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을 거스르고 더 나은 나를 만나는 방법
어느 날 문득, 나는 복싱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체력을 기르고 싶었을 뿐이었다. 주먹을 뻗고, 스텝을 밟고, 스파링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대회에 나가보라’는 코치의 말을 듣게 되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가슴이 살짝 뛰었다. 단순히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눈앞에 펼쳐진 느낌이었다.
주기적으로 대회에 출전한다는 목표는, 내게 극도로 엄격한 시간표와 식단을 지키게 만들었다. ‘오늘은 맥주 한 캔쯤 괜찮지 않을까’라는 유혹이 스쳐가도, 복싱 트렁크와 보호대, 헬멧을 챙겨 체육관으로 향하게 된다. 이 길고 긴 준비 과정을 거쳐 링 위에 서는 순간, 승패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그것은 바로, 이 과정에서 매일 나 자신을 한 단계씩 단련해나간다는 사실이다.
대회를 목표로 할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음식에 대한 억제다. ‘단백질은 적극 섭취, 당분과 알코올은 최대한 배제’라는 규칙은 생각보다 훨씬 엄격하다. 이렇듯 식단에서부터 하루 루틴, 수면 시간까지 ‘관리’라는 단어가 생활 전반에 깊숙이 파고든다. 재미있는 건 그렇게 살수록 어느새 눈빛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이 정도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이런 절제된 생활이 주는 날카로운 집중력에 빠져들게 된다. 스파링 상대와 주먹을 주고받을 때, 온 세상의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몸과 정신만이 날카롭게 살아 있는 느낌이 찾아온다. 아마도, 나는 이 긴장감과 초집중의 순간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운동은 내게 결코 ‘즐겁기만 한 놀이’는 아니다. 퇴근 후 폭신한 소파에 몸을 파묻고, 좋아하는 넷플릭스 시리즈를 틀어놓은 뒤 치킨과 맥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은 유혹이 얼마나 달콤한지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을 꾹 참아내고 체육관 문턱을 넘을 때, 나는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선택했다는 확신이 든다.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건 단순히 ‘복싱 기술의 향상’이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고,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안락한 생활에서 한 걸음 비껴서도록 만드는 ‘자기 통제력’이 쌓인다. 그런 의미에서 운동은 내게 가장 현실적인 훈련이고, 매일 반복할 수 있는 의식과도 같다.
나는 2년 전, 회사라는 안정된 울타리를 뛰쳐나왔다. 프리랜서로서 경제활동을 이어간다는 건 결코 만만치 않다.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도 없고, 스케줄을 스스로 짜야 하며, 일의 성과도 전부 나의 몫으로 돌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라는 ‘comfort zone’을 벗어난 것을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게 가치 있는 일은 결코 쉽고 편안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운동을 통해 이미 배웠기 때문이다. 매일 반복되는 편안함 속에 안주하면 할수록, 결국 내가 진짜 원하는 삶과는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복싱은 내게 ‘우리는 언제나 도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훈련 도장과 같다.
살아가다 보면, 마음속에 무언가 꿈틀거리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일단 신발장에 잠들어 있는 운동화를 꺼내 달리기부터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꼭 복싱이 아니어도 좋다. 가벼운 달리기든, 요가든, 헬스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몸을 움직이는 그 순간부터 무엇인가가 달라지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1킬로미터를 뛰며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순간, ‘아, 이것도 나름 할 만하네’라는 작은 깨달음이 생긴다. 그 깨달음이 쌓이고 쌓여, 익숙함의 틀을 깨고 더 넓은 세상으로 가는 발걸음이 된다.
운동은 거창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는 자신을 더 엄격하게, 더 꼼꼼하게 관리하도록 만드는 수단이고, 때로는 낯선 길로 접어들 용기를 주는 동력이 된다. 그렇게 매일 몸을 움직이다 보면, 이전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조금 더 나아진 나’가 모여 언젠가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내가 매일 복싱 글러브를 끼고, 주먹을 뻗고, 숨을 고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유이다. 나는 매일 그런 미세한 변화들을 경험하고, 그 작은 결심들을 모아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