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데이터에만 의지 vs 본인의 직관을 더 신뢰
종사하고 있는 업의 특성상 그동안 다양한 마케터를 봐왔다. 그리고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마케터들은 대개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는 결론을 얻게 됐다. 전략을 뒷받침할만한 근거 따위 없이 모든 의사결정을 자신의 취향과 감으로만 결정하는 '낭만'파 마케터, 또는 모든 걸 데이터에만 의지하고 데이터 자체에 함몰된 '로봇' 마케터. 물론 이는 사람의 다양성을 아예 무시한 지극히 이분법 적인 분류라고 볼 수 있다. 당연히 그 중간 지점 어디 즈음인가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마케터들도 많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모든 마케터가 어느 한쪽으로든 조금씩 더 치우치는 건 거의 예외가 없었던 것 같다. 이는 사람 성향에 따라 많이 갈리는 부분이며 다른 말로 풀이하면 자신이 더욱 잘할 수 있는 쪽에 본인의 역량이 자연스럽게 집중되는 현상이라 결코 나쁜 건 아니다.
또한, 평소 마케터가 처리해야 하는 업무의 양과 제한된 시간 및 에너지를 감안했을 때, 굳이 자신이 잘 못하는 분야까지 섭렵하려고 하기보다 본인 성향과 조금 더 맞는 방향으로 집중하는 게 효율성 측면에서 봤을 때에도 지극히 합리적이고 당연한 이치라고 볼 수 있다.
혹자는 요즘 시대 마케팅이 데이터를 보고 판단하지 뭘 더 봐야 하냐고 얘기하기도 한다. 물론, 데이터에 기반한 분석과 의사 결정은 필수다. 하지만, 많은 경우 지나치게 데이터에만 의존하는 나머지, 그 이면에 가려진 중요한 포인트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조직심리 또는 사회학 적인 관점에서 현시점에 이러한 결과치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라던가, 보다 근본적인 것에 대한 질문 또는 직관에 의한 통찰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퍼포먼스 업무만 해오거나 또는 미디어 렙사에서 광고 매체만 다루던 마케터들 중에서 광고 소재 또는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아예 전무한 경우도 더러 봐왔다. 요컨대, "소재가 뭐 다 거기서 거기지. 어떤 게 먹힐지는 테스트해봐야 안다."라는 식이다. 솔직히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한 캠페인에 다양한 광고 소재를 세팅해보면 효율이 잘 나오는 애들은 왕왕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 뜻밖의 녀석일 때가 많다. 하지만, 많은 마케터들은 거기서 멈춰버리고 "다음"이 없다.
가령, 빨간 바탕에 일러스트 이미지가 들어간 소재 A와, 파란색 바탕의 실사 이미지가 들어간 소재 B를 테스트해봤는데, 결과적으로 소재 A가 훨씬 좋은 성과를 기록했다고 해보자. 조금이라도 지성을 갖춘 마케터라고 하면 그 결과치에 대해 조금 더 집요하게 파고들어 나름의 이유들을 분석함으로써 새로운 가설들을 수립했을 것이며, 다음번 테스트는 그 가설에 기반하여 진행할 것이다. 반면, 그렇지 못한 경우, 이후의 모든 캠페인에 유사한 형태의 빨간색 배경에 일러스트를 넣은 소재들만 주야장천 적용하는 걸 볼 수 있다. 즉, 그들한테는 가장 중요한 Why가 빠져 있으며 오로지 결과치로서의 데이터 그 자체만 중요했던 것이다.
하물며, 브랜딩 캠페인도 전환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최대한 많은 노출량 확보를 위한 광고 정도로만 치부해버리니, '브랜딩'도 단순히 '노출량'이라는 정량 지표로 치환한 데이터 관점에서만 바라봤던 것이다.
반면, 데이터보다 본인의 직감에 더 의지하는 마케터는 어떨까? 이런 부류는 일단 어느 정도 축적된 경험치가 있으며, 본인이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서도 나름의 긍지를 가지고 있고 자신감이 넘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데이터들을 분석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보다, 마음속에 이미 자신만의 결론 또는 가설을 설정하여, 데이터들도 그것에 따라 취사선택하는걸 자주 보게 된다. 즉, 확증편향의 실수를 범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또한, 결과치를 통한 학습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다음번 캠페인을 어떤 식으로 개선해야 할지에 대한 대비도 부족한 것이다.
물론, 이번 포스팅의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대부분 마케터들은 본인 장점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적절히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위에서 예시로 든 경우는 대부분 균형과는 거리가 먼, 양 극단에 가까운 두 가지 부류의 마케터들을 예로 든 것이라는 점 다시 한번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