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배우자로 산다는 것
코로나가 극성이던 2021년, 이민을 결심하고 배우자 비자를 받기 위해 미국에서 법원 혼인신고를 먼저 했다. 직계 가족 배우자 비자가 2년이나 걸릴 줄 모르고 진행한 당돌한 선택이었다. 미국에 짧게 방문할 때 마다 '배우자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내 발목을 잡았고, 나는 매번 2차 심사대로 보내졌다. 주변 사람들의 '그 남자 정말 괜찮은 사람 맞냐', '대체 언제 미국 가냐', 는 부차적인 걱정은 덤.
이 글에서는 미국 결혼 비자를 위한 절차적인 방식보다는 내가 매 순간 느꼈던 답답함과 두려움, 그리고 마지막 대사관 인터뷰를 본 후 느낀 허탈감을 주로 다룰 것이다. 비자 절차는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고, 만약 네이버 블로그 등에서 찾은 방식이 본인과 다르다면 미국 이민 변호사와의 연락을 추천한다. 나도 셀프로 비자를 진행하기는 했지만,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 구비해야 하는 서류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미국에 이민 올 수 있는 비자의 종류는 매우 많다. 내가 도전해보지 않아 이 부분은 잘 모르지만, 이 것 하나만은 잘 알고 있다. 미국인과의 결혼이 미국 영주권을 받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사실. 하지만 제일 쉬운 과정이라는 결혼 비자도 나는 2년이 소요되었다.
CR과 IR의 차이는 전자 혼인신고일 2년 이전, 후자 혼인신고일 2년 이후이다. CR-1은 Conditional, 즉 조건부이기 때문에 2년짜리 영주권이고, 2년이 지나기 전에 '조건'을 풀어 영구영주권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나는 이 점을 이용하여 의도적으로 NVC에 서류를 두 번 누락하여 비자 인터뷰를 혼인신고일이 2년이 지난 이후로 잡았고, 그 결과 한 번에 10년짜리 영구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다.
I-130을 USCIS에 접수하고 나면 이제 Being 지옥이 시작된다. Being 지옥이란, Your case is being actively reviewed라는 USCIS에서 받는 메세지로, '이 놈들은 active의 뜻을 모르나' 싶을 정도로 보통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1년 반 동안 업데이트가 없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인 입장에서는 '무엇이 잘못되어 내 케이스가 지연되나'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질 수 있지만, 일반적인 절차이고 미국의 속도는 한국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니 그냥 마음 편히 기다리면 된다. 내 경우, 센터가 3번 이관되어 (네브라스카->텍사스->포토맥) 죄없는 USCIS 챗봇 엠마에게 불만을 토하기도 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당시 재택근무가 확대되어 내부 인원 이동으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보지만, 이것은 추측일 뿐이다.
1년에서 1년 반의 기다림이 끝나면 이제 내 케이스는 NVC, National Visa Center로 이관된다. 이 경우 SEO넘버가 나오면서 '이 놈들이 일은 하긴 하는구나'라는 안도와 함께, I-130에서 제출한 서류를 다시 새 걸로 발급받아 제출해야 하므로 USCIS의 효율성에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이 때, 초청인의 소득이 아주 중요하다. 나의 지갑을 가장 많이 털어간 부분은 '범죄기록회보서'였다. 내가 전과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만 16세 이후 다국에서 거주했기 때문이다. A국의 경우 홈페이지가 잘 되어 있어 인터넷으로 바로 신청할 수 있었지만 (돈은 제일 비쌌다) B국의 경우는 따로 범죄기록회보서를 신청할 수 있는 포털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대사관과의 끝없는 이메일로 서류를 받아 냈지만, B 대사관 측의 실수로 내 미들네임이 N/A(해당없음) 에서 NIA로 개명되어 돈도 두 배, 기다림의 시간도 두배를 견뎌야 했다.
대사관 인터뷰 날짜가 잡히면 방대한 양의 모든 서류를 프.린.트.해.서 가.져.가.야.한.다. 전자기기는 허용되지 않으며, 부피가 큰 전자기기의 경우 광화문 지하철역 물품보관함에 맡기라는 친절한 조언은 있지만, 광화문 물품보관함은 아이돌 티켓팅을 방불케 하는 빡센 대기로 인해 추천하지 않는다. 나는 취업준비시절 근무했던 소공동 카페에 전자기기를 잠깐 맡기고 대사관에 입장했다.
8시 30분 인터뷰였지만 7시 30분에 줄을 서기 시작했고, 대사관 직원들의 호통(?)을 들으며 긴 줄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1차로 한국인 직원들이 서류를 걸러주고, 그 후 지문을 찍는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리면 된다. 영어로 발음되는 자기 이름을 못알아듣는 경우 (내가 그랬다) 대사관 직원이 여권을 흔들기 때문에 내 여권이다 싶으면 주의깊게 살피면 된다. 영어가 어려운 경우 통역관을 불러 준다.
나에게는 별 특이하거나 어려운 질문은 없었지만, 세컨더리 룸에 자주 방문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 대사관 직원은 애매하게 '미국 이민국과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어봤고, 나는 세컨더리에 가긴 했지만 불법체류나 불법취업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 후 들려오는 반가운 말은- Your visa is now approved.
비자가 승인되고 너무 기쁠 줄만 알았다. 나의 새로운 인생 2막을 여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다 마치고 보니 '내가 이걸 받으려고 2년동안 마음졸였나'라는 허탈감이 나를 감쌌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마침내 비행기표를 사야하고, 엄마아빠랑 헤어져야 하고, 고양이도 데려가야 하고, 무엇보다 내 인생의 가장 많은 부분을 함께 했던 서울을 떠난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했던 것 같다. 이 남자를 따라서 가지만, 과연 이게 맞는 결정인가에 대한 불안감과 새 출발에 대한 묘한 긴장감. 그 때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