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편(計篇)”에서 배우는 마케팅 시작의 기술
프리랜서 마케터라는 직업은 늘 새로운 도전을 선사한다. 프로젝트마다 브랜드가 다르고, 고객의 니즈도 제각각이다. 첫 미팅에서부터 계약 성사, 캠페인 기획, 그리고 데이터 분석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막연한 기대와 함께 잔잔한 긴장을 동반한다. 이럴 때 가끔은 전혀 다른 시대의 지혜가 의외의 돌파구를 줄 때가 있다. 손자병법의 “계편(計篇)”이 내게 그런 영감을 전해준 사례다.
계편은 손자병법의 첫 장(章)으로, 전쟁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할 준비 과정을 다룬다. 그 핵심 주장은 “싸우기도 전에 이미 승패가 갈린다”는 것이다. 마케팅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브랜드와 시장, 그리고 고객에 대한 ‘사전 분석’을 얼마나 정확하고 깊이 있게 하느냐가 캠페인의 성패를 좌우한다. 이는 프리랜서 마케터가 반드시 되새겨야 할 지점이다.
계편에서 손자는 **도(道), 천(天), 지(地), 장(將), 법(法)**를 언급하며, 전쟁의 승리를 위해 고려해야 할 다섯 요소라고 강조했다. 재미있는 건, 이 요소들이 마케팅 활동에도 자연스럽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1. 도(道): 브랜드 철학과 고객 가치
“도(道)는 군과 백성을 하나로 묶는다”는 말처럼, 브랜드의 정체성과 고객이 공감하는 가치가 하나로 맞물릴 때 진정성이 발생한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여러 브랜드를 만나 보면, 철학이 뚜렷한 곳일수록 고객과의 교감이 깊다. 반면, 표면적 메시지에만 집중하면 단기적으로 주목받을 수는 있어도 장기적 경쟁 우위를 유지하기 어렵다.
2. 천(天): 시장 트렌드와 거시적 흐름
손자의 “천(天)”은 하늘과 계절, 시간의 흐름을 의미하지만, 이를 오늘날 마케팅에 비유하면 트렌드 변화와 거시경제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특정 계절에 맞는 제품 기획, 글로벌 이슈에 따른 소비 패턴 변동 등은 “천(天)”을 읽어내는 과정이다. 이런 흐름을 놓치면, 열심히 준비한 캠페인이 정작 시장의 니즈와 어긋날 수 있다.
3. 지(地): 시장 무대와 채널 전략
한정된 자원과 시간을 어디에 투입해야 가장 효율적인가? 손자가 말하는 “지(地)”는 지형적 이점을 잘 이용해야 한다는 뜻이고, 오늘날에는 유통 채널과 플랫폼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같은 제품이라도 어떤 온라인 플랫폼에 집중할지, 오프라인 매장은 어떻게 활용할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프리랜서라면 특히 클라이언트별 상황을 꼼꼼히 파악해 맞춤형 채널 전략을 짜야 한다.
4. 장(將): 프로젝트 리더십과 역량
장수는 군대를 이끌어야 한다. 마케터도 팀이나 프로젝트를 이끈다는 점에서 리더십이 중요하다. 아이디어를 냈다면 빠른 실행으로 옮길 의사결정력, 갑작스러운 시장 변동에도 기민하게 대응할 순발력이 요구된다. 손자의 장(將)은 ‘지혜, 신의, 인애, 용기, 엄격’을 말했는데, 어느 것 하나 현대 마케터에게서 빼놓기 어렵다.
5. 법(法): 체계와 규율, 실행 프로세스
아무리 멋진 전략도 ‘법(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염불이다. 프로젝트 관리 툴을 통한 일정 체크, 퍼포먼스 측정을 위한 KPI 설정, 예산 집행 및 회계 절차 등. 이런 세부적이면서도 체계적인 프로세스가 흔들림 없이 작동되어야 캠페인이 제대로 굴러간다.
계편의 ‘계(計)’는 단순한 숫자 계산이나 경쟁사 견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브랜드 철학, 시장 트렌드, 채널, 리더십, 실행 프로세스 등 다각적인 요소를 통합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쟁터처럼 치열한 시장에서 마케터로 살아남으려면, 이 종합적 계산이 빛을 발해야 한다.
프리랜서 마케터에게는 특히 “내가 제안하는 전략이 실제로 적중할까?”라는 고민이 따라붙는다. 여러 클라이언트와 다양한 업종을 상대하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 공식에만 기댈 수도 없다. 결국 답은 계편이 말한 치밀한 준비와 전체 그림을 보는 통찰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시작점이 바로 시장 분석이다. 고객 세분화, 경쟁사 파악, 트렌드 모니터링, 그리고 가장 잘 통할 브랜딩 포인트 찾기. 이 모든 것이 계편의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조직 내 마케터라면 팀원이나 상사의 지원을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지만, 프리랜서는 혼자 모든 과정을 책임져야 한다. 그렇기에 더 철저한 분석과 계획이 필요하다. 처음 미팅에서부터 간단한 시장 분석, 예상 위험 요소, 기대 효과 등을 충분히 검토해 제안한다면, 클라이언트의 신뢰도 자연스레 높아진다.
손자는 “전에 계산해보고 이기는 자는, 계산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케팅이라는 전쟁터에서도 마찬가지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결국 다면적인 계산이 뒷받침되어야 진정한 경쟁 우위를 만들 수 있다. 그 계산에는 브랜드 철학, 시장 흐름, 채널 전략, 리더십, 프로세스가 모두 담겨 있어야 한다.
계편은 손자병법의 시작이자, 마케팅 전략의 시작점과도 겹치는 지점이 많다. 프리랜서 마케터로서 매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배경과 환경을 맞닥뜨리지만, 그럴수록 “준비”를 통해 달라지는 내일을 바라보고 싶다. 브랜드와 고객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찾고,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며, 실행 과정을 꼼꼼히 챙기는 것. 이것이야말로 손자가 말한 계편의 지혜가 현대 마케팅에 건네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