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해야 하냐고? 통장잔고가 답한다: '동기부여'에 대한 현실적 고찰
회사를 다니다 보면, ‘동기부여’라는 단어가 어느 순간 공기처럼 스며들 때가 있다. 마치 모든 이가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지?”를 떠올리고, 그 해답을 외부에서 찾고자 기웃거리며, “뭔가 모티베이션이 필요해!”라고 외치는 모습 말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모티베이션이라는 것—달마다 들어오는 월급통장 알람과 그에 딸려오는 복지 혜택, 그리고 내가 세운 개인적 목표—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예전에 이런 일을 겪었다. 부서를 옮기고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 주니어 한 명이 대뜸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동기부여가 안 된다”고 말을 꺼낸 것이다. 순간 나는 속으로 “이 친구, 혹시 봉사활동 중인가?” 하고 깜짝 놀랐다. 회사는 이 친구에게 월급을 주고, 보험을 보장해 주고, 경력을 쌓을 기회를 준다. 즉, 나는 “이게 이 회사에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게 이미 가장 기본적인 동기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일이 늘 신나고 재밌을 순 없으니, 때론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겠지만, 회사는 그만큼 월급을 준다. 월급이야말로 가장 직접적이고 단순 명료한 모티베이션 아닌가?
물론 “내가 이 직장에서 이루고 싶은 개인적 목표”도 강력한 동기부여 요소다. 예컨대 “3년 후에는 팀 리더가 되어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완수하겠다”라는 명확한 목표 말이다. 이런 목표가 있는 사람은 ‘이 일이 지금 당장 내 취향에 맞느냐, 아니냐’에 흔들리지 않는다. 패키지 디자인이든, 광고 디자인이든, 회사가 주어진 역할 안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결국 자기 역량도 넓어지고, 결과물로 회사에서의 위치도 올라간다. 그러면 언젠가 진짜로 원하는 프로젝트를 맡을 기회가 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 경험상, “동기부여가 안 된다”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 중 뛰어난 인재는 별로 보지 못했다. 오히려 실력이 아직 애매한 경력자들이, “내가 광고 디자인을 더 하고 싶으니까, 패키지 업무는 동기부여가 안 된다” 같은 말로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실력 있는 디자이너라면 회사가 패키지를 요청해도 “광고 디자인 시안도 제안해 볼까요?”라는 식으로 건설적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그렇게 회사에 기여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역량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 진짜 프로의 자세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설득이 안 된다, 재미가 없다”라는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함이 머리끝까지 치솟는다. 마치 갓 볶아낸 커피 냄새가 흩어지는 멋진 카페에서, 막상 커피는 주문도 안 하고 테이블만 차지하고 있는 손님을 보는 기분이랄까.
한편, 어딘가에서 잘못 배워 온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병”도 문제인 것 같다. 전 직원이 카페테리아에서 맥북을 열고, 사내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를 홀짝이며, 자유로운 토론 속에서 기적 같은 성과가 뿅 하고 탄생할 것 같은 환상 말이다. 물론 그런 기업 문화를 지향하는 곳도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매일 아침 구글 어딘가에서 눈을 뜨는 것은 아니다. “원대한 비전”과 “파격적인 복지”만 있으면 모든 사람이 춤추며 일할 거라는 생각은, 맑은 날 해변가를 바라보면서 “아, 나도 서퍼가 될 수 있겠지”라고 믿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로 서핑을 하려면 파도, 장비, 시간, 체력까지 여러 요소가 맞아떨어져야 하듯, 직장 생활에서도 “돈 + 목표 + 노력”이라는 기본이 탄탄해야 한다.
결국 회사 내에서의 모티베이션이란, 거창한 포스터나 신박한 슬로건에서 오는 게 아니다. 나한테 주어진 일—내 업무 범위 안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어떻게 잘 끝마치느냐가 기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한 단계 성장할 것인지, 아니면 주어진 업무만 억지로 시간 때우며 갈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달마다 불어나는 통장의 숫자, 그리고 내가 그 숫자를 통해 실현할 수 있는 작은 행복들. 여기에 더해 회사 내에서 점점 넓혀가는 역할과 책임—이것이야말로 직장인이 매일 일어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문득 아침 출근길, 막 구운 빵 냄새가 희미하게 스쳐갈 때 “아, 오늘은 괜찮은 하루가 될 것 같다”라는 작은 설렘을 느끼듯이 말이다. 바쁜 일상 중에도 내 적금 통장과 커리어가 조금씩 살찌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이미 충분한 동기부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대단한 ‘환상’보다는, 지금 내 앞에 놓인 현실적 가치들을 감사히 여기는 게 직장에서의 모티베이션을 유지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