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적응과 10년 주기 리셋: 해외에서 살아간다는 것
"산업디자인 경험이 많으시니까, 저를 도와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인턴 포지션이라면 가능할 것 같아요."
면접 자리에서 나보다 한참 어린 디자인 팀장이라는 사람이 내 이력서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 짧은 순간, 여러 감정이 밀려오며 내 안에서 무언가 조용히 꺼지는 기분이 들었다. 수년간 쌓아온 경험은 이 공간에서 아무런 가치도 인정받지 못했다. 나는 동료가 아닌 '보조자'로 취급받았고, 내 경력은 그저 '외부인'의 이력일 뿐이었다. 그의 '참신한 제안'에 입으로는 정중히 거절했지만, 눈빛으로는 온갖 욕설을 쏟아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미 마음속에는 어떤 결론이 내려져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펼칠 자리가 없다는 현실은 예상보다 훨씬 더 높은 벽이었다. 그제야 처음으로 '다른 길을 찾자'라는 생각이 내 의식 속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처음 독일에 도착했을 때는 그저 잠시 숨을 고르자는 생각이었다. 한국에서의 일로 지쳐 있었고, 조금만 쉬면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잠시'라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마음속에는 불안과 초조함이 커져갔다. 정확히는 '빠르게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볼 때마다, 내가 원래 하던 일조차 점점 더 멀게 느껴졌다.
산업디자인은 여전히 내게 가장 익숙한 분야였지만, 독일에서 그 길을 걷는 것은 예상보다 훨씬 험난했다. 채용공고 자체가 희박했고, 대부분은 유창한 독일어나 현지 학위를 요구했다. 그럼에도 얻은 몇 안 되는 면접 기회 중 하나가 바로 그날의 면접이었다. 기대를 안고 면접장에 들어섰지만, 놀랍게도 그 회사의 디자인 팀장은 지역 대학 교수가 추천한 '대학생'이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다시 한번 현지인 네트워크의 힘을 실감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나는 현실을 점점 더 명확히 깨달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참신한 제안'을 들었던 면접은 내게 일종의 전환점이 되었다. 처음에는 모욕적으로 느껴졌던 그 말이, 역설적으로 내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너무 하나의 길만 고집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순간부터 나는 산업디자인이라는 익숙한 테두리를 벗어나, 내 능력을 다른 분야에서 펼칠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거절과 좌절이 우리를 새로운 길로 인도하는 시작점이 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UX/UI 디자인은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그전부터 알고 있었던 분야였고, 완전히 생소한 세계는 아니었지만, 그동안은 뭔가 내 길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꾸만 그 단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채용 공고도 많았고, 무엇보다 외국인에게 상대적으로 더 열린 분야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나처럼 언어적 한계가 있거나, 전통적인 이력서만으로는 어필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도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완전히 새로운 열정이 생겼다기보다는, 어쩌면 지금의 상황에서 내가 가장 현실적으로 걸어갈 수 있는 길 같았다. 낯설지만 너무 먼 길은 아니었고, 내가 그동안 해왔던 디자인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완전히 버리는 게 아니라, 조금 다른 언어로 다시 표현해보는 일.
큰 결심은 사실 아주 사소한 순간에 찾아왔다. 늘 보던 채용 사이트에서 또 하나의 UX/UI 공고를 클릭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걸로 다시 시작해보면 어떨까.” 그렇게 나는 조금씩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UX/UI 디자인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 분야가 기존의 산업디자인과 다르다는 점을 명확하게 느꼈다. 물론 디자인의 기본적인 접근 방식은 비슷했지만, 디지털 환경에서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는 방식은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다. 산업디자인이 물리적 제품을 중심으로 사용자의 경험을 고려했다면, UX/UI 디자인은 그 경험을 가상 환경에서 어떻게 설계하고 전달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디자인이라는 큰 틀 안에서 사용자 중심 사고나 문제 해결 방식은 여전히 유효했지만, 디지털이라는 낯선 환경은 그 모든 접근을 새롭게 해석하게 만들었다. 지금껏 내가 고민해온 것은 손에 잡히는 형태, 물성, 사용자의 손에 닿는 느낌 같은 것이었지만, 이곳에서는 눈앞의 화면, 인터랙션, 플로우가 모든 경험의 중심이었고,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산업디자인에서 나는 사용자가 물건을 어떻게 느끼고 다루는지를 고민하며 형태와 기능을 조율해왔다. 반면 UX/UI 디자인은 물리적인 경계를 넘어서, 사용자와의 ‘경험’ 자체를 설계하는 일이었다. 버튼 하나, 스크롤의 타이밍, 페이지 전환의 자연스러움까지—모든 것이 곧 사용자 경험을 구성하는 퍼즐 조각이 되었고, 나는 그 조각들을 어떤 순서로, 어떤 방식으로 맞춰나가야 할지 차근차근 배워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쌓아온 디자인적 감각과 사용자에 대한 고민이 이 새로운 세계 안에서도 유의미하다는 것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낯설었던 디지털 디자인이라는 분야도 점차 내 안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예쁘게 만드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용자가 이 여정을 더 직관적으로, 더 편안하게 경험하게 할 수 있을지—그런 고민들이 익숙해질수록, 이 분야가 나와 어울린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는 제품이 아니라 경험을 디자인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새로운 전환에 더욱 설득력을 부여해주고 있었다.
"오늘도 불합격이네, 18...라면이나 먹어야지."
스크린에 떠 있는 거절 메일을 몇 초간 멍하니 바라보다가, 결국은 익숙한 루틴처럼 조용히 냄비를 꺼냈다. 스트레스엔 탄수화물이 필요하다는 말을 누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내겐 꽤나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또 라면이다. 생각해보면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처음 독일에서 UX/UI 디자이너로 전향을 결심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많은 거절을 받을 줄은 몰랐다. 산업디자인이라는 내 과거가 무용지물이란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철저히 새롭게 증명해야 하는 세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포트폴리오는 의미가 없었고, 오직 ‘이 분야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새롭게 보여줘야만 했다.
그래서 시작은 아주 소소했다. 무료 강의의 커리큘럼을 따라 하며 주어진 과제를 나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보는 연습부터 했다. 문제 정의부터 사용자 흐름, 인터페이스 설계까지—처음에는 그 모든 게 낯설었지만, 동시에 왠지 모를 끌림도 있었다. 조금씩, 아주 조심스럽게 내 관심 있는 문제를 정의하고, 그것을 실제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시도를 이어갔다.
하나둘 프로젝트가 쌓이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보여줄 게 조금은 생긴 것 같다’는 조심스러운 자신감이 생겼고, 그제야 비로소 나는 회사들에 이력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수십, 어쩌면 수백 개의 지원서를 보내고 매번 돌아오는 건 정중한 거절뿐이었다. 처음에는 좌절하고, 그다음엔 익숙해지고, 나중엔 그냥 ‘오늘도 라면이네’ 하고 웃프게 넘기게 되었다.
하지만 그 반복 속에서 분명히 얻은 것도 있었다. 매번 떨어질 때마다 ‘왜일까’를 고민했고, 그러다 보니 포트폴리오의 구성부터, 문제 접근 방식, 인터페이스 표현까지 하나하나 계속해서 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수정을 반복하며 나도 모르게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고, 어느 순간, 독일회사에서 마침내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오퍼가 도착했다. 물론 이 모든 과정 속에서도 운이 따라준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어느 순간 기회가 온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작은 '자의적'신뢰가 결국 운을 불러왔고, 그 오퍼는 정말 예상치 못한 때에 내게 찾아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매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문제를 마주했고, 예상치 못한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불안과 혼란이 컸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일에서 점점 재미를 느끼게 되었고, 그때의 경험들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수많은 거절과 외로웠던 시도들, 그리고 라면 냄비 앞에서 다잡았던 마음들이 결국 나를 이 자리까지 이끌었고, 비록 지금은 다른 방향을 향해 가고 있지만, 그 시간만큼은 분명 내 안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운도 따라줬고, 그 끝자락에서 나를 기다리던 기회를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