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타카(Gattaca)>를 보고
인간은 금기를 거스르고 싶어 한다. 마치 오르페우스와 롯의 아내처럼 말이다. 그들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결국엔 그렇게 하였다. <가타카>도 운명을 거스르는 사람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가 운명을 어떻게 뒤집었는지 그 과정을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 작을 접한 많은 사람은, 주인공이 부단한 노력을 통해 유전적 한계와 사회적 차별을 뛰어넘었다고 믿는다. 그들은 이 작품을 통해 ‘능력주의 성공 신화’를 읽는다. 그러나 실제로 영화를 뜯어보면, 주인공의 운명을 바꾸는데 노력보다는 주변인이 제공한 ‘돌봄’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가타카>가 그리는 근-미래에서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완벽한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멋진 신세계』에서 인간을 조합한 것처럼 말이다. 부모가 충분한 돈을 지불하기만 한다면, 유전적으로 우월한 아이가 생산된다. 아이의 유전자를 분석함으로써 그의 운명을 점치는 것도 가능하다. 유전적 성질을 토대로 그가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는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지 등을 예상할 수 있다.
본 작의 사회 구조는 인간이 철저히 예측 가능한 삶을 살도록 설계되어 있다. 유전자의 성질에 따라 직업 선택권이 제한된다.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인간은 화이트칼라 직종에 종사하고,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인간은 블루칼라 직종에 종사해야만 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계급의 대물림으로 이어진다. 전자는 상류층이 되고, 후자는 하류층으로 밀려난다.
열등한 유전자를 지닌 인간은 평생토록 우월한 유전자를 지닌 인간에게 필적하는 삶을 살 수 없다. 사회 곳곳에 DNA를 분석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피, 피부, 타액을 실시간으로 채취하고 이를 분석해서 개인의 생체적 정체성을 추적한다. 영화 속 세상에서 유전자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을 옥죄는 사슬이다.
빈센트 프리먼은 디스토피아에 도전장을 내민다. 그는 유전자 조작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연적으로 출생한 인간이다. 유전자 분석 결과, 그는 심장 질환을 앓을 가능성이 높았고, 범죄자가 될 것이 예정되었으며, 31살에 사망할 것이 분명했다.
빈센트의 가혹한 운명에 좌절한 부모는 유전자를 조작해서 동생 안톤을 만든다. 안톤은 언제나 빈센트보다 멀리 헤엄쳤고, 힘이 셌고, 지능도 더 높았다. 그러던 어느 날 빈센트는 안톤과의 수영시합에서 그를 이긴다. 절대 이길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상대를 앞지르자, 빈센트는 달라진다. 자신의 운명이 유전적 조건으로 결정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빈센트는 우주비행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가 지닌 열등한 유전자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우주비행사는 최상의 신체 조건을 가진 인간만이 도전할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그는 여러 노력을 기울인다.
첫째로, 생체적 정체성을 버린다. 그는 다리를 다친 전직 수영선수, 제롬 유진 머로우와 신분 거래를 한다. 빈센트는 제롬과 동일한 외양을 갖추고자 키를 늘리는 수술을 받고, 얼굴을 손본다. 제롬은 매일 빈센트를 위해 채뇨, 채혈을 하고 살갗을 벗긴다. 빈센트도 매일 체모를 밀어낸다. 눈썹 한 올, 머리카락 한 가닥까지 관리한다. 빈센트는 제롬이 제공한 샘플로 사회 곳곳에 있는 검문소의 DNA 추적을 피한다.
둘째로, 사회적 정체성을 버린다. 제롬의 외양을 갖춘 빈센트는 제롬 그 자체로 살아간다. 빈센트는 사회에서 소거된 것이나 다름없다. 빈센트는 가족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관계망을 폐기한다.
이 외에도 빈센트는 신체 능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운동을 하거나, 우주비행사로서 일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쌓는 등의 노력을 한다. 그 과정에서 빈센트는 본래 정체성이 발각될 위험을 여러 번 겪지만, 결국엔 고난을 이겨낸다. 최종적으로 그는 무사히 우주비행사로 발탁되어 우주로 향한다.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고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빈센트가 겪은 고난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대별된다. 첫째로, 정체를 발각당한 일이다. 빈센트의 철저한 노력과는 별개로, 그는 주변인에게 여러 번 정체를 발각당한다. 애인인 아이린, 동생인 안톤, 우주선 탑승 직전에 만나는 검문 직원까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그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다. 그들이 일언반구라도 하였다면 빈센트는 당장 교도소에 수감되었을 거다.
하지만 운 좋게도 많은 주변인이 빈센트를 감싸주었다. 아이린은 빈센트의 정체가 발각되지 않도록 수사 과정에서 형사에게 거짓말을 한다. 경찰이 된 안톤은 빈센트의 삶에 감응하여 더이상 그를 추적하지 않았다. 검문 직원은 빈센트가 제롬이 아닌 걸 알면서도 그가 우주선에 탑승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둘째로, 제롬과의 거래다. 제롬은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빈센트를 보며 자괴감을 느낀다. 걷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빈센트에게 왠지 질투심도 느낀다. 사실 제롬은 언제든지 빈센트의 정체를 폭로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제롬은 빈센트를 끝까지 돌보아 준다. 제롬의 헌신은 경이로울 지경이다. 그는 빈센트가 지구로 돌아올 때를 대비하여 평생 사용할 수 있는 양의 DNA 샘플을 남긴 채 자살한다.
그러니까, 빈센트는 온전히 자신의 노력만으로 우주에 닿은 것이 아니다. 주변인의 무한한 지지와 돌봄이 없었다면, 빈센트는 우주비행사가 되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노력보다는 운이 그의 운명을 뒤집는데 더 큰 기여를 했다.
많은 사람이 <가타카>를 능력주의 신화로 독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본 작의 세계와 현실 사회가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세정책 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 계층 상위 1%가 한국 전체 부의 25.4%를, 상위 10%가 절반이 넘는 58.5%를 차지했다. 반면, 하위 50%가 가진 자산 비중은 5.6%에 불과했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함에 따라, 세습 자본주의가 강화되고 있다. 사회적 조건들은 영화 속 유전자에 준하는 수준으로 인간의 삶에 전인격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후기 자본주의적 디스토피아가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다음으로, 능력주의 신화 자체가 매력적이다. 능력주의 신화는 현대판 금기 모티프 설화 같다. 현대인은 개인이 노력을 통해 운명을 개척했다는 서사에 열광한다. 인간의 삶이 통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 훨씬 희망적이며, 계급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무력감에 시달리기보다는 능력을 계발하면 성과가 반드시 따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편이 개인의 정신건강에 훨씬 이롭다.
능력을 중시하고 자신을 계발하는 것이 무조건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능력주의 신화의 이면을 살펴볼 필요는 있다. 현대 사회는 개인의 능력을 100% 반영하는 구조로 이루어져있지 않다. 또한, 어떤 능력을 어떻게 계량화할 것인지 그 방법에도 여러 문제가 따른다. 이로써 '개인이 노력을 하면 원하는 것을 반드시 얻을 수 있다', '능력에 따른 보상과 차별은 당연하다'는 믿음은 사회 구조에 대한 의문을 일축한다.
영화의 막바지에서, 검문 직원은 빈센트가 사실은 제롬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를 우주선으로 들여보내 준다. 직원의 아들은 빈센트처럼 유전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데, 그의 아들도 우주비행사를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그도 빈센트처럼 죽어라 노력하고, 신분을 위장하면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에게도 운이 따라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개인의 삶을 조건 짓는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 몇 사람의 선의에 기대어 전개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솔직히 인정하자. 우리 모두가 빈센트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빈센트라는 반례를 토대로 전체적인 사회 질서를 개편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다면 우주비행사가 되기를 원하는 모두가, 비행사에 도전할 수 있는 사회 또한 도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