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파르나스 공동묘지에서 겪은 기이한 이야기.
※주의※ 본 이야기는 저자가 겪은 실화를 기반으로 합니다만 사실 확인이 어려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재미를 위한 것일 뿐, 미신을 조장할 의도는 없으므로 재미로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괴담을 좋아한다. 최근에는 MBC 심야괴담회나 유튜버 돌비님의 시들무를 챙겨 듣기도 한다.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준은 아니지만, 나 역시 초자연현상이라 할만한 일을 겪었던 적이 있다. 2012년 11월, 파리의 어느 공동묘지에서 겪은 일이다.
파리 사람들에게 공동묘지라는 공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우리나라도 최근 공동묘지를 '가족공원'이라고 하는 것처럼 하나의 공원 같은 공간이다. 꼭 그 묘지에 지인이 묻혀 있지 않더라도 산책을 다니거나 일과 중 간단한 식사나 스낵을 먹기 위해 들리기도 한다. 또한 파리는 한 동안 전세계 예술의 수도와 같은 곳이었던 터라 유명한 예술가들이 파리 공동묘지에 많이 안장되어 있다. 그래서 Get Your Guide나 마이리얼트립 등을 보면 파리의 대표적인 공동묘지 세 곳(페르 라셰즈 공동묘지(Cimetière du Père-Lachaise), 몽마르트르 묘지(Cimetière de Montmartre), 그리고 몽파르나스 공동묘지(Cimetière du Montparnasse))에서 유명인사들의 무덤을 찾아다니는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의 관광지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파리의 공동묘지는 그런 관광지였다. 가방에 직접 만든 샌드위치와 탄산수 하나를 넣고, 소풍 가듯 예술가들의 무덤을 찾아다니며 팬들이 남겨둔 흔적을 보고, 가볍게 인사를 전하고 오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세 공동묘지 중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에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2012년 11월 19일 월요일, 가을의 끝자리에 찾은 공동묘지는 낙엽들이 어우러져 차분함 속에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이 묻어 나는 때였다. 어느 때처럼, 가이드북을 한 손에 든 채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에 있는 유명인들의 무덤을 찾아다녔다. 레 되 마고와 카페 드 플로르라는 전설적인 카페와 얽힌 일화로 알게 된 철학가 샤르트르(Jean-Paul Sartre)와 작가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오페라 가르니에의 건축가 가르니에(Jean Louis charles Garnier), 시트로엥 자동차의 창업주 시트로엥(André Citroën), 자유의 여신상을 조각한 바르톨디(Frédéric Auguste Bartholdi) 등이 묻힌 무덤을 찾아가 짧은 인사를 전했다.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에는 조각공원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다양한 조각들이 무덤을 장식하고 있어 산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게 (조심스러운 표현이지만) 멋진 묘비들을 구경하며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니 가이드 북에 안내되어 있는 유명인사의 무덤을 거의 다 방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한 곳이 남아있었다. 바로 작가 '기 드 모파상'의 무덤이었다. 가이드 북이 잘못된 것인지 안내되어 있는 구역을 여러 번 돌아다녀도 도무지 그 무덤이 보이질 않았다. 한참을 방황하며 떠돌다 멈춰서 가이드 북을 확인해 보며 "모파상 무덤은 어디에 있는 거지?"라는 혼잣말을 수십 번 되뇌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인자한 표정의 백발의 노인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모파상?(Maupassant?)"
"네!(OUI!)"
할머니께서는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셨고, 먼저 걸음을 옮기셨다. 주변에 거주하시는 듯했는데, 공원처럼 자주 공동묘지로 산책을 나오시는 듯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 걸음 앞서 걸으며 나를 안내해 주셨다. 할머니를 따라가다 알게 된 사실인데, 몽파르나스 무덤은 에밀리 하샤흐 가(Rue Emile Richard)를 중심으로 두 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모파상의 무덤은 길 건너편 묘지에 있었던 거다. 길을 건너 묘지 안에 들어선 후 할머니께서 말을 먼저 건네셨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모파상의 무덤은 왜 찾으려고 하는 건지 물으셨다. 한국에서 왔고, 모파상이 에펠탑을 싫어해서 에펠탑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는 일화를 들었는데, 그 일화가 인상 깊어 무덤을 들러보고 싶었다 말했다. 할머니께서는 모파상의 작품들도 좋아할 것 같으니 한 번 읽어 보라는 말을 남기신 후, 어느 무덤을 가리키며 이곳이 모파상의 무덤이라고 알려주셨다.
할머니를 앞질러 가 묘비를 확인하니 'Guy de Maupassant'이라 적혀 있었다. 마침내 30여분을 찾아 헤맸던 모파상의 무덤에 도착한 것이다. 묘비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할머니가 계시던 방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물론 잠시 할머니에게서 시선을 떼긴 했다. 하지만 묘비명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고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돌아서는 데 걸린 시간은 채 십여 초가 되지 않는다. 이 짧은 시간 사이에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건 불가능하다. 주변을 둘러봐도 내 시야 안에는 공동묘지 그 어느 곳에도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잠시 멍하게 서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가만히 상황을 복기해 보니 별생각 없이 넘긴 일 중에 평범하지 않은 상황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우선 내가 모파상의 무덤을 찾고 있는 걸 그분이 어떻게 알아차렸을까? 물론 혼잣말로 모파상의 무덤이 어디 있냐며 푸념식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들릴 정도로 떠들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 할머니는 "모파상"이라며 말을 걸어왔다.
또, 난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른다. 할머니와 어떠한 언어로 대화를 나누었는지 복기해 봤지만, 특정한 언어를 사용했다기보다는 이러한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정도의 기억만 남아 있었다. 그저 중간에 어느 나라에서 왔냐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Coree du Sud라고 답한 것 외에는 어떤 언어로 대화를 나눴는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모든 메시지를 매우 명확하게 주고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분의 얼굴이 떠오르질 않는다. 인자한 분위기의 백발이었다는 것만 기억이 날 뿐이다. 마치 처음부터 이목구비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저 '인자한 분위기' 덕분에 걸어가는 동안 마음이 매우 편안해졌었다는 것만 기억에 남아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그분이 초자연적인 존재라면 가능한 일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 다른 답은 없어 보였다. 파리의 공동묘지에서 천사를 만났구나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결론이었다.
아무튼 그분 덕분에 모파상의 무덤까지 확인한 후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에서 나올 수 있었다. 묘지를 나서기 직전 잠시 뒤를 돌아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다. 누군가를 바라보며 건넨 인사는 아니지만 그냥 그렇게 말을 하면 그 할머니께서도 들으실 것만 같았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할머니는 미지의 대상이다. 어쩌면 그저 그 동네에 거주하시며 몽파르나스 공동묘지로 산책을 자주 나오시는 할머니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파상의 무덤이 어디냐 물어봤기에 지레 짐작하여 물어보셨을지도 모른다. 그때 마침 그 무덤을 찾고 있었을 뿐일지도 모르고. 말 그대로 그저 우연에 우연이 겹친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워낙 건강하셔서 순식간에 사람의 시야에서 멀어질 수 있는 주력을 갖고 계신 걸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만난 그분은 실존하는 어르신이 분명하다.
하지만 난 아직도 그분이 초자연적인 존재라고 믿는다. 천사이든 혹은 다른 존재이든, 그분 덕분에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생겼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래서 못다 한 인사를 남기며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싶다.
Merci beaucoup!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