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행장, 그 너머 어딘가로 가자.

첫번째

by facile

나는 스물넷이었다.

대학을 무작정 졸업하고 나니, 유년기 시절을 제외하고 생애 처음으로 '무소속'이 되었다.

나에게만 선택적 무중력이 작용하여 난데없이 실가닥 하나 붙잡지 못한 채로 공중에 떠버린 느낌이었다.


대학 동기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고시 준비를 시작했고, 난 그제야 앞날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 있는 약 800개의 대표 직업 리스트를 탐독하며 이 중에 나의 천직이 30개쯤은 있지 않을까 기대에 부풀었지만 '자격증이 없어서', '경험이 없어서', '흥미가 없어서', '자신이 없어서' 등등 없는 요소만 찾아가며 나에게 남겨지는 건 줄만 죽죽 그어진 종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한 가지 경험해보고 싶은 직업명을 드디어 추려냈는데, 그건 '항공사 지상직'이었다.

그 사실이 마치 나의 앞날을 보장이라도 해주는 것 마냥 난 너무 설레고 들떴다. 그 달에 당장 구직자를 위한 '내일 배움 카드'를 발급받아 지상직 훈련 과정들을 수강했는데, 발권에 사용되는 두가지 소프트웨어 사용법을 배우고 자격증을 수료했다. 대형 항공사 출신 강사분들께 매주 모의면접도 진행하며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도 깨달았다. 숟가락, 신용카드 등 '미소짓는 법' 유튜브 영상을 뒤져가며 입꼬리를 괴롭힌 탓에 염증이 나기도 했다.


훈련 과정이 끝나갈 때쯤 해외 항공사의 인턴십 면접 기회가 주어져 생애 첫 취업 면접을 보게 되었고, 그 후 4개월동안 내가 그토록 꿈꾸던 공항에서의 삶을 맛보았다.


평일 주말할 것 없이 근무일이면 새벽 네시 반, 두 눈이 반은 감겨있는 채로 헤어스프레이를 열심히 뿌리며 전에 없던 열정을 발휘했다. 새벽 다섯시의 출근길 마을버스 안은 단 한번도 비어있지 않았고, 그 사실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서늘한 초새벽 공기를 가르며 공항 출국장에 내려 정장차림으로 공항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곳엔 언제나 사람들의 설렘이 가득했고, 그 기대감과 두근거림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인턴 생활 동안 주 업무가 될 것이라 생각했던 티켓팅 업무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기본적인 항공 용어를 자연스레 사용하고, 기내식을 들고 비행장을 뛰어다니고, 외국인 사무장이 떠넘긴 인터폰을 넘겨받아 난데없이 기내방송을 하는 등(약 1시간 지연에 대한 안내방송이었으므로 그 후폭풍은 무시무시했다.) 매 순간이 짜릿하고 뜻깊었다.


티켓 예약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한가지.


항공사들은 보통 10% 정도 비율로 오버부킹을 받는다(좌석 수보다 더 많은 티켓을 판매). 날짜를 착각하거나 그 외 불가피한 사유로 공항에 오지 않는 일명 '노쇼(NO SHOW)' 고객의 비중이 평균 10% 수준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코로나 시국 이전까진 그랬다.)

노쇼 고객의 평균 비중은 약 10%이지만, 정작 해당일에 몇명의 고객이 발권창구에 나타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만약 태울 수 있는 수보다 더 많은 고객이 공항에 나타난다면?

생각만해도 짜릿한 상황인데 항공사들은 이에 어떻게 대처할까?

내가 근무하던 외항사에서는 매일 탑승 1시간 전부터 티켓팅 발권수를 체크하며 '타겟'을 물색했다.

한국인들의 경우 출장 또는 단체여행인 경우가 대부분이어 비행스케줄 조정이 어려웠기 때문에 주로 티켓 발급 대기선에서 외국인들을 찾아가 다른 쪽 구석으로 정성스럽게 모셔온다. 그 후 호텔숙박권, 달러 등의 현찰을 제시하며 다음날로 비행스케줄을 조정해달라 간곡히 부탁한다. (타겟 선택은 선배 직원, 부탁은 내 몫이었다.) 태울 수 있는 수만큼의 고객이 남을 때까지 딜을 반복한다. 성공하면 그날의 위기는 무사히 넘기게 된다.

내가 근무하는 기간동안 다행히 이 전략이 실패한 적은 없지만, 해당 제안을 원치않는 고객들 또는 오버부킹 정책이 불만인 고객들에게서는 컴플레인이 잇따른다.

그럴 때 우리의 창과 방패는 그저 죄송하다는 말뿐이다.


매일매일이 새로운 도전이었던 인턴십이 끝나고 정규직으로의 전환 제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도 나는 인턴십에 지원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 일을 나의 업으로 삼고 싶다는 꿈틀대는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왕 늦게 시작한 고민인데 나 자신과 쉽게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공항에서 좀 더 벗어나 보기로 결심했다. 국경을 넘어 내 일을 찾으러 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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