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카포트 May 07. 2024

세상을 바라보는 나를 바라보는 나

어떤 날씨는 모든 의지력을 잡아 삼킨다. 지난 일요일의 날씨가 나에겐 그랬다. 아침부터 줄기차게 쏟아지는 비 덕분에 나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을 보냈다. 물론 브런치 연재 날짜도 지키지 못했다. '이왕 늦은 거 하루 더 늦으면 어때'라는 마음으로 월요일도 애써 써놓은 글을 발행하지 않고 흘려보냈다. 그래도 이를 상쇄할 만한 좋은 소식이 하나 있다면, 지난 일주일 간의 명상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다는 것. 무언가를 깨달아서 그렇다기보다, 비록 중간에 잠이 들더라도 매일 명상을 '하기는 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실제로 토요일, 일요일 이틀은 자기 전 가이드 명상을 틀어 놓고 누워서 명상하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2주 차 챌린지는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겠다. (왕뻔뻔)



진정한 명상

명상 수련 1주 차에 나는 '내 멋대로 아무렇게나 명상'을 시전 하면서 명상 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했더랬다. 그래서 지난 화요일에는 근처 도서관에 가서 명상에 관한 책을 두 권 빌렸다. 하나는 아직 읽어보지 않은(어마어마한 두께 때문에 펼쳐보기가 두려운) 김주환 교수님의《내면 소통》이라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마이클 싱어의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다. 나는 ‘진정한 명상’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심지어는 내가 여태까지 해왔던 것이 명상 축에 속하기나 할는지,라는 의문을 가지고 두 번째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에서는 '진정한 명상'을 설명하기 위해 먼저 한 가지 개념을 강조한다. 우리는 보통 하루종일 우리의 머릿속을 오가는 '생각' 자체를 '내(에고)'가 하는 것이며 그게 '나'의 전부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자신을 '내가 하는 생각=나=에고'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책에서는 에고가 하는 '생각'을 인식하고 관찰하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참나'의 존재이다. 여기서 참나는 어이없을 때 내뱉는 감탄사가 아니다. (?) 책에서는 참나를 나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경험하는 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참나'의 인식에서 머물 수 있을 때, 비로소 '깨어 있는 것'이라고 책에서는 말한다.


흠.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 것도 같기도 하고, 가끔씩 '참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도 분명 있었을 것 같기도 한데, 솔직히 말하면 확실히 개념이 서지는 않았다. 요약하면 결국 '생각하는 나(에고)' 이면에는 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 관찰하는 '참나(=또 다른 나)'가 있다는 것인데. 내가 여러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의문이 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니까, 나는 책에서 말하는 개념을 지침 삼아 명상 수련을 해보기로 했다.



에고와 참나


지난주에 명상수련을 할 때 나는 잡생각이 떠오르면 그냥 바라보곤 했는데, 사실 이는 내가 '참나'와 같은 존재를 알고 인식해서라기보다 예전에 들었던 명상 가이드(헤드스페이스 <명상이 필요할 때>)에서 잡생각이 들 때는 그저 그 생각을 관찰해 보라는 가이드 때문이었다. 그렇게 '참나'니 '에고'니 하는 개념이 없는 상태로 그저 잡생각을 의식하면서 인지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평온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아주 잠깐씩 들기도 하였다. 책을 읽고 나서부터는 나는 여태까지 했던 나의 수련이 아예 틀리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고 앞으로는 자신감을 가지고 전에 했던 수련을 계속 이어나가 나의 모든 것을 더욱 의식적으로 인식해 보기로 했다. 생각이나 감정을 있는 그저 그대로 받아들이고 관찰해 보기로 말이다.




관조하는 연습

나는 명상을 할 때에도, 산책을 할 때도, 일상생활을 할 때에도 의식적으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계속 돌아보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나는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엄청나게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눈을 감으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고 갔던 말들. 나의 지난 언행에 대한 후회. 타인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생각들이 보였다. 나중에는 눈을 감지 않아도 나의 헛된(?) 생각들의 흐름을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었다. 정말 놀라웠던 것이, 나는 내가 이런 것들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줄로만 알았는데, 돌아보니 결코 나는 그랬던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런 생각들은 무의식적으로 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을 것이고 분명 어느 날 문득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날과 이유 없이 불안했던 날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참, 그동안 피곤한 삶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5월 1일에 명상을 할 때에도 나는 여기저기서 떠오르는 출처 모를 생각들을 관조했다. 일부러 감사나 사랑을 떠올리지도 않았다.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떠드는 생각들이 무엇인지 그저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물론 생각에 휩쓸릴 때도 있었다. 생각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화수분과 같았으니까. 나는 이 화수분에 휩쓸리기도 하고 마치 다른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듯 관찰하기도 하다가, 또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고요함에 잠깐 잠기기도 했다. 명상이 끝나고 나는 어쩌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리고 수많은 명상 수련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 모든 생각과 감정을 내뿜는 나의 '자아' 이외에 다른 고요한 존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당신도 마음속의 끊임없는 지껄임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임을, 그리고 끊임없이 모든 것에 간섭하고 알려고 하는 그것이 다 부질없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문제의 진정한 원인은 삶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삶을 놓고 벌이는 마음속의 온갖 소동이다.

                                                        상처받지 않는 영혼 中







이전 02화 98%의 잡생각과 2%의 알 수 없는 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