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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 Sep 12. 2022

'좋은 책'을 고르겠다는 욕심

사진 한 조각, 일상 한 스푼


어릴 적엔 책 읽는 걸 무척 좋아했다. 집에도 책이 많았고, 초등학생 때는 엄마 손을 잡고 도서관에 가서 하루종일 책을 봤다. 중학생 때는 동네 도서관 3층 열람실에서 공부를 했다. 2층은 책누리실이었다. 책이 좋아서인지 공부가 하기 싫어서인지 자주 책누리실로 내려갔다. 간식을 사주시러 온 엄마는 3층 열람실 자리가 비어있으면 2층에서 나를 찾았다. 책상에 앉아서 읽으면 들킬까 봐 가장 안쪽에 위치한 책장에 기대거나 바닥에 앉아 소설을 읽었다. 공부하는 대신 책을 읽는 것은 나름의 일탈이었다. 해야하는 것을 미루고 꼭 하지 않아도 되는 걸 하는 시간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독서는 학생에게 허락된 유일한 해방수단이었다.


그때는 책의 첫 페이지를 펼치는 게 무척 쉬웠다. 독서를 통해 무언가를 얻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표지가 예뻐서, 제목이 좋아서, 책장에서 책을 꺼내들고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곤 했다. 주로 로맨스나 판타지 소설이었다. 지금은 읽을 책 한 권 고르는 게 어렵다. 독서가 어느 순간부터 자기계발의 수단 중 하나가 됐다. 내 시간을 투자해서 읽은 책이 생각보다 별로일까봐 걱정됐다. 내게 필요한 책을 읽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이 어떤 책도 열지 못하게 만들었다.


어렵게 책을 읽는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서점, 도서관, 북카페이다. 책에 둘러싸여 있으면 포근하고 아늑한 기분이 든다. 좋은 책에 대한 고민을 안고 송도의 한 북카페를 찾았다. 2층짜리 넓은 북카페를 세 번이나 빙빙 돌면서도 읽을 책 하나를 고르지 못했다. 어릴 적 책을 고르던 마음으로 돌아갔다.

'좋은 책이고 뭐고, 내 시선을 이끄는 책 아무거나 집어보자.'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 불이 켜진 서점 그림이 그려진 책 표지가 보였다. 제목에 서점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황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였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서점 대표인 영주도 좋은 책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손님이 어떤 책이 좋은지 질문할 때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무기력증에 걸린 아들이 걱정인 엄마가 속이 뻥 뚫리는 책을 원할 때 어떤 책을 추천할 수 있을까. 영주는 모녀 관계를 다룬 소설을 떠올렸다. 이마저도 영주라는 한계 안에 갖힌 추천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서점은 영주의  관심사에만 맞춰진 공간이었다. 영주의 시선 밖에 손님에게 필요한 더 좋은 책이 있더라도, 영주는 추천해주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손님은 열흘 뒤 서점을 찾아와 책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고, 좋은 책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영주는 독자의 마음을 건드리고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좋은 책이라고 정리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영주가 찾아낸 답에 공감했다. 소설을 읽다보면 하고 있는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때가 많았다. 주로 삶에 대한 소설이었다. 정세랑, 김금희, 김초엽, 천선란, 최은영 작가의 책을 좋아한다. 소설 속에 내가 있고, 사람이 있고, 내가 몰랐던 세상이 있었다. 힘든 삶에 위로를 받고 싶을 땐 위 작가의 책을 집어들었다. 소설 속 따뜻한 문장 한 줄이 얼어있던 마음을 녹이고, 세상을 보는 눈을 부드럽게 바꿨다. 사람과 일에 치여 웅크러들어도 슬픈 내용에 펑펑 울고 나면 괜찮아졌다.


좋은 책은 결국 내게 필요한 책이 아닐까? 지금의 내 옆에는 사람 냄새나는 책이 있다. 누군가는 부자가 되고 싶어 책을 읽고, 누군가는 미술에 관심이 생겨 책을 보고, 누군가는 지친 마음을 위로받기 위해 책을 펼친다. 각자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다른 만큼, 삶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주는 말했다. '삶을 이해한 작가가 쓴 책'이 좋은 책이라고. 좋은 책 한 권은 작가를 궁금해하게 만든다. 좋아하는 작가 목록에 한 명이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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