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소비되는 한국 건축

시장경제 속 건축의 운명 — 한국 건축의 구조적 종속성과 철학의 빈자리

by 홍진



1. 건축은 누구의 것인가?


건축은 오랫동안 인간 삶의 무대를 형성해 온 종합예술이자 사회적 실천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건축은 점점 예술이나 공공의 개념에서 멀어지고, 상품과 투자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전환이 더욱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토지의 고부가가치화,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증식 구조, 정부의 개발 중심 정책은 건축을 기능성과 수익성을 중심으로 조직된 산업으로 만들었고, 그 안에서 건축가는 점점 더 발주자의 요구에 순응하는 기술자 또는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건축가는 과연 자유로운 창작자일 수 있는가? 건축의 공공적 가능성은 어디에 머무르고 있으며, 도시와 사회를 사유하는 실천으로서의 건축은 가능한가? 이 물음에 대해 우리는 냉정하게 한국의 현실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2. 건축가의 경제적 예속


한국에서 건축은 태생적으로 ‘의뢰받은 결과물’이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발주자는 개발수익의 극대화, 홍보 효과, 비용 절감 등을 우선 과제로 설정하며, 건축가는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설계 전략을 제안해야 한다. 이 과정은 거의 대부분 시장논리라는 절대 기준에 의해 통제되며, 건축가의 자유의지는 극도로 제한된다.


문제는 이 구조가 특정 유형의 건축에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개인이 발주하는 다세대나 근린생활 시설의 사선형 또는 계단형 매스구성의 소규모 프로젝트에서부터 대규모 아파트 단지, 공공기관의 청사에 이르기까지 건축가는 제도와 시장의 틀 안에서 정해진 조합만을 다룰 수 있을 뿐이다. ‘창의성’은 심미적 장식으로 기능할 뿐, 도시나 사회에 대한 비판적 대안은 요청받지도, 기대받지도 않는다.


대형건축사사무소는 이러한 시스템에 완벽히 적응한 채 효율과 생산성, 마케팅 효과를 기준으로 한 설계를 상품화한다. 반면 작가주의 건축가들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자율성을 확보한 듯 보이지만, 이 역시 허상일 경우가 많다. 그들의 실험적 디자인은 사실상 형태의 충격이나 독창성으로 브랜딩 가치를 높이려는 발주자들의 전략에 대힌 대응일 뿐, 철학적 문제의식이나 공동체적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접근 요구는 아니다.


3. 도시계획이라는 ‘보이지 않는 속박’


건축의 자유의지를 제한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구조는 바로 도시계획이다. 한국의 도시계획은 여전히 용적률, 일조권, 주차장 기준, 도로조건 등 ‘기능적 수치’ 중심의 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건축가는 설계를 시작하기 전부터 제한된 틀 안에서 퍼즐을 맞춰야 한다. 도시 공간은 기능과 효율로만 조직되고, 공공성과 맥락은 후순위로 밀려난다.


이러한 도시계획 시스템은 자본의 생산성 극대화를 위해 공간을 분절하고, 건축의 상상력을 제도적 수치 안에 가두어 버린다. 심지어 공공건축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심사제도, 낙찰방식, 예산 운용 방식은 모두 건축가의 철학보다는 예산 절감과 관리 편의성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으며, 이로 인해 공공의 공간이 ‘표준화된 건축’으로 채워지고 있다.


4. 형태의 자율성과 그 공허한 소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건축가들은 형태적 실험과 시각적 자극을 통해 자율성을 확보하려 한다. 독특한 파사드, 비틀린 매스, 낯선 재료와 색채의 조합 등은 매체의 주목을 받기 좋은 소재이며, 브랜드와 소비자의 인식을 자극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이른바 ‘시그니처 디자인’은 고유성과 차별성을 상징하지만, 그 이면에는 종종 철학의 부재, 기능의 왜곡, 지속성에 대한 고려 부족이 숨어 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도시 곳곳에서 쉽게 목격된다. 건물은 저마다 자신의 개성을 강하게 주장하지만, 그 안에 담긴 도시적 맥락, 이용자 경험, 시간이 지나면서 건물이 감당해야 할 의미와 기능에 대한 고민은 부재하다. 건축은 도발적 형식을 통해 순간의 주목을 얻는 데는 성공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소유자가 바뀌면 그 형식은 무의미하거나 심지어 불편한 구조로 전락한다.


건축은 원래 ‘시간 속에서 기능하는 구조물’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건축은 ‘당장의 상품성’을 위한 형식에 머물러 있으며, 기획 단계의 흥미와 소비자의 선택만을 만족시키는 일회적 결과물이 되고 있다. 더구나 그런 형태론에 건축계도 열광한다.


5. 공공성의 실종과 철학의 무존재


한국 건축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는 공공성과 철학의 실종이다. 시장에 종속된 건축은 그 자체로 발주자와 사용자 간의 거래 관계로 전환되며, 공공의 문제를 사유하는 공간 구조는 배제된다. 도시는 점점 더 사유화되고, 건축은 점점 더 폐쇄적이 된다. 이러한 경향은 재개발, 재건축, 뉴타운, 기업형 도시 개발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사람보다 건축은 공동체를 매개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자산의 외피로만 기능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축가의 철학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몇몇 건축가들이 끈질기게 사회적 의제를 제기하고, 실험적 공간을 통해 대안을 제시하려 하지만, 이는 제도와 시장 구조 안에서 지속가능한 시스템으로 작동하지 못한다. 결국 이들의 시도는 독립적인 예외로 남거나, 제한된 사례로 소비될 뿐이다.


한국 건축계 전반이 이 구조를 자각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이에 저항하거나 대안을 모색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교육, 정책, 제도, 산업이 모두 ‘효율적이고 경쟁력 있는 건축’이라는 이름 아래 철학 없는 기술과 형식의 반복만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6. 무엇을 할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확보해야 할까? 첫째, 건축가 스스로의 역할과 사명을 재정의해야 한다. 건축가는 단지 형태를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조건과 사회의 구조를 공간적으로 재구성하는 실천가이다. 시장과 제도의 조건을 인식하되, 그 안에서 비판적 대안을 탐색하는 태도, 그것이 진정한 창의성이다.


둘째, 제도와 정책의 개혁이 필요하다. 도시계획의 경직된 제도적 지배를 해제해야 한다. 건축가의 자율적 해석과 실험을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공공건축은 예산 통제와 관리자 중심의 발주 방식에서 벗어나, 장기적 가치와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한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셋째, 건축교육과 비평문화의 회복이 필수적이다. 지금의 건축학 교육은 건축을 둘러싼 사회, 철학, 정치, 생태의 문제를 통합적으로 사유가 부족하다. 건축을 단순한 ‘디자인’이 아닌 ‘사회적 제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문화적 토대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건축은 시대를 묻고, 사람을 묻고, 장소를 묻는 행위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건축은 그 질문을 잃었다. 시장이 허용한 틀 안에서 허락받은 자율성을 행사하며, 형식의 다양성으로 본질을 가린다. 건축은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단지 요구에 응답하는 데 그친다.


“건축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건축가란 누구여야 하는가?”

“우리의 도시는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지 않는 한, 한국 건축은 계속해서 반복되는 상품의 껍데기로만 존재할 것이다. 철학 없는 창의성, 맥락 없는 형태, 지속성 없는 기능 속에서, 건축은 결국 사회로부터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건축가 자신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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