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의 겨울방학 성장기
작년 12월 16일에 마무리한 프로젝트를 끝으로 나는 긴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다. 작년 하반기 때부터 거의 쉬는 날이 없다시피 한 탓에, 휴가가 그 누구보다 절실했던 나였으므로 이번 겨울방학만큼은 마음 편히 흥청망청(?) 잘 쉬어보자 결의를 다졌던 터였다.
마감이 끝난 뒤 첫 2주 동안은 정말 푹 쉬었던 것 같다. 남들은 회사에서 연말 마감을 하랴 밖에서는 망년회를 하랴 한 해의 마지막 달을 바쁘게 보낼 때 나는 넷플릭스를 몰아보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소소하게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직접 해 먹고(요리를 좋아하지만 마감이 걸려있는 기간에는 바빠서 거의 요리를 하지 못했다), 평소에 배우고 싶었던 소설 작법 클래스도 들으면서 그렇게 엿가락마냥 주욱- 늘어진 연말을 보냈더랬다.
한동안 머리 쓰는 일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던 탓에 나의 새해 목표 설정도 자연스레 연말이 아닌, 연시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1월 2일에는 늦었지만 비전 보드를 만들어 책상 앞 눈높이에 걸어 두었다. 그리고 새해에는 어떤 일들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깊게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가져보았다. 내가 목표를 정할 때 세운 기준이 하나 있다면,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었다.
우선 커리어 측면에서는 새로운 해외 거래처를 뚫고, 새로운 분야로 영역을 넓혀보기로 했다. '새로운 거래처 뚫기'는 생계를 위한 것이니 해야 하는 일이 되겠고, '새로운 분야로 영역 넓히기'는 이 직업을 선택하고 난 뒤부터 줄곧 해보고 싶었던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므로 하고 싶은 것이 되겠다.
자아실현 측면에서는 소설 1편을 완성해 보기로 했다. 이상하게 프리랜서로 전향하고부터 창작을 하고 싶은 욕구가 조금씩 강해지기 시작했다. 짐작건대, 창작 욕구는 원래 내 안에 있었던 무언가였으나, 그동안 "현실"에 치여 억압되었던 것이, 프리랜서로 전향하고 난 뒤 나의 생각과 한계가 보다 자유로워지면서 되살아난 것이겠거니 예상하고 있다. 어찌 됐건, 올해는 단편 소설이라도 완성해 보는 게 목표다. 가능하다면 공모전에도 도전해 볼 수 있기를.
그 외에는, 재독립하기(현재 2년째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해외 한달 살기와 제주도 한달 살기가 있다. 올해는 밖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의 흐름이 더욱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더 많은 세계가 내 안으로 흘러들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여백의 시간을 가지는 동안 나는 인생에 대한 생각도 깊게 해 보았다. 거기에는 많은 이들이 말하는 '일반적인 삶의 단계'에 대한 생각도 포함되어 있었다. 2026년을 맞이하여 나는 만 나이로 서른둘이 되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서 나의 연애 사업과 결혼에 대해 입을 대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나의 고민도 깊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에게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그들'에게 결혼과 같은 사안은 매우 중요한 '순리'와도 같아보였다. 그랬기에 그들에게 나는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말하는 그 대단한 ‘순리’에 대해 생각을 하면 할수록 불안하고 갑갑한 마음만 들었다. 물론 나도 인연을 만나고 싶다. 좋은 사람을 만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럴 만한 인연을 아직 만나지 못한 것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아직까지는, 스스로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굳이 '결혼'을 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소개팅을 하러 다닌다거나, 하기 싫은 일(동호회 등)을 하면서까지 사람을 만나러 다니기가 왠지 꺼려졌다(심지어 나는 인연이라 생각되는 사람을 만나 동거까지 하게 되더라도, 굳이 결혼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과정이 더 불편하게 느껴졌지 않나 싶다). 무엇보다 사람 사이의 사랑이든 우정이든 간에, '인연'에 관해서라면 서두르거나 인위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몇 년 전 누군가는 나에게 여자 나이 서른둘이면 아이 둘을 보거나 아이돌을 쫒아다닌다고 말했다. 물론 나는 올해 서른둘이 되었지만 둘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 사실 나도 사람인지라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속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 잘못 살고 있나라는 생각도 들고 때로는 위축되기도 한다. 하지만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듯이, 아이 둘과 아이돌이라는 이분법적인 생각으로 한 사람의 삶을 속단하는 말 같은 것을, 나는 믿지 않는다. 내가 퇴사를 결심했을 때 '회사 다니기 싫어도 어쩔 수 없어.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라는 말을 믿지 않았던 것처럼.
결국 나는 더 이상 결혼이나 그들이 말하는 삶의 순리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이에게는 각자의 길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삶은 각자의 고유성에 맞게, 아름답도록 다채롭게 펼쳐진다. 그러므로 특정 사건이 일어나는 시기도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나는 나에게는 와닿지 않는 다수의 관점보다 내 안에서 느껴지는 직관을 고수하기로 했다. 그게 내가 이번 겨울방학 동안 자기 의심, 자존감 하락, 자기 파괴적 생각들과 전투해 가며 거머쥔 최후의 결론이다.
시간이 많아지니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몰아서 읽기 시작했다. 이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온 5권의 책을 병렬로 읽고 있으며,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사이트에서 <작은아씨들> 원서를 다운받아서 읽고 있다. 이렇게 겨울방학이라는 여백의 시간 동안 다양한 생각과 관점들이 내면을 채우기 시작하면서 내 안에서도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이곳저곳에 글도 많이 쓰고 있다. 여러모로 방학이라는 건 참 쓸모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는 중이다.
약 3주간의 겨울방학을 이제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나의 겨울 방학 기간 동안 나는 충분히 쉬며 체력적으로 충전하였고, 충분히 생각하며 내적으로 깊어졌다.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본업에 임하고, 올해 세운 목표들을 하나씩 실천해 나갈 예정이다. 부디 모든 과정을 '나답게' 잘 이루어 나갈 수 있기를.