동의 골목은 점심 무렵 커피 향기와 함께 걷는 이를 반긴다. 걷는다는 것은 결국 그 도시의 민낯을 보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길 위에서 도시를 만나고, 자기 자신과 다시 만난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어떤 도시의 골목을 걷고 싶다고 느낀다면, 그 이유는 결국 그 길이 나를 향해 열려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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