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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조 Nov 02. 2016

프롤로그,
여행의 시작.

그 날이 오면 두근두근 콩닥콩닥 할 줄 알았는데...

  "될 대로 돼라."


  1년을 준비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날 찾아온 건 기분 좋은 두려움과 설렘은 아니었다.




  이번이 세 번 째다, 미국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건.


  4학년 1학기, 다른 친구들은 졸업/취업을 준비할 때에 교환학생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1순위는 스타벅스의 도시인 시애틀에 위치한 University of Wasington이었다. 하지만 UW가 쿼터제라 마지막 학기는 본교에서 보내야 한다는 학칙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대신 파리로 교환학생을 떠나 인생의 황금기를 보낼 수 있었으니 후회는 없다.

  두 해 뒤, 운 좋게 원하는 회사에 합격하자마자 대학생활의 마지막 화룡정점을 찍기 위해 2주에 걸친 미국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여행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마이너스 통장 개설을 알아보던 와중에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날짜가 공지됐다. 2주짜리 여행은 사치였다. 가끔 지금도 그냥 오리엔테이션을 가지 말고 여행을 갔어야 한다는 후회를 하곤 하지만, 그 당시엔 그게 최선이었다. 대학생으로서 마지막 여행의 목적지는 짧게 다녀올 수 있는 대만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세 번 째, 2016년 다이어리를 받자마자 연휴가 얼마나 많은지 확인했다. 9월, 추석 연휴와 여름휴가 활용하면 10일 정도는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욕심내지 말고 뉴욕과 시애틀만 갔다 오자.' 그렇게 세 번째 미국을 향한 도전(?)이 시작됐다.
  혹시라도 연차를 쓰지 못할까 기회가 있을 때마다 회사 사람들에게 '내년/올해 추석 에는 미국 여행을 갈 거다.'라고 말했다. 순전히 이 여행만을 위한 재무 계획도 따로 세웠다. 해가 바뀌자마자 미국행 비행기를 예매했고, 월급이 들어오는 날마다 호텔을 예약했고, 여행 중 시간을 때우기 위한 아이패드를 샀고, 멋진 사진을 남기기 위해 카메라도 새로 장만했다. 꼭 가고 싶은 레스토랑을 예약하기 위해 뉴욕으로 전화를 걸어 45분이나 통화 대기 상태로 기다렸다 예약하기도 했다. 일정이 없는 주말이면 각 도시 별로, 날짜 별로 할 일들을 리스트업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To-do list가 어느 정도 완성되고 나니 지도를 펴놓고 어떻게 하면 이 모든 걸 해낼 수 있을지 고민하며 구글 캘린더에 빡빡하게 일정을 채워 나갔다.


  무슨 여행 준비가 이렇게 유난스럽나 싶을 정도였다. 원래 여행 일정을 짤 때 몇십 분 단위로 계획하는 스타일이지만 이번에는 유독 심했다. 하고 싶은 건 너무나도 많은데 비해 여행 기간은 너무 짧았다. 시애틀과 포틀랜드(여행을 준비하다 보니 포틀랜드가 추가됐다.), 여기에 뉴욕을 8박 9일 안에 즐겨야만 했다. 시간이 부족한 걸 알았지만 To-do list는 모두 끝내야만 한다는 강박이 점차 나를 옥죄어 오기 시작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 억지로 일정표 안에 그 모든 걸 채워 넣었다.

  그리고 그 결과 SNS에 자랑스럽게 공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미국 여행 플랜은, 마치 고3 추석 연휴 학원 스케줄과 같이 바라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오는 일정표가 돼버렸다. 여행을 떠나겠다 마음먹었을 때의 설렘은 어느새 '이걸 다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과 막막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렇게 다녀오면 나한테 남는 게 뭘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려 1년이나 준비한 여행이다. 근데 이대로 떠난다면 그냥 기계적으로 온라인 게임 속 Qeust를 깨는 것 밖에 안 되는 것 같았다. 내가 원한 건 이런 여행이 아니었다. 그 순간 정신이 팍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카페, 미식, 그리고 로컬.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한참을 고민하여 찾은 대안은 제일 처음 내가 이 도시를 선택하게 된 키워드에 집중해서 도시 별로 여행의 테마를 잡는 거였다. 시애틀은 '카페 투어( '스타벅스 투어')', 포틀랜드는 '푸디트립', 뉴욕은 '뉴요커처럼 살아 보기'.

  도시 별 여행 테마가 명확하게 잡히고 나니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시간에 얽매여 있던 여행 계획은 '장소'를 중심으로 정리됐다. 지금 머물고 있는 장소에서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은 자유롭게 비워 뒀다. 시애틀에서는 꼭 가야 하는 카페들만 리스트에 남겨뒀다. 포틀랜드는 이미 예약해둔 레스토랑과 아직 정해지지 않은 '브류어 리'들도 채워졌다. 마지막 뉴욕에서의 4일은 '2일 동안 브루클린 사람처럼 살기', '2일 동안 맨해튼 사람처럼 살기'였다. 도대체 그 브루클린 사람과 맨해튼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빠르게 휘갈기던 펜이 멈추자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돌아왔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나 여행가요.'라고 자랑해도 될 것 같았다.


"이젠 사람들한테 자랑해야 겠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마치고 티켓을 받았다.

  드디어 떠난다!

  ... ... 이게 전부였다. 공항에 오면 느끼던 기분 좋은 두근거림 같은 게 전혀 없었다. 신나서 방방 뛰어다닐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덤덤했다. 여행 계획을 적어둔 다이어리를 꺼내 차근차근 읽어 내려간다. 이 두 페이지를 만드느라 그 고생을 했건만 이제 와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너무 오래 준비해온 탓에 지친 건지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이제는 무얼 경험하든, 혹은 경험하지 못하든 상관없었다. 정말 이제는 어떻게 되든 좋을 것 같았다.


  "될 대로 되라지."


  이렇게, 이전의 여행과는 다르게, 여행이 시작됐다.


9일 간의 미국 여행기, 시작합니다.

  본 게시글은 독립 출판물로 제작하기 위해 작업 중인 지극히 개인적인 여행기의 초고입니다.

  여행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나 문의사항은 별도로 연락 주시면 답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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