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를 갈 때마다 무조건, 반드시 다시 갈 생각이었던 식당이.
일본 여행이 너무너무너무 가고 싶다. 코로나 전에는, 과장 조금 보태서, 1~2년에 한 번씩 일본 여행을 다녀왔던 것 같다. 여행 성향이 City Traveler이고, 특정 도시를 여러 번 재방문하는 편이라 방문했던 지역은 다양하지 않지만, 그래도 꽤 자주 여행을 다녔다. 코로나 직전에 교토에 Ace Hotel Kyoto가 열리는 일정에 맞춰 계획을 세웠다 취소했던 탓에 더더욱 가고 싶은 것 같다. 솔직히 계획은 이미 다 짜두었지만 사정상 떠나지 못하고 있다.
아무튼 최근에 교토 여행을 준비하다 재미 삼아 도쿄 여행 계획도 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왕 여행을 준비하는 김에 파리에서 하는 것처럼 방문 첫날 루틴을 하나 만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생각해 뒀던 식당을 다시금 찾아봤다. 인생 최고의 돈카츠를 먹었던 가게였다. 그래서 도쿄 여행을 갈 때마다 무조건, 반드시 다시 갈 생각이었던 식당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구글링해도 정보가 나오질 않았다. 몇 번 시도 후에 구글 지도에 저장해 둔 핀을 찾아 눌러보니 빨간색으로 Closed가 적혀 있었다.
언젠가 다시 가려 했던 그 식당이 문을 닫았다.
돈카츠 오쿠라(とんかつ 大倉)를 처음 방문한 건 2015년이었다. 당시 도쿄 여행의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스타벅스 네이버후드 스토어를 둘러보는 거였다. 당시 미국과 일본에는 '동네 카페' 역할을 하는 네이버후드 스토어가 곳곳에 있었다. 매장 이름도 매장이 위치한 거리 주시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 매장이 도쿄 세타가와구 타마가와에 있었다. 일반적인 여행이었다면 절대 들르지 않을 동네였다. 그렇기에 가는 김에 동네 맛집에서 저녁도 먹고 올 생각으로 주변 식당 정보를 찾아봤다. 그러다 미슐랭 가이드(빕 구르망이었는지 플레이트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에 소개된 돈카츠 레스토랑이 카페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돈카츠를 좋아하는 터라 한치의 망설임 없이 그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결심했다.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세타가와로 향했다. Tamagawa 3-chome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즐기다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쯤 일어나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구글 지도를 켜고 한적한 동네를 걷다 구글 지도에서 봤던 간판을 발견했다. 간판과 매장 입구부터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조그마한 동네 식당이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니 주인 할머니께서 따듯한 인사로 맞이해 주셨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식당은 꽤 한산해 보였다. 테이블이 네다섯 개 있었던 것 같고, 다찌에도 대여섯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혹시나 Last order가 끝났을까 싶어 조심스레 식사가 가능한지 물었다. 할머니께서는 아직 주문이 가능하다며 편한 자리에 앉으라 말씀하셨고, 나는 가장 안 쪽 다찌(Bar)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 주인 할머니께서 시원한 녹차와 메뉴판을 가져다주셨다. 부족한 일본어로 떠듬떠듬 말을 이어가다 포기하고 영어로 이것저것을 물었다. 주인 할머니께서는 친절하게, 그리고 매우 능숙한 영어로 질문에 답을 해주셨다. 로스카츠가 제일 자신 있는 메뉴라고 하셨는데 마침 나도 로스카츠를 좋아했기에 로스카츠 하나를 주문했다.
주문을 하고 나서 녹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니 조금씩 식당 곳곳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식당을 둘러보다 어느 순간부터 마치 일본 드라마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테이블에 있는 손님들은 동네에 거주하는 단골손님들인지 할머니와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무슨 말인지 전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정겨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주인 할아버지는 주방에서 묵묵히 요리에 집중하고 계셨다. 얇게 썬 양배추를 손으로 감싸 정성껏 물을 빼고 접시에 옮겨 담는 것도, 돈카츠에 튀김옷을 입혀 솥에 넣는 것도 매우 능숙하고 부드러운 동작이었다.
잠시 후, 퇴근길에 돈카츠를 포장하기 위해 들른 아저씨가 가게에 들어왔고, 가게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서로 짧게 안부를 전했다. 그 덕에 가게가 잠시 왁자지껄 해졌다.
이 모든 순간들이 마치 한 편의 연극 같았다. 분명 이 장소에서 매일 일어나는 순간들일 텐데 내게는 그 모든 순간이 매우 특별했다. 덕분에 여행 첫날 느끼는 긴장이 한 순 간에 풀렸던 것 같다.
그렇게 기분 좋게 공간에 녹여들 쯤 주문한 돈카츠가 나왔다. 주인 할머니께서 어떻게 먹는 게 좋은지 친절하게 알려주신 후 밝은 미소로 맛있게 먹으라는 인사를 건네셨다. "이타다키마스.(いただきます。)"라고 답한 후 소금에 살짝 찍은 돈카츠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정말 맛있었다. 튀김옷도, 고기도, 정말 적당히 잘 익었다.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인생 최고의 돈카츠였다. 젓가락은 한 번 도 내려놓지 않고, 잘 튀겨진 돈카츠를 소금과 와사비, 소스에 한 번씩 찍어가며 게걸스레 먹었다. 양배추 샐러드와 피클, 미소시루까지 게눈 감추듯 비우고 나니 매우 행복했다.
감동에 겨워 facebook 포스팅을 하나 하고, 빈접시를 주방으로 넘겨드리며 주인 할아버지께 "코치소사마데시다, 혼또니 오오이시 데스.(ごちそうさまでした。本当に美味しい。)" 라며 인사를 건넸다. 묵묵히 주방을 지키던 주인 할아버지께서는 그 말에 머리를 숙여 답례를 해주셨다.
다음에 또 오라는 할머니께도 잘 먹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가게를 나섰다. 포근하고 따듯했던 가게와는 다른 다소 삭막한 골목을 보니 잠시 다른 시공간에 머물다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이 먼 곳까지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쩌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레스토랑에서 단순히 먹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그 시간과 공간에서 다양한 요소들을 경험하고, 체험하며 기억하기 시작한 계기가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 돈카츠 가게가 문을 닫았다는 사실에 이상하게 가슴 한 편이 아려왔다. 자주 가던 식당이나 카페가 문을 닫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나만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한 지역의 문화를 오롯이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더욱 아쉬웠다.
도쿄에 여행을 떠날 때면 언제나 호텔에 짐을 풀고, 도심을 뒤로 한채 세타가와로 발길을 옮겨, Tamagawa 3-chome에 들러 커피를 한 잔 마시고, とんかつ 大倉에 들러 돈카츠를 먹으며 잠시나마 그 동네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의 추억으로 남겨야만 한다. 그 식당도, 그 카페도 이제는 없으니 말이다.
끝.
p.s. 이번에 글을 쓰기 위해 조사하던 와중에 동명의 식당이 지바시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구글 맵 리뷰를 열심히 보니 두 어르신의 아드님께서 운영 중이라고 한다. 당연하지만 매우 아쉽게도 간판도, 가게도 스토어 프런트도 모두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고, 여느 맛집처럼 정신없이 바쁜 듯하다. 그래도 대기줄이 엄청날 정도로 인기가 여전한 걸 보면 맛도 여전히 훌륭할 것 같아 언젠가 도쿄 여행을 가면 맘먹고 지바를 다녀와 볼까 한다.
세타가와에 있었던 그 오래된 가게에서 느꼈던 정겨움이나 분위기는 없겠지만, 그 로스카츠를 먹으며 그 당시를 회상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매우 유의미한 경험이 될 거라 믿는다.
진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