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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지선 Feb 21. 2020

월광 소나타

그림이 있는 수필

작품 「월광 소나타」

부산에 살던 중학교 시절, 나는 두 가지 과외를 받았다. 하나는 영어-수학이었고, 또 하나는 피아노였다.


영-수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서울에서 S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그 당시 1960년대엔 대학을 졸업했다고 바로 취직이 되는 시절이 아니어서 요새 말로 잠시 ‘백수’로 있는동안 궁여지책으로 가정교사 자리를 택하신 것 같았다. 그 선생님의 소개로 온 피아노 선생님 역시 같은 대학의 음대 작곡과를 나온 실력파로 언니와 나의 피아노를 가르치셨다.


영수 선생님은 시골 출신으로 매우 어려운 형편이었나 보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엔 철이 없어 가난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선생님이 우리 집에 오실 때 자주 양말을 신지 않고 오거나 구멍 난 양말을 신고 오셨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얼굴이 아주 검고 커다란 눈에 유난히 흰 동자가 많았고 여드름이 많이 나셨지만 마음씨가 매우 착하셨고 항상 웃는 얼굴이셨다.


나는 그런 선생님을 자주 골탕 먹였다. 겨우 학교에 갔다 와서 신나게 놀라치면 어김없이  나의 이름을다정히 부르며 집에 오시면 나는 "지겨운 공부"하며 미운 마음이 솟구쳤다. 

더운 여름엔 선생님은 얼음이 가득 담긴 음료수를 좋아하셨다.

나는 그 점에 착안해서 몹시 더운 날 얼음물에 설탕 대신 소금을 잔뜩 타서 유리잔에 가득 갖다 드리니 단숨에 들이켜셨다. 다 마신 다음에야 소금인 줄 알고 '읔 짜다'라고 기침을 하고 캭캭거리며 인상을 쓰셨다. 나는 박장대소를 했지만 겁이 났다. ‘선생님이 화를 내시면 어떡하나?’ 하고…. 그러나 선생님은 화는커녕 웃으시며 “

'지선이는 참 장난이 심해' 하는 정도로 끝냈다.


당시엔 한창 외국학생과의 펜팔이 유행이었다. 나도 미국 여학생하고 펜팔을 했는데 그 편지를 바쁘다는 핑계로 모두 선생님에게 시켰다. 어느 날 선생님은 실수로 사귀던 시골 애인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를 펜팔 편지와 혼동해 나에게 주셨는데 그 편지를 식구들과 선생님이랑 밥을 먹는 자리에서 소리 내 읽어 내려갔다. 선생님은 무척 당황해하면서 나에게서 편지를 뺏으려 하셨다. 그 때 얼굴이 붉어지면서 어쩔 줄 몰라하시던 모습. 아! 나는 그때 왜 그랬는지 내용도 모르는 구구절절한 시골청년의 편지를 여러식구앞에서 낭독하고 당황한모습을 보며 또 웃고  …. 다른 사람에게는 다 착한 편이었는데 왜 유독 그 선생님에게만 그토록 못되게 굴었는지 30년 이상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나 창피하고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아파온다.


하지만 그 당시 이 재미있는 나의 장난에 브레이크를 거는 사람이 있었으니 친구인 피아노 선생님이셨다. 피아노 선생님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의 명성에 어울리게 늘 흰 와이셔츠에 금테 안경을 쓰고 깨끗한 피부에 희고 긴 손가락을 가진 카리스마 있는 분이셨다. 잘 웃으시지도 않을 뿐 아니라 말이 없으시고 조금이라도 연습을 게을리했을 경우엔 화를 내며 가는 작대기로 손가락을 아프게 때리셨다. 아무튼 나는 깔끔한 성격에 카리스마 넘치는 피아노 선생님은 무척 어려워했다.


그런데 어느 날 레슨이 끝날 무렵 피아노 선생님이 나를 낮은 톤으로 부르셨다. 나는 몹시 긴장했다. 긴 침묵 끝에 “지선이가 김선생님을 그렇게 괴롭힌다지? 나는 지선이가 그런 학생인 줄 몰랐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치사하게 피아노 선생님에게 다 일러바쳤구나’라며 억울해하고 있었다. 나는  선생님을 골탕 먹인 일을 생각하며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피아노 선생님한테는 그야말로 착실하고 말 잘 듣는 제자였다. 소위 ‘이중인격자’였던 셈이다. 그 때 마침 정전이 됐다. 그 당시 1960년대는 밤 9시 이후에 가끔 정전이 되었다. 그러면 집안에서 석유등을 피워 방마다 밝혔다. 요즈음은 골동품 가게에나 있을 법한 심지를 올리고 성냥으로 불을 켜는 빨간 남포 등불을.


누군가 등을 켜서 가져오기를 기다리는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야단을 맞고 있지만 않았다면 엄마를 부르며 “등불 주세요!”라고 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 뛰었겠지만….

웬일인지 등불은 빨리 가져오지 않고 시간이 흐르니 피아노 방이 조금씩 밝아졌다. 그 때가 보름이었는지 창으로 달빛이 들어왔다.  창밖은 온통  붉은 장미가 방안으로 들 올 듯이 가득 피어있고 

달빛은 장미향기를 싣고 하얀 피아노 건반위에 떨어졌다,.


그때였다. 선생님은 조용히 눈을 감고 흰 손을 천천히 피아노 위로 올렸다. 그리곤 연주를 시작했다.

‘월광 소나타’였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1악장!


하얀 와이셔츠에 푸른 달빛을 받으며 길고 흰 손가락이 피아노 위를 거니는 모습, 반듯한 이마에 곧은 콧날의 옆얼굴, 지그시 눈을 감고 천천히 윗몸을 앞뒤로 흔드시며 한 손은 허공 위에서 천천히 내려와 건반 위를 거니는 ‘월광 소나타’ 1악장의 감동은 지금도 그 장면 하나하나가 내 가슴에 오롯이 살아있다.


‘월광 소나타’는 달빛을 타고 흐르고, 나의 양심은 선생님의 피아노 음률을 타고…

. 나는불꺼진 어두운 방에서 감동인지 참회인지 모를 눈물을 흘렸다.


그 후 여고시절, 나는 <라프소디>라는 영화를 보고 ‘이 담에 멋진 피아니스트와 결혼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였다. 연주회의 제일 앞좌석에서 어깨를 다 드러낸 끈 달린 드레스를 입고 밍크 숄을 두르고 카리스마넘치는 연주자의 시선을 느끼며 음악을 듣는 아름다운 여배우의 모습이  ‘나의 꿈’이었다.


하지만 그 꿈은 몇 년 후 대학에 가서 산산이 깨어졌다. 어느 날 대학 기숙사에서 내가 그토록 골탕을 먹인 과외 선생님의 방문을 받았다. 기숙사 골목을 친구와 올라가는데 앞의 남자 모습이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났다.


난 친구에게 “얘, 저 앞의 남자 어쩌면 옛날 과외 선생님이랑 똑같니?” 하며 걸어 올라갔다. 그런데 이럴 수가! 정말 기숙사에 있는데 인터폰으로 면회 왔다고 연락이 왔다. 그 선생님이셨다. 아마 선생님은 그 뒤 좋은 회사에 취직하여 나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셨나 보다.


그때의 떨어진 양말이나 신는 선생님이 아니라 서울의 잘 나가는 회사에 당당히 다니는 모습을…. 내가 대학에 무사히 입학한 소식을 듣고 찾아오셔서 그날 저녁 명동에 있는 근사한 양식집에 데리고 가서 비싼 식사를 사 주셨다. 그때 대학 기숙사엔 언니와 같이 있었기에 언니와 나, 선생님과 같이 온 친구분까지 넷이서 우아한 양식집에서 칼로 썰면서 식사를 했다.


그렇게 괴롭혔던 선생님인데 야단은 커녕 자랑스러운 제자로 친구에게 소개하고, 그때 이야기를 즐겁게 추억하며 부모님을 만나고 싶어 하셨다. 헤어지면서 “피아노 선생님이 무척 보고 싶어 한다”며 주소를 주고 꼭 찾아가라 하셨다.

내 여고시절의 환상인 피아노 선생님을 나도 만나고 싶었다. 이제는 까만 연미복을 입고 피아노 앞에 앉아 계실 선생님을 생각하며….


얼마 뒤 여름방학이 되어 부산에 가서 피아노 선생님을 찾아갔다. 어느 건물이층  막 피아노 학원을 차리셨는지 아니면 개인연주실인지 피아노가 몇 대 있었고 무척 어수선했다.

선생님은 대학생이 된 나를 반갑게 맞이하셨다. 나에게 차를 타 주기 위해 한쪽 코너로 커튼을 젖히고 들어가셨다. 커튼 뒤가 간이주방인지 선생님은 한쪽 구석에 있는 석유난로를 피우려고 고개를 수그리고 그 위에 주전자를 올리려고 하셨다. 석유난로를 피우고 주전자가 부딪히는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나의 환상이 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장미 흐드러진 5월의 달빛 아래 흰 와이셔츠를 입은 카리스마 넘치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들려 나온 ‘월광 소나타’의 소리가 어딘지 허름한 티, 헝크러진머리에  석유난로를 피우며 양은 주전자 덜그럭거리는 소리로 변하는 순간, 나의 소녀시절 꿈은 와장창 깨어졌다.

나는 타 온 차엔 손도 안 대고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거리로 뛰어나왔다. 영-수 선생님한테는 그렇게 건방지고 오만방자하던 장난꾸러기가 얌전한 숙녀처럼 내숭을 떨며 바라보던 ‘월광 소나타’의 선생님은 그 순간 내 꿈에서 떠나갔다.

태양이 비치는 바깥으로 나오자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그게 아니야, 냄비나 주전자 덜그럭거리는 그런 소리가 아니야! 그런 모습이 아니야!’

한낮의 여름 햇살은 나의 슬픔을 모르는지  사정없이 내려왔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기가 찬다. 40년도 훨씬 전 그 당시는 보통이 석유난로를 조리기구로 쓰는 거고, 반가운 마음에 어설프게 차를 타 주려고 덜그럭거린 게 무슨 대수라고 기겁을 하며 도망 나왔단 말인가?


 미니스카트에 긴머리 휘날리는 아름다운소녀는 어디가고  하루에도 몇 번씩 설거지통에 손을 담그고, 냄비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허름한 티셔츠 복장으로 설거지하고 빗지도 않은 머리로 작업하는 내모습에  나는 나를 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무척 좋아한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달빛이 비치는 5월의 창가에서 ‘월광 소나타’의 선생님이 피아노를 치신다. 그리고 그 소리는 나의 죄를 사하는 미사곡이 되어 나의 가슴을 두드린다. 



이글은 <독서신문>에 게제한 글을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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