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날, 이제는 그냥 하루하루 익숙해지는 중, 날씨가 다 한 날.
아침 일찍 일어났는데 이상하게 침대에서 나오기가 싫다. 어제 미끄러져서 다친 어깨 탓도 좀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평소와 달리 친구들이 다 일어나고 나서야 방에서 나왔다.
아까 새벽에 잠깐 나왔을 때는 오늘 날씨가 맑아지긴 하려나 싶었는데, 어느새 쨍하게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한라산도 잘 보인다. 오랜만에 파란 하늘이 반겼다. 오늘은 날씨가 다 하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친구들이 저 멀리 시내까지 나가 사다준 크림치즈를 활용해서 아침메뉴를 만들어 먹었다. 시나몬 파우더가 없어서 좀 아쉬웠지만 호두는 그레놀라로, 메이플 시럽은 꿀로 대체해서 먹으니 먹을만했다. 빵이 조금 더 토스트에 맞는 식빵이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름 가는 길, 바람이 세차게 불고는 있지만 하늘이 너무나 맑다.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날씨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햇빛을 느끼고 싶어 지는 그런 날이다. 어제 미끄러졌던 곳을 조금 더 조심하며 하늘을 더 자주 바라보며 걸었다.
오름에서 집으로 가는 길, 봉성식당에 사는 댕댕이가 횡단보도에 마중을 나왔다. 횡단보도 반대편에서부터 가만히 인사를 건네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잠시 눈을 맞추고 앉아 있었더니 발라당 배를 까고 눕는다. 사람을 참 좋아하는 견공인 듯하다. 더 오래 같이 놀고 싶었지만, 다음 일정이 있기에 아쉽게 발길을 돌렸다. 다음에 식당 갈 때 많이 놀아줘야지.
5일 만에 성산으로 가는 길, 날이 맑다 보니 한라산이 무척이나 잘 보였다. 마침 또 내일 저 끝까지 올라갈 예정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더 눈에 들어왔다. 하얗게 눈이 쌓인 한라산을 바라보면서 내일 저곳을 직접 눈에 담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졌다.
제주 공항에서부터 빛의 벙커에서 반 고흐 전이 있다는 걸 보고 꼭 가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빛의 벙커를 가기 위해 성산으로 향했다. 반 고흐뿐만 아니라 고갱도 함께 하고 있어서 기쁨(?)이 두 배! 내 최애 화가이신 반 고흐 님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보고 있자니 얼마나 황홀하던지, 무려 핸드헬드로 31분간 동영상을 찍을 정도로 애정을 듬뿍 담아 관람했다. 한 번 보긴 아쉬워서 친구들한테 한 번 더 보자고 조를 정도로 그 안에 있는 동안 무척이나 행복했던 것 같다. 해바라기가 나올 때는 해바라기를 봤던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과 그 앞의 잔디밭이 떠오르고, 오베르 쉬르 우아즈가 나올 때는 그곳에서 봤던 아름다운 노을과, 도둑맞은 핸드폰이 떠오르고, 별이 빛나는 밤이 나오면 뉴욕 MoMA에서 그 그림 앞에서 머물렀던 시간들이 다시금 떠오르며 추억에 빠졌다. 이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압생트 효과가 아닐까 진심으로 확인해 보고 싶어 진다는 점? 베를린에서 왜 압생트 바를 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정도?ㅋㅋㅋ
그렇게 사랑에 마지않는 반 고흐(그리고 폴 고갱)와의 만남을 뒤로한 채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카페로 향했다. 오늘 같은 날씨라면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배가 될 거라는 기대를 품고 달리고 달려 도착했다. 동화 속에서 언덕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집 한 채가 있을 것 같은 곳에 위치한 동화 속 작은 집 같은 카페에 들어가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넓은 창 밖으로 보이는 함덕해수욕장과 정말 동화 속 집처럼 꾸며진 카페였다. 저녁놀이 지기 시작할 때쯤 카페를 나오는 데 주인아주머니께서 문 앞까지 마중을 나와 주셨다. 얼마나 감사하던지.
가는 내내 저녁놀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마치 캘리포니아에 와있는 것 같았다. 제주 시내가 눈에 보이자 LA로 향하는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친구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그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정말 매일매일 바라보고 싶은 풍경이었다.
생각보다 늦게 우진 해장국을 방문했다. 방문 첫날부터 먹을 줄 알았는데. 오랜만에 먹었지만 여전히 맛있었다. 매번 혼자 오다 보니 안 쪽에 이렇게 넓은 방들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이젠 정말 잘 아는 가게가 하나 생긴 것 같아 좋다.
내일 한라산에 올라갈 때 필요한 등산 장비와 간식거리를 준비하고 집에 도착하니 달이 무척이나 낮게 떠 있었다. 매일 밤 달은 여기에 있었을 건데 날씨가 좋지 않아 보이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아쉬웠다. 날이 맑으니 별도 매우 잘 보인다. 낮게 떠있는 달을 찍으려고 열심히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어봤지만 원하는 것처럼 담기지는 않는다. 이번에도 그냥 눈에, 머리에 담아둬야겠다.
둥그런 보름달은 아니지만, 달님을 보면서 내일 산행을 안전하게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별님에게 비는 걸 깜박했는데 지금 빨리 나가서 별님에게도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드리고 와야겠다. 내일 잘 마치고 여기서 다시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